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 활동소감, 50+를 통해 세상을 보다 

 

한 해를 보내며... 
어느새 또 1년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막상 지나온 1년을 되돌아보니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숫자 하나가 훈장처럼 따라붙으려 한다. '심쿵!' 이럴 때 더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처럼, 소설처럼, 시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내가 50+시민기자단에 들어간 이유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동작50플러스센터에서 기자활동을 했는데, 50+세대들이 열정적으로 사회활동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50+재단에서 일하며 더 많은 50+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면서,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나 행사가 아닌, 50+의 삶을 담아내고 싶었다.

 

'살아있다면 우리 모두가 거쳐지나가야 할 인생 2막의 따뜻한 이야기를...' 

 

   

▲ 정창완 사진작가(좌), 소미경 씨(우)
 

내가 만난 50+  
취재 때문에 만났지만 잊을 수 없는 분들이 있다. 첫 기사를 썼던 정창완 사진작가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생활이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장수사진을 찍어주는 봉사자이다. 나는 한 요양원에 50+행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우연히 그분을 보았다. 행사장 한쪽에 간이스튜디오를 설치해 놓고 어르신들께 사진을 찍어주다가 행사가 끝난 후 '장수사진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며 아래층 병실까지 찾아가 누워있는 환자들을 사진 찍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래서 행사취재 외에도 이 분의 인터뷰를 받아와 단독 기사를 실었었다. 기사가 나간 후 1통의 문자를 받았다. "멀리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제 기사를 보내줬더니,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제가 교사 은퇴 후에 이렇게 봉사하며 살길 잘했어요."

 

또 한 분은 '엄마와 딸'이란 기사에 실린 소미경 씨. '세대차와 교육'이란 문제를 엄마와 딸의 대화를 통해 다루었다. 이것은 주제가 정해진 그 달의 기획기사였기 때문에 상담사인 소미경 씨의 생활을 소개하진 않았었다. 소미경 씨는 복지관과 주민센터를 통해 알게 된 독거노인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보살핀다. 또 매주 문제있는 비행청소년들을 상담하기 위해 의정부 집에서 멀리 안양보호관찰소까지 찾아간다. 청년이라도 버거울 것 같은 빡빡한 봉사스케줄을 가진 소미경 씨는 50+를 넘어 60+이다.

 

이 외에도 50+가 가진 문화적인 지식과 경험, 재능을 사회적 약자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는 '문여세(문화와 나눔으로 여는 세상)'의 대표 곽병호 씨. 32년 간 재직했던 금융기관 은퇴 후, 서부캠퍼스에서 50+의 재무 설계를 돕고 있는 우정식 재무상담사, 인생 2막을 음악으로 즐겁게 열어가는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 내의 여러 음악밴드들의 밝은 미소와 버스킹도 떠오른다. DDP에서 있었던 '모두의 축제' 때, 만났던 사회를 향해 베품의 뜻을 가진 많은 50+커뮤니티들까지...

 

"50+를 취재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 곽병호 씨(좌), 우정식 씨(우)

 
공존하는 50+
기자라는 신분으로 한 해 동안 많은 50+세대를 가까이 만나보고 깨달은 것이 많다. 50+들은 각자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베풀며, 오히려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나 50+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리라 믿는다. '배려하고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세상' 나는 50+를 통해 이것을 보았다.

 

글을 맺으며... 
나는 현업으로 영상제작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쉼 없이 일이 밀려들어와 유난히 바쁜 한 해 였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50+시민기자단의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김승희 PM과 리컴나인 송재수 대리의 덕이 크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50+에 가면 내가 50+라는 것이 뿌듯했다. 나이듦에 대한 감사, 내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만나고 변화된 마음이다."


▲ 정창완 씨가 촬영하고 있는 나를 갑자기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