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경제성장과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성장만능주의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은퇴는 자비 없이 찾아왔다. 한평생 가족을 책임지고 성실히 살아온 50+는 퇴직 후 제2의 또 다른 인생을 앞에 두고 있다. 이들에게 감히 ‘한가로운 삶’을 제안해 본다. 그렇다.
"겨울이 오면 그 해가 풍년이었든 흉년이었든 농부들은 쟁기를 거두고 쉴 권리가 있다.
자연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소인은 가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쉴 줄을 모른다”고 한 것은,
한가로운 삶에는 반드시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그 기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적 성숙(La maturite humaine)이다.”
- 이유진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 한다」
무언가의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야할 기반을 만드는 첫걸음은 우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제 시간을 내어 한가로운 삶으로 한걸음 나서 볼 때이다. 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설악산 봉정암에서 나만의 한가로운 시간을 맘껏 즐겨보자. 봉정암은 백담사의 부속 암자이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거리는 6km 정도인데 도보로 가게 되면 가는 길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봉정암까지 가는 코스로 온 경우에는 백담사 주차장에서 버스를 이용해서 백담사까지 가는 것이 좋다. 백담사에서 시작해 영시암을 거쳐 쌍용폭포를 지나 봉정암까지 10.6km가 된다.
백담사에서는 오전 10시에 공양이 시작된다. 속을 든든히 해줄 미역국과 염분 보충에 좋은 고추 장아찌를 먹고 길을 떠난다. 가는 길은 높고 푸른 하늘과 더없이 상쾌함으로 걷는 이들을 반겨준다. 푸르른 자연이 눈이 부셔서 걷는 내내 “좋구나~” 외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영시암까지는 평평한 산책로로 되어있어 누구나 쉽게 갈수 있다. 이 길은 끝없이 이어져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 천하절경 쌍용폭포를 눈에 담고 드디어 해탈고개(깔닥고개)를 넘으면 봉정암에 도착하게 된다. 깔닥고개를 넘으면 왜 봉정암 순례길이라고 이야기하는지 느낄 수 있다.
보통 10km를 4~5시간에 걸쳐 오르게 된다. 백담사 공양 후 오르면 3시~4시 전후에 도착해 소청중청대청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고, 봉정암 암자에서 기도를 하며 하루를 묶는 사람들이 있다. 암자에서 머물러 기도하기를 원하면 미리 봉정암에 전화(☎033-632-5933)로 신청하면 된다. 도착해서 종무소에서 자리표를 받으면 숙소에 짐을 풀고 기도를 할 수 있다. 봉정암에는 강원도 지정 문화재인 석가사리탑이 있다.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서 설악산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발 1,245m 위 암반위에 놓여있는 탑은 높이 3.3m 인 5층 석탑이다. 신라 시대의 자장율사(590~658)가 당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사리 7과를 이 탑에 봉안했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사리탑에 도착하는 순간 느껴지는 신성함은 힘든 깔딱고개를 다시 넘어올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 부처님사리탑을 감싸고 있는 신성한 기운 속에 스님이 내어주는 방석에 앉았다. 눈을 감고 조용히 가족의 건강을 기원해본다. 이 가을, 자연이 주는 선물인 아름다운 단풍과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설악산 봉정암으로 한걸음 다가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