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병풍이 한자리에 '조선, 병풍의 나라 展'

 

 

2017년 11월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은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건축물로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의 마당과 ‘달항아리’의 소박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22층으로 그다지 높지 않은 큐브형 건물은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누구나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개방성이 장점이다.

지하철에서 사옥에 이르는 연결 통로는 잔잔한 은빛 조명으로 꾸며져 마치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 전경(좌), 사옥 내부(우) 3층까지 열린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아모레 신사옥 지하에 자리 잡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AMORE PACIFIC MUSEUM OF ART)에서는

고미술 기획전으로 <조선, 병풍의 나라>전이 열리고 있다.(2018. 10. 3.~12. 23)

 

 

병풍을 주제로 여는 최초의 전시


이번 전시는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온 생활용품인 병풍을 주제로 한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병풍은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에 묘주상의 배경으로 처음 나타난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러 널리 쓰였다.

궁궐 정전(正殿)에 놓인 어좌의 배경인 일월오봉도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제작되었고,

양반가의 사랑방을 장식하던 책가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쟁도,

부귀와 영화를 상징해 여인들의 처소에 두었던 모란도 등 조선시대에는 궁궐이나 민간에서 다양한 소재의 병풍들을 제작하고 사용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추운 겨울에 외풍을 막기 위해 병풍을 쳤고 있으며 지금도 차례를 모시거나 제사를 지낼 때 병풍을 쓴다.

최근 들어서는 민화의 유행을 타고 다양한 소재의 병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병풍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곁에 있다.

 

 

병풍전이 갖는 의미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의 병풍 78점이 선보인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리움, 호림박물관, 개인소장품 등 다양한 소장처들의 병풍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에는 보물로 지정된 작품 두 점을 비롯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그려진 다양한 병풍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민화의 특성이 반영된 작가 미상인 작품부터 조석진, 채용신 등 작가가 밝혀진 병풍.

조선의 문인화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경향이 반영된 그림들도 다수 볼 수 있어 병풍의 회화적 가치를 폭 넓게 느껴볼 수 있다. 

 

    

▲ 다양한 모란도병풍

 

▲ 어진 화가 채용신이 그린 부부 초상화 병풍

 

 

걸작들의 향연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첫 작품으로 <금강산도10폭병풍>이 관람객을 맞는다.

마치 정선의 <금강산전도>를 보는 듯, 우뚝 솟은 금강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 번째 방에는 <해상군선도10폭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김홍도의 해상군선도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그 방에서는 병풍을 수선하며 나온 부재료들을 한쪽에 전시해 놓아 병풍의 기본구조와 제작과정도 짐작해볼 수도 있다. 

 


▲ 해상군선도10폭병풍

 

 

의궤를 닮은 궁궐의 병풍


세 번째 방에는 왕실의 병풍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월오봉도8폭병풍>을 비롯해, 보물 733-2호로 지정된 <헌종가례진하도8폭병풍>과

왕세자가 천연두에서 쾌차한 것을 기념해 연 잔치를 그린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8폭병풍>과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을 담은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을 볼 수 있다.

특히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은 대한제국 개국 이후인 1902년  작품으로

궁궐을 지키는 수비군이 신식군대로 그려지고 태극기 또한 묘사되어 있어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병풍들은 궁궐의 의례를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묘사해 마치 텔레비전 중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일월오봉도8폭병풍

 

 

조선 병풍의 모든 것을 보여주다


네 번째 방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소설의 내용을 그린 병풍과 화조도, 어해도, 지도들이 그려진 병풍들이,

다섯번째 방에서는 효제충신(孝悌忠信) 등 유교적 윤리를 담은 문자도 병풍,

여섯 번째 매화의 방에서는 양반 문인들이 즐겨 그렸던 매화,

그중에서 보물 1199호로 지정된 유숙의 <홍백매도8폭병풍>과 양기훈의 초본에 수를 놓은 <자수매화도10폭병풍>이 나란히 전시되어

그림과 자수를 비교하며 감상하도록 해놓았다.

일곱 번째 공간에서는 조선의 명승지나 명소를 그린 병풍들과

조선시대인들이 꿈꾼 이상적인 도시의 풍경을 그린 <태평성시도8폭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여덟 번째 방에는 화조도, 문자도, 등 다양한 자수 작품의 병풍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에 비해 몇 배가 많은 제작비가 든다는 자수병풍의 유행은 조선 후기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하는 듯이 화려한 무늬와 빛깔을 자랑한다. 

 

  

▲ 자수8폭병풍(좌), 문자도병풍(우)

 

 

조석진, 안중식과 더불어 행복했던 시간들


그 외에도 감지에 금니로 그린 노안도병풍, 평양성을 그린 <기성도8폭병풍>,

세계지도를 그린 병풍 등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귀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18~9세기 들어 중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누항문학의 발달,

19세기에 민간에서 널리 유행하고 꽃피운 민화의 발달은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 양반을 넘어 민중에게도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에 힘입어 다양한 소재의 병풍이 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 전시된 78점의 병풍은 그 양에서도 방대하지만 소재 면에서도 다종다양하다.

게다가 전시된 병풍 하나가 대개 8폭에서 10폭임을 감안하면 19세기~ 20세기 초의 그림 수백 점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 노안도병풍(좌) / 기자(箕子)의 도시 평양을 그린 <기성도8폭병풍>(중) / 세계지도가 그려진 병풍(우)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오원 장승업의 화맥을 잇는

조선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그림을 여러 점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승업의 영향으로 호방한 선이 매력적인 조석진의 그림과 절제미가 돋보이면서도

대가의 기품이 느껴지는 안중식의 그림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사람 외에도 박승무, 변관식, 안중식이 아끼던 두 제자 심산(心山) 노수현, 청전(靑田) 이상범 등

근대 한국화가들의 그림도 여러 점 만나는 뜻밖의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 안중식, 조석진의 그림과 병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