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술

 

‘술과 담배’ 어느 쪽이 더 해로울까. 순전히 몸의 건강만을 생각한다면 담배가 훨씬 해롭다. 질병 발생률이나 사망률 등 모든 보건지표에서 담배가 술보다 나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음으로 인한 교통사고나 가정파탄, 업무방해 등 사회경제적 요인까지 감안한다면 술이 담배보다 나쁘다는 것이 보건학계의 정설이다. 알코올은 대뇌의 충동 조절중추를 마비시켜 평소 성실했던 사람도 패가망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임 공직자들의 프로필에 ‘두주불사(斗酒不辭)’란 용어가 자랑스럽게 소개될 정도로 음주에 관대 한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러하다. 건강을 지키며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첫째, 자신의 주량을 알아야 한다

주량이란 단순히 의식을 잃지 않고 억지로 버틸 수 있는 술의 양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난폭한 행동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양이다. 사람마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다르지만 가능하면 8잔 이내로 마실 것을 권유하고 싶다. 한 잔에 담긴 알코올은 술의 종류와 상관없이 10g 내외로 일정하다. 독한 술일수록 술잔의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간이 알코올 10g을 처리하는데는 대략 1시간 30분이 걸린다. 따라서 만일 밤 9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다음 날 아침 9시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12시간 동안 알코올 80g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8잔이 마지노선이다. 단 폭탄주는 예외다. 폭탄주는 다른 술에 비해 한 잔에 두 배 가 까운 알코올이 들어 있으므로 폭탄주만 마신다면 4잔 이내가 적당하다.

 

 

둘째, 마신 알코올의 총량과 속도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따져봐야 한다

알코올의 총량은 간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술에 취하느냐, 안 취하느냐가 아니다. 술에 취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알코올 분해효소의 능력 차이다.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금세 발개지는 사람이라면 알코올 분해효소 능력이 약하다고 봐야 한다. 안 취하더라도 마신 알코올은 결국 간에서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량이 소주 2병인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는 매일 소주 2병씩 3일을 내리 마신 반면, B는 첫날 소주 3병을 마시고 잔뜩 취한 뒤 다음 날 이틀은 한 병도 마시지 않았다. A는 자신의 주량 내에서 아슬아슬하게 3일 내내 취하지 않고 보냈지만 의학적으론 B의 방식이 낫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기간에 마신 알코올의 총량이 A는 6병인 반면 B는 3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음 후 며칠 동안은 금주기간을 가져 간을 쉬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술 마시는 속도도 중요하다. 속도는 뇌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 직접적 으로 작용해 필름끊김 현상을 일으킨다. 필름이 끊기는 이른바 블랙아웃 현상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은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알코올의 총량이 적더라도 짧은 시간에 다량의 알코올이 들어가면 뇌 손상을 일으킬수 있다. 속도에 가장 영향을 받는 장기는위장이다. 공복일수록 알코올은 빨리 흡수된다. 빈속에 술을 마시는 것은 아주 좋지않은 습관이다.

도수도 중요하다. 알코올 흡수는 물리학적으로 농도 차이에 의한 확산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도수가 높은 술일수록 흡수도 빠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워밍업 시간 이 필요하다. 따라서 술은 순한 술에서 독한 술로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술은 ‘물’로 다스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술을 많이 마시면 수분이 보충될 것 같지만 실제론 반대다. 알코올이 소변 형태로 물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맥주 500cc를 마시면 소변 600cc가 나온다는 의미다. 역설적이지만 술을 많이 마실수록 탈수 증세에 빠진다. 과음 후 소변이 마렵고, 목이 마른 이유도 바로 여기에있다. 음주 전후에는 가능한 한 많은 물을 마시자.

 

“알코올의 총량이 적더라도 짧은 시간에 다량의 알코올이 들어 가면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속도에 가장 영향을 받는 장기 는 위장이다. 공복일수록 알코올은 빨리 흡수된다. 빈속에 술을 마시는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꼭 술을 마셔야 할 중요한 술자리가 있다면 가기 전에 시판 중인 전해질 음료를 서너 잔 이상 미리 마셔두면 좋다. 술자리에선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물도 한 잔 같이 마셔주도록 하자. 취하느냐 안 취하느냐는 알코올의 총량이 아닌 농도에 의해 좌우된다. 물을 마셔 체액이 늘어 나면 같은 양의 술에도 덜 취하고 오래 버틸 수 있다.

 

넷째, 숙취를 덜 일으키는 술을 알아두자

발효주보다 증류주가 좋다. 증류주도 물과 알코올 외에 다른 성분이 섞이지 않은 것일 수록 숙취를 덜 일으킨다. 숙취로 고생하기 쉬운 술은 포도주다. 포도주보다는 막걸리나 청주 등 곡주, 곡주보다는 맥주, 맥주보다는 위스키, 위스키보다는 소주가, 소주보다는 진이나 보드카가 숙취를 덜 일으킨다. 같은 양의 알코올이라면 소주나 보드카가 알코올 도수는 높지만 포도주나 맥주 보 다 낫다는 뜻이다. 따라서 취하고 싶다면 소주나 보드카처럼 독한 술로 취하는 게 다음 날 숙취 없이 깨끗하다. 그러나 독한 술은 알코올 흡수가 빨라 통제력을 잃게 만들어 과음을 유도우려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의 독주 소비량은 세계 1위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체 알코올 소비량으론 세계 13위이지만 소주나 위스키 같은 독주 소비량에선 1인당 연간 9.57ℓ로 세계 1위 알코올 소비국가인 몰도바의 4.42ℓ보다 두 배나 많다.

 

다섯째, 술은 조금씩 마시면 보약이 된다

사망률이나 심장병 발생률 등 각종 보건지표 조사에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사람보다 소량 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 건강이 좋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술의 종류와 상관없이 관찰된다. 알코올이 혈관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단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실 경우다. 석잔을 넘기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식사 후 한두 잔 반주 삼아 술을 마시는 것은 긴장도 풀어주고 건강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 건강을 위해 마시는 술은 기왕이면 레드와인이 좋겠다. 레드와인 속에 다량 함유된 레스베라트 롤(resveratrol) 등 포도 껍질의 색소 성분이 강력한 항산화작용을 해 노화를 억제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는 프랑스 사람들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심장병 발생률이 낮은, 이른바 프렌치 패러독스도 그들이 즐겨 마시는 레드와인 덕분이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 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