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행] 로마: 그것은 사랑 - That's Amore V
"로마는 영원하다"
That`s Amore는 딸과 내가 로마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아씨오네가에 있는 이태리 식당 이름이다. 이태리는 식당은 어디나 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더 자랑한다. 구글에서의 리뷰가 1700개나 달린 유명한 식당이지만, 비좁고 낡았다. 테이블도 수도 적고 주방과 식당이 좁은 복도로 이어져서 접시를 나르는 웨이터로 정신없지만, 항상 예약 손님도 많고 즉석 손님도 줄지어 기다린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딸은 카르보나라 파스타를 난 해물 파스타를 시켰다. 피렌체에서 산 카드를 주었다. “멋진 여행을 함께 하며 잘 안내해준 딸! 고맙다”라고 썼다. 둘이서 식당을 나와 트레비 분수까지 걷고, 함께 사진을 찍고 판테온까지 걸었다. 이태리는 저녁이면 식당마다 밖으로 식탁을 내놓아 손님들이 밖에서 술과 식사를 하며 오래 앉아있다. 판테온 근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계속 걸어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버스커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우리는 밤 로마 거리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와 잠들었다.
트레비 분수 주변엔 많은 관광객들이 둘러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딸과 난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에 나보나 광장까지 걸었다.
4유로의 즐거움: 젤라또 가게는 밤늦도록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린다.
다음날 새벽 4시 알람 소리가 너무 컸다. 나도 일어나서 준비하고 파리로 돌아가는 딸을 배웅하러 피우미치 공항으로 함께 갔다. 딸은 패스포트 검열 후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안에어를 예약했는데 사전에 온라인 체크인을 안 했다고 돈을 더 요구한다. 이렇게까지 하나 짜증이 날 텐데도, 딸아이는 자기 실수라고 군소리 없이 계산을 한다. 외국에 살면 흔히 겪는 일이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나 없는 새 두 뼘만큼 훌쩍 성장한 거 같다.
내가 찾은 곳은 포로 로마노
딸이 시야에서 떠나자, 갑자기 마음이 텅 빈다. 20일을 알콩달콩 함께 지내다 떨어지니 기분이 이상하다. 홀로 공항버스 타고 테르미떼 역으로 돌아와 딸과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호텔로 돌아갔다. 그러나 내겐 아직 28시간이 더 남았다. 설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안 온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포로 로마노다. 로마를 여행하면서도 빠지기 쉬운 곳이 바로 이곳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웬만해선 엄두를 못 낸다. 도로 위에서 멀리 바라보는 것만으로 관광을 마치는 그룹들이 많지만, 마음이 허전한 내겐 집중해서 투어할 최적지인 것 같다.
바르베니 역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을 가서 도착하니 매표소 앞엔 이미 긴 줄이 서있다. 또 옆에선 암표상들이 가이드 투어하라고 호객한다. 이태리 관광지는 어디나 공공연하게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례가 되어 입장할 때 또 줄지어서 레이저 검색을 통과해야 한다.
콜롯세오와 코스탄틴 개선문
팔라티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로 가는 갈림길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
콜로세오에서 성스러운 길이라는 ‘Via Sacra’ 거리를 따라가면 포로 로마노로 간다. 고대 로마의 고급 주택가였던 팔라티노 언덕과 포로 로마노로 가는 갈림길에 잘 보존되어 있는 티투스 개선문이 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였다. 포로 로마노는 여러 황제를 거쳐 오면서 발전했고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쳐 온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얼핏 보면 폐허와 같은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과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가 회랑의 지붕처럼 이어진다: 로마 군대에게 그늘을 제공하려고 가지를 쳐서 위로 우산처럼 만들었다 한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개선문 뒤에 원로원 건물이 있다
상세한 오디오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어 오디오를 빌리고 셀프 투어를 시도한다. 그런데 안내판과 오디오의 번호가 틀려서 못 찾고 같은 자리만 맴돌다가 겨우 터득하고 길을 따라 팔라티나로 간다.
팔라티나는 고대 로마의 고급 주택가였다. 가이드 없이 혼자 투어하면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고 놓치는 게 많다. 혼자 다른 곳을 헤매다 보면 사람들은 다른 곳에 모여 있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품을 보고 느끼는 문화적 충격 상태를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는데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다 훨씬 더 큰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었다. 미술관에선 집중할 곳이 한정되어 미술품 바로 앞에서 번호를 오디오로 들으니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포로 로마노에선 건물 형태를 알 수 없는 폐허 상태라서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다. 뿐만 장소에서도 시대를 달리해서 여러 유적이 겹쳐 지어졌고 또 나의 고대 로마의 역사적 지식이 얕아서 오디오의 설명만으론 눈앞의 모든 것을 이해 못 하는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혹은 엄청난 규모의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앞에 서니까 너무 커서 당황스럽다. 바라보고 있으면 허깨비처럼 비현실적인다.
엄청난 규모의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실제로 직접 봐야 그 방대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파우스티나 신전과 로물로스 신전
반면 옆에 있는 로물루스 신전은 4세기에 세워진 건물인데 청동문은 너무 상태가 양호해서 아직도 사람이 살 거 같다.
위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허물어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로마
오래 걷다 보니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것이 진리라고 불교에서 말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면 삶의 덧없음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고통을 벗어난다고 한다.
한참을 걷다가 계단에 걸터앉아 신기루나 백일몽 같은 고대 유적을 응시한다. 이 광장에서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웅변가와 전투에서 승전하고 돌아온 영웅호걸과 군사들과 환호하는 군중들 그리고 상인들이 떠드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내 앞에 있는 저 흙더미는 내로라하는 세도가들이 서로 시기해서 죽이고 죽음을 당한 바로 그 장소다. 영웅도 죽고 사람들도 죽고 제국도 멸망하고 웅장하던 도시는 몇 개의 기둥과 받침돌 그리고 허물어진 벽만 남고 흙으로 변했다. 영광과 욕망, 번영과 사치와 그리고 권력이 바람결의 모래처럼 현재의 과학이 만들어낸 문명도 흔적 없이 사라질 거다. 우리 인류가 가는 길 그리고 나의 삶의 끝은 어디인가? 로마의 유적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인류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제국의 흥망성쇠에 관해서 끝없이 화두를 던질 것이다. 로마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