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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와 신구, 권유리, 박소담 등이 열연한 <앙리할아버지와 나>라는 연극의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Ivan Calbérac)의 라는 작품으로, 2012년 프랑스 초연 이후 지금까지 투어 공연이 인기리에 진행 중이며  2015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까칠한 할아버지 ‘앙리’의 집에 시골 마을을 떠나 파리에서 독립을 시작하게 된 대학생 ‘콘스탄트’가 입주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강이 나빠져 혼자 살 수 없게 된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세를 놓은 것이었지만 아들, 며느리와도 사이가 좋지 않은 앙리 할아버지는 새로운 입주민이 자신의 집에 침범하여 세상을 떠난 아내의 흔적을 더럽힌다고 생각해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좌충우돌 동거 생활을 하며 천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세대 간 갈등은 화합과 가족 간의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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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출처 : 파크컴퍼니

 

청년 주거 문제와 노년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윈윈 프로젝트


줄거리만 보면 웃음과 감동을 주는 힐링 드라마지만, 작품의 배경을 살펴보면 프랑스의 조금 특별한 동거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연대적 세대 간 동거(Cohabitation intergénérationnelle solidaire)’이다. 

이 세대 간 동거 프로그램은 각 사람의 상황에 맞는 교류의 틀 안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의 동거라는 원칙으로 1997년 스페인에서 처음 탄생하였다. 이후 2003년에 프랑스에서 갑작스런 폭염으로 노인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이에 혼자 사는 노인의 건강과 안전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세대 간 동거’ 프로그램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세대 간 동거는 노년층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물가를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인 파리의 주거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일찍부터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프랑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 보조금을 받으며 학업을 병행하지만 사회초년생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월세인데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학 기숙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세대 간 동거는 주택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무료 또는 저렴하게 주택을 제공해주고 동시에 노년층에게는 안전은 물론 원할 시 소액의 추가 수입도 제공한다. 세대별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점에서 세대 간 동거는 그야말로 청년과 노년 모두에게 좋은 윈윈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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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세대 간 동거를 하고 있는 99세 할아버지와 23세 학생

 

세대 간 동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세대 간 동거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된다. 

 

혼자 살거나 빈방이 있는 60세 이상의 노인이 30세 미만의 청년에게 집의 일부를 무료 또는 적은 금액으로 빌려주고 그 대가로 청년은 계약에 따라 크고 작은 일들을 한다. 일주일에 몇 번 함께 식사나 쇼핑을 하며 교제 시간을 갖기도 하고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집안일을 돕는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온라인에 광고를 게재해 직접 동거인을 구하거나 중개를 해주는 협회를 이용할 수도 있다. 협회는 후보자 지원을 받고 면접을 보는 등 후보자를 선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고, 동거 계약 초안을 작성하거나 문제 발생할 시 중재를 하는 등 후속 조치를 관리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협회 이용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실제로 세대 간 동거를 관리하는 협회 Cohabilis의 네트워크 디텍터인 조아킴 파스케(Joachim Pasquet)는 누군가를 집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협회의 역할은 신뢰의 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세대 간 동거는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가정은 비싼 간병인을 두거나 양로원을 이용하는 것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세대 간 동거 프로젝트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함께 사는 청년은 간병인이나 간호사가 아니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기본 정신은 그야말로 상생과 연대, 자발적 교류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대 간 동거에 참여하는 시니어는 독립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엘랑(ELAN) 법 : 좀 더 나은 세대 간 동거를 위한 법적 장치

 

2004년부터 확립되어 10여 년간 시행된 ‘세대 간 동거’ 계약은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여러 가지 법적 문제가 발생했다. 일정액 이상의 소득이 있는 학생이나 근로자를 집에 받아들이게 되면서 노인의 집에 부과되는 주택세(한 지붕 아래 사는 거주자의 소득에 따라 계산)가 상승했고, 수입 증가로 주택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도 생겼다. 또한 세대 간 동거가 불법 고용과 동일시되거나 고용 계약으로 재분류 될 우려가 있었다. 자가 소유자가 아닌 임차인이 청년에게 전대했을 때 생기는 문제나 임대차 및 부동산 중개업의 불법 행사 등에도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이에 대해 법적 제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2015년 12월에 법적으로 처음 언급된 이후 2018년 11월 23일 엘랑(ELAN) 법에 따라 세대 간 동거 계약은 법적 규제를 받게 되었다.

 

우선 엘랑(ELAN) 법은 몇 가지 사항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 세대 간 동거의 목표는 ‘사회적 유대 강화’이다.

• 연대는 세대 간 동거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실제로 ‘연대’라는 용어는 이후 ‘세대 간 동거’에 연결되었다. 

• ‘세대 간’이라는 단어의 성격이 정확해졌다. 여기에서는 청년은 ‘30세 미만’, 노인은 ‘60세 이상’을 말한다.

 

법률에 따르면, 세대 간 동거 계약은 ‘소유주 또는 임차인을 막론하고 60세 이상의 사람이 30세 미만의 사람에게 주택의 일부를 임대하거나 전대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으로 정의된다. 이 계약은 주택건설법(Code de la construction et de l’habitation) 제 L.631-17~19조에서 규정하는 연대적 세대 간 동거 계약에 관한 특별 규정 및 민법에 나타난 일반 계약법에 따라 규제된다. 주택 임대차법에 관한 특별법인 메르마즈법(임대차관계 개선을 위한 1989년 7월 6일 법률)은 세대 간 동거 계약에 적용되지 않는다. 

 

법률에서 ‘임대’ 또는 ‘전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지만, 중요한 점은 단순히 ‘숙박’이 아닌 ‘함께 산다’라는 점이다. 즉, 임대와 전대는 숙박의 제공이라는 법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며, 실제로는 연대적 방식으로 주거를 공유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엘랑(ELAN) 법의 시행으로 불안정했던 계약서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고 수입에 따른 과세 조치도 법적으로 규정되었다. 또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이전에는 없었던 주택 보조금 혜택까지 받게 되었다. 

 

성공적인 동거가 이루어지려면…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청년층의 주택 문제를 해소한다’는 윈윈 프로젝트이지만 물론 불편한 점도 존재한다. 세대 간 동거 프로젝트는 노인이 자발적으로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공간과 사생활을 개방하는 데 동의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시작하지만, 일정한 삶의 패턴과 습관이 있는 노인들에게 젊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학생과 노인이 각자의 몫을 다하고 상대방의 독립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프랑스 유학시절, 낭시(Nancy)라는 도시에서 세대 간 동거 프로그램을 이용한 적이 있다. 당시 90세가 넘은 집주인 할아버지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시면서 세대 간 교류라는 취지에 걸맞게 함께 사는 학생과 자주 교류하고 싶어 했다. 할아버지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온 남학생, 프랑스 여학생과 생활을 했었고, 세 번째로 맞이한 학생이 아시아인 필자였다. 학생과 노인의 윈윈전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연령과 세대의 문제를 넘어 성별, 인종 간 화합까지 이룬 셈이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이국에서 온 학생을 따듯하게 환대해준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중개 조치를 해준 협회 덕분에 필자는 유학 생활 초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한 프랑스의 세대 간 동거 프로그램은 확실히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았다. 청년층은 월세를 아끼고 노년층은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으며 더불어 필자는 언어와 문화교류를 덤으로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년과 노년 모두 타인에게 관용과 열린 마음을 보이며, 상호 합의에 따라 정한 규칙을 존중하고 소통할 때, 이점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미 고령화 사회를 겪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변화 중이며 프랑스에서 맞닥뜨렸던 것과 유사한 사회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령층이 증가함과 동시에 독거노인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노년층의 외로움과 고립이 증대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급속한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세대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모든 것이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이다. 앞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프랑스 정책을 통해,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진지하고 효과적인 담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참고사이트


•Vivre avec, www.logement-solidaire.org, 검색일: 2022.03.01

•Le Pari Solidaire, www.leparisolidaire.fr, 검색일: 2022.03.01

•Un toit 2 générations, www.untoit2generations.fr, 검색일: 2022.03.01

•Cohabilis, www.cohabilis.org/le-cadre-juridique-de-la-cohabitation-intergenerationnelle-solidaire, 검색일: 2022.03.01

•Légifrance,www.legifrance.gouv.fr/codes/id/LEGIARTI000037649943/2018-11-25,검색일: 2022.03.01

•Légifrance,https://www.legifrance.gouv.fr/loda/id/JORFTEXT000041400365,검색일: 2022.03.01

•Olivier Marin, “La cohabitation intergénérationnelle solidaire”, France Inter, 2021년 9월 4일, 

www.franceinter.fr/emissions/l-urbanisme-demain/l-urbanisme-demain-figaro-du-samedi-04-septembre-2021

•Marie Zeyer, “Choisir la cohabitation intergénérationnelle”, DOSSIER FAMILIAL, 2020년 12월 9일,

www.dossierfamilial.com/immobilier-logement/location/la-colocation-entre-etudiants-et-seniors-420429#Quand-le-jeune-doit-il-postuler-%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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