#1. 두 번의 환승을 포함해 두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강의하러 가던 어느 날 저녁의 일입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운동도 되고 아직은 너끈히 견딜만하다며 꿋꿋하게 서서 버티던 무릎과 발등이 몹시 아파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접질렸던 발목에 다시 무리가 가면서 무릎과 발등에도 통증이 오는 모양입니다. 앞에 앉은 사람들은 도통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직은 한눈에 양보를 받을 만큼의 겉모습 또한 아닌지라, 하는 수 없이 노약자석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마침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에 절뚝거리며 걸어가 ‘불고체면(不顧體面)’하고 앉았습니다.

다리 아프면 아줌마가 노약자석에 좀 앉아서 갈 수도 있지 무슨 체면 운운하냐고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할머니나 어르신으로 불리기에는 조금 모자란 오십대 후반 아줌마인 저의 체면은 아직 노약자석에 무조건 앉지는 않는 그만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며 의좋게 살아가는 중년부부에게는 체면을 앞세우며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시어머니가 계시는데, 어찌나 다양한 종류로 체면을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너희들 나이에 이렇게 작은 차를 타면 어디 가도 대우 받지 못하고 우스운 취급 받는다, 나이에 맞게 체면 좀 차려라”(아들 부부의 경제상황은 완전 모르쇠입니다.)

“어른 생일인데 아무데서나 밥을 먹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호텔 뷔페 정도는 돼야 친구들한테도 말하기 좋지”(친구들 초대 안 했는데 무슨 상관인지 궁금합니다. 정 자랑하고 싶으면 뷔페 가서 식사했다고 그냥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3. 직장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은퇴하고 나니 생활비보다 경조사비가 더 부담이라며 하소연하는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수입은 줄었는데 체면을 차리자니 부담스럽고, 체면 불고하고 적게 내려니 낯이 서질 않고,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죠. 흔히 체면이 밥 먹여 주냐고들 하지만 유난히 체면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 그것도 어른 처지에 체면을 완전히 무시한 채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직장에서는 윗사람으로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나름 대접받던 가락은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그 대접이 예전만 못해진 것을 느끼기라도 하면 ‘이거 영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은근히 부아가 나면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어른 체면에 대놓고 화를 내거나 대접해 달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도대체 체면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 속을 헤집으면서 고민하게 만드는 걸까요?

 

‘체면’에 대해 학자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이미지를 얻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남자는 강한 이미지, 여자는 얌전한 이미지를 바람직하게 여기면 남자들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한 인상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여자들은 얌전한 인상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또한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있다가도 손님이 오면 얼른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체면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체면을 지나치게 차리다보면 남의 눈에 매여서 내가 나로 살아가지 못하게 될 수 있고, 반대로 체면문화를 완전히 배제하면 자칫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까지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하나, 내 삶의 기준을 내게 맞춰 새롭게

체면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잘못된 체면문화인 내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의 눈에 맞추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뭐라고 말할까에 집착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삽니다. 갓 결혼해 집안 살림 꾸리고 돈 모으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래도 며느리(사위) 봤는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이 있지…’ 하면서 때마다 철마다 외식에 해외여행을 요구하는 철없는 부모도 있습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체면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혼례비용이라든가 명품 소유에 대한 지나친 열풍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내 삶의 기준을 내게 맞춰 다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둘, 겉모습으로 평가하는 나쁜 습관 경계

체면에 얽매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나쁜 버릇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아파트 평수나 타고 다니는 차의 크기, 학벌, 직업, 직위, 연봉 같은 것이 평가기준이 되다보니 사람의 됨됨이 같은 것은 따져볼 여지가 없습니다. ‘체면 때문에’라는 이유 하나로 넓은 아파트와 큰 차를 소망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역시 겉모습과 소유하고 있는 것에만 눈길을 보내느라 바빠서 각자의 개성이나 주관적인 행복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쓸데없는 비교와 허세가 난무하니 인간관계 역시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셋, 과도한 체면문화 벗어나기

‘냉수 먹고 이 쑤시기’ 같은 과도한 체면문화는 우리 스스로를 속박하고 불필요한 겉치레에 에너지를 쏟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 당장 벗어나야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진정한 나 자신에게로 한 발짝 씩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체면에 얽매여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나 아닌 바깥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인생의 기준은 나!’, 내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바깥의 시선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성숙한 자세겠지요.

물론 체면문화에도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가 손님을 초대했을 때 흔히 “차린 건 별로 없지만…비록 솜씨는 없지만…약소하지만…많이 드세요”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처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까지 불필요한 겉치레로 여길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체면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얼굴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넷, 체면치레보다는 실속 차리기

나이 들어가면서 자기 체면이 조금이라도 깎일세라 전전긍긍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 체면 깎아내리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어린 사람이라고 개성은 무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면서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자기 체면이 상했다며 화를 냅니다. 이것은 결코 성숙한 어른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차라리 이쯤에서 명분보다 실속을 차리는 게 어떨까요. 여기서 실속이란 체면치레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 격의 없이 어울리고 보듬어주면서 함께 후반생(後半生)의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일입니다.

혹시 지금 체면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정말 체면이 밥 먹여 주지 않습니다! 얼른 체면을 내려놓고 사람 마음을 얻기로 합니다. 체면에 얽매여 소중한 것들을 잃을지 모르니 서둘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