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시(悼亡詩)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

 

사람이 가잘 절절한 아픔을 느낄 때는 바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이 아닐까? 옛날 중국에서는 엄격한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어 남녀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천시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경우만큼은 그 절절한 심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는데, 이를 도 망시(悼亡詩)라 불렀다. 이 도망시의 원조인 시가 바 로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도망시> 3수다. 반 악은 자가 안인(安仁)으로, 서진시대 육기(陸機)와 더 불어 쌍벽을 이룬 최고의 문인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남으로 보통 두 사람을 꼽 는데, 한 사람은 전국시대 초(楚)나라 삼려대부 굴원 (屈原)의 제자인 송옥(宋玉)이며, 다른 한 사람은 후세 에 반안(潘安)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풍운 아다. 반악은 미남에다가 좋은 가문 출신, 당대 최고 의 문장가로 손꼽혀 재모쌍전(才貌雙全)의 인재로 불 렸는데, 당시 권문세가였던 서진(西晉)의 외척인 양 씨(楊氏) 집안과 혼인을 하게 된다. 금슬도 좋았는데 하늘이 시기해서인지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 나보내게 되었다. 그 애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가 바 로 <도망시> 3수이며 그의 대표작처럼 불리고 있다. 이후 아내를 잃은 슬픔은 이를 본떠 ‘도망(悼亡)’, 벗을 잃은 슬픔은 ‘도붕(悼朋)’ 등으로 표현했다. <도망시> 3수 중 첫 번째 시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소개해 본다.

 

 

 

 

荏苒冬春謝(임염동춘사)

들깨 무성하다 겨울 봄에 그 자취를 감추고,

寒暑忽流易(한서홀류역) 계절은 홀연히 다시 바뀌니,

之子歸窮泉(지자귀궁천) 그댄 황천(黃泉)으로 돌아가,

重壤永幽隔(중양영유격)

 

작가는 원강(元康) 8년 초겨울, 아내 양씨가 병을 얻 어 원강 9년 봄에 장사를 지내게 되는 과정을 첫 번째 구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구는 망자 (亡者)를 위해 복상(服喪)한 지 다시 1년이라는 시간 이 흘러간 것을 표현하고 있다. 복상기간도 끝나 탈상 (脫喪)을 하게 되니, 소위 사자(死者)가 망자(亡者)로 바뀌는 슬픔을 ‘영원한 격리[永幽隔]’란 단어로 그 슬 픔을 표현하고 있다.

워낙 유명한 시여서, 첫 구절에 나오는 ‘임염(荏苒)’이 란 단어는 후대에 도연명과 두보 등 역대 유명 시인들 이 다투어 인용을 했고, 이후로는 그 의미가 본래의 ‘들깨가 무성하다’는 뜻에서 1~2구의 전체 의미인 ‘세 월이 덧없이 흘러간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다.

 

 

 

如彼翰林鳥(여피한림조) 마치 저 숲을 나는 새처럼,

雙栖一朝隻(쌍서일조척) 쌍으로 살다 하루아침에 홀로 되고,

如彼遊川魚(여피유천어) 저 내에서 헤엄치는 고기처럼,

比目中路析(비목중로석) 나란히 다니다가 도중에서 헤어진 듯하네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 바다에 비목어(比目漁) 가 살고 남쪽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사는데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 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 있는 물고기이고,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각각 한 개밖에 없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돼야 비로소 날 수 있는 새라 한다. 모두 남녀의 떨어 지기 힘든 사이를 의미하는데, 작가는 이 단어를 인용 해 떨어질 수 없는 배우자를 잃은 자신의 고통을 절절 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아호는 양우養愚.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경영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에 교수로 복귀하여 강의하고 있다,

오랜 소망이었던 서예와 한학을 다시 공부하게 됐다. ‘난정서’를 접하게 된 이후 국내외 문헌을 찾아가며 난정서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 <난정연회>가 있다.

 

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bravo@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