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도봉구 ‘편지문학관’ 개관
▲ ‘편지문학관’이 국내 최초로 도봉구 구민회관 내에서 개관하였다.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오래된 책갈피 속에서 보물처럼 친구의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쓴 날이 2001. 3. 24.로 적혀있으니 23년이 흘렀습니다.
▲ 책갈피 속에 숨겨진 친구의 편지.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오래전 친구에게 받은 이 편지의 답장을 어떻게 하였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종이에 그때 친구의 마음이 더 짙게 남아있는 이 편지의 답장을 오늘 다시 쓰렵니다. 시간의 간극 사이에 늦어도 좋은, 그래서 더 좋은 그런 마음이 담긴 편지라면 오십 년 후 아니 천 년 후라도 후손들이 이 편지의 답장을 써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편지하면 떠오르는 시 중에 유치환 님의 ‘행복’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후략)”
편지가 메일이라는 용어로 대체되면서 우리에게서 편지는 사라졌습니다. 편지와 함께 우체통도 우체국도 파랑새처럼 날아갔습니다. 우체국이란 실손 보험금 청구 때나 가끔 들리거나, 아주 가끔 어디 먼 곳에 사는 친지에게 참기름병 하나 보내려 찾는 서먹한 곳이 되었습니다.
편지를 쓰던 시절, 편지 속에 마음을 반듯하게 각진 벽돌처럼 제 자리를 찾아서 흰 종이가 빛나도록 탑처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새우며 고치고 다시 올리면서 그 뜻을 헤아리는 그대의 그 마음마저 헤아리면서 석가탑의 석공이 되곤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우체통에 넣기 전에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우체국에 관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우체국은 아들이 입대하는 날 손에 쥐여준 편지 한 장에서 시작하여 저의 일과 속에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장소였습니다. 편지를 컴퓨터로 작성하여 이를 출력한 후 봉투에 넣어 매일 정오에 우체국을 찾아 우표를 붙이고 창구 직원에게 전달하면서 편지 보내기가 끝이 납니다.
오랫동안 들리다 보니 우체국 직원이 먼저 “아드님이 진급하셨네요.”, “이제 곧 제대하시겠네요.” 말을 건넵니다. 이렇듯 우체국이 나의 일상이 되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립니다. 입대일로부터 제대일까지 보낸 그 편지는 언젠가 다시 제게 되돌아왔습니다. 편지를 받은 아들은 그 일부를 작은 책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네요.
요즘은 가슴에서 나오는 편지가 아니라 손끝에서 나오는 메일이 오갑니다. 메일도 속도감이 없으니 광속의 카톡으로 오갑니다. 따스한 마음은 식어가고 업무만 남은 듯한 용어들이 혹여 있을 오류 수정의 기회도 상실한 채 발효의 시간도 얻지 못한 채 상대의 심장에 가시처럼 던져지고 맙니다.
이 얼마나 차가운 세상 되었는지는 우체통과 우체국 사이에 집배원의 따스한 발소리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쓸쓸한 모습입니다.
그런 이즘에 ‘편지문학관’의 탄생은 기대되는 바가 많습니다. 편지문학관을 들러 찬찬히 둘러보니 광의 속도로 마음이 전달되는 이 시대에 걸음걸음으로 걷다가 혹여 급한 용무가 될 요량이라면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라도 타고 가는 그런 마음이 와 닿습니다.
오늘 보낸 사랑한다는 말을 한 달이 넘어서야 알게 되는 그 시절이라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전 사랑한다는 말과 달리 잠시 후 가슴에 송곳 하나 깊숙이 들여 꽂는 이 시대에 아까 말한 사랑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어지러워집니다.
편지가 가는 동안 농익은 마음이 더 짙어지고 더 깊어질 무렵에 한 장의 편지를 손에 담았을 때 얻는 기쁨은 얼마나 클지 싶습니다. 느리다는 느낌으로만의 편지가 아니라 더 다듬고 더 씻어내고 그런 가운데 나의 마음을 정하게 만들어가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면 더 좋을 듯싶은 마음이 듭니다.
편지문학관에 들러 보니 옛 시대에 오고 간 편지를 보면서 새삼 오래전 이 땅에 살다 갔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도봉산 입구에 유희경과 매창의 시비가 있습니다. 편지문학관에 이들이 나눈 애절한 사랑의 시들이 쓰여있었습니다. 오늘 이러한 사랑이 그리워졌습니다. 간절한 이 마음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간에 떠돌다가 저들의 가슴에 가 닿았을지요.
▲ 유희경과 이매창의 사랑도 느리게 받았을 시와 편지로 얼마나 애가 닳았을지요.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편지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폐물처럼, 그렇게 여기는 마음이 폐물처럼 느껴집니다.
후회의 마음에 오늘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한 장 쓰겠습니다.
도봉구민회관 1층 편지문학관은 코로나19가 만들어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결혼식장 등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대한민국 최초의 편지문학관으로 지난 3월 15일 개관하였습니다. 장소는 서울 도봉구 도봉로 552 도봉구민회관 내 1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도봉구 구민회관 1층에 개관한 느림의 미학 ‘편지문학관’.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 시에서 미망인이었던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청마가 보낸 5,000여 통의 편지와 시에 관한 이야기가 그리움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연민이 가득해집니다. 손 편지 한 장 쓸 시간이 없이 시간에 옥죄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손은 그사이 기능 하나를 잃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편지를 써, 마음이 흰 종이를 적시며 그대 가슴에 나의 마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립니다. 오늘 밤은 사랑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사랑한다고…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msik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