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자의 관계 노트
관계 하나,
한때는 그랬다. 자꾸 어긋나는 상대를 만나면 굳이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내 생각이 이러니 내 말을 전하고 그가 내 생각에 동의할 때까지 끝없이 그를 이해시키려 했다. 뭐가 그렇게 내 생각이 옳았는지, 그 얄팍한 지식으로 나름의 논리와 타당성을 내세워 상대의 의견을 무력화 시키고 내 의견을 관철하려 했다. 상대의 입장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문제점만 찾으려 했다. 상대의 좋은 의견을 접목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작은 문제점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큰 오류가 있는 듯, 나의 주장이 전체의 의견으로 반영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어야 만족하고 그 방법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나 보니 알게 되었다. 나의 지식과 논리의 허점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나의 의견만 충분히 전달하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그 자리에서 그의 생각을 나와 같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도 변하고 그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 그와의 관계가 충분히 소통하는 관계였다면, 상대의 입장을 넉넉히 이해하는 관계였다면, ‘나는 나, 너는 너’가 아니었다면 퇴직 후의 활동 무대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 좋은 관계는 타인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관계 둘,
퇴직 동료가 말한다.
“요즘 많이 서운하더라.”
“왜? 뭔데.”
“가까웠던 후배들이 전화 한 통 없어. 그렇게 퇴직할 때 아쉬워하면서 자주 전화드리겠다고 하더니 전화는커녕 문자도 없네.”
“그 친구들 바빠. 직장 내 관계도 복잡한데 우리한테까지 연락할 여력이 있겠나! 특별한 일 없으면 다 그렇지 뭐. 우리도 재직 시 퇴직 선배들에게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잖아.”
그리곤 얼마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후배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후배가 승진하여 축하 자리를 만들었는데 선배님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초대를 받았노라고. 그날 기분 좋게 술 한잔 쐈노라고.
“참 멋진 후배들이네. 당신이 직장 생활 선배 노릇 잘한 거야, 그러니 그런 자리 초대도 받지.”
좋은 관계 유지는 일방(一方)이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 함께할 때 즐거움의 크기는 배가 된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관계 셋,
아는 관계가 심하게 불편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 퇴직 후 활동에서 알게 된 분이다. 서로가 참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자주 전화를 하고 찾아와서 귀찮을 정도라는 거다. 처음에는 정이 많아서 그런가 했는데 지금은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 정도가 된 거다. 전화를 받지도 않고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피했더니 수시로 문자를 보낸다. 물론 상대는 자신에게서 위안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만남을 고마워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다.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선한 에너지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상대를 만나는 것이 자신을 계속 피곤하게 하는 것은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 좋은 관계가 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환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변한다. 좋은 관계는 상당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사 일방의 좋은 관계가 유지되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그 관계는 변한다. 관계의 숨 쉼도 필요하다. 때로는 ‘나는 나, 너는 너’의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 때로 우린 홀로 걷는, 관계의 숨표도 필요하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이웃, 동료, 연인, 비즈니스, 모르는 이와의 일상적인 만남까지. 그 관계가 갈등의 관계가 아닌 조화롭고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든 소통의 입맞춤이 있어야 한다. 선한 관계는 절대 일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 가능하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관계의 연속이다. 오늘도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행동한다.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 그것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는 삶의 최고의 정점이다. 좋은 관계는 그렇다. 그를 만나면 왠지 좋다. 편하다. 말을 하고 싶어지고 함께 있는 시간이 늘 기대된다. 그와 시간을 보내면 무언가 배우게 되고 신이 난다. 엔도르핀이 솟아나 머리도 맑아지고 그에게서 힘찬 기운을 얻는다. 다음에 또 그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당신도 그에게 그런 존재인가? 당신은 어떠한가?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 사고로는 절대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는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필자의 노트에 메모된 글이다.
요즈음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그럴까요?
사람의 관계성, 내 맘 같지 않으니 말이죠.
가끔이라도 시간을 가져야 해요.
차라도 한잔 마셔야 해요.
연락도 한 번 못하고 편함을 구실로 너무 홀로 자유였나 봅니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보고
어떤 이는 너무 오래 안 본 탓입니다.
내 폼만 잔뜩 잡은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 줄엔 이렇게 쓰여 있다.
‘길은 홀로 아닌 함께 걷는 것’
커뮤니티를 함께 했던 지인 둘에게 강좌 소개로 연락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이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자리를 가졌다. 그날 우리는 기분 좋게 신나는 담화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너, 너는 나’ 이거 맞나. 관계가 이쯤 되면 친밀의 끝판이다.
▲ 좋은 관계의 끝판은 ‘그냥 좋다’이다. ⓒ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