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0대 남성에게 올리는 글
오늘(2월 6일)로 제가 세상에 태어난 지 딱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감개무량합니다. 기아와 추위, 전염병과 전쟁처럼 인류를 괴롭혀온 질곡의 세월을 피해 좋은 시절 태어나 반세기 동안 생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1967년생 유명인사들을 잠깐 살펴 봤습니다. 꽤 많더군요. 니콜 키드먼과 줄리아 로버츠, 송강호, 왕조현, 강수지, 김희애, 차인표가 저와 동년배입니다. 김택진과 이해진 같은 재벌기업인도 있고 우병우와 진경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으로 50세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일단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태어난 1967년 우리나라에서 102만235명이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주민등록 연앙인구를 보면 82만4263명이 있습니다. 통계청 담당자께 여쭤보니 주민등록은 거주지와 상관없이 생존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료라고 하시더군요.
지난 50년 동안 제 또래들 가운데 이미 19만5972명이 사망했다는 뜻(정확하게는 주민등록 말소)입니다. 질병이나 사고를 견뎌가며 50세까지 생존한다는 게 쉽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위기의 세대 50대
보건학적으로 50세 진입은 남자에게 특히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16년 통계청의 성별사망률 발표자료를 보면 50대가 남녀사망률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50~59세 사망률을 보면 남자는 21만3000명이 사망했는데 여자는 7만4000명이 사망했습니다. 남녀 사망률 차이가 2.9배나 됩니다. 50대엔 남성이 여성보다 죽을 확률이 3배 가까이 높다는 뜻입니다.
연령별 사망률 남녀 차이를 보면 40대가 2.3배, 30대는 1.7배, 60대가 2.6배입니다. 50대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납니다. 앞으로 평균적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를 의미하는 기대여명을 봐도 50세 남성은 30.8년으로 여성의 36.4년보다 5.6년이나 빨리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자가 여자보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한다, 남자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남자가 여자보다 질병에 걸렸을 때 증상에 둔감해 빨리 병원에 가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Y염색체가 X염색체보다 부실하다 등 남자가 여자보다 빨리 죽는 데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50대에서 가장 두드러질까요? 중요한 것은 미국은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자료를 보면 50대 남녀 사망률 차이가 1.6배 정도밖에 안됩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50대 남성에게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제부터는 꿈보다 해몽입니다. 객관적 정답이 따로 제시될 수 없는 문제란 뜻입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담배와 술에 관대했던 시절
대한민국의 50대 남성이 자의반 타의반 몸을 망쳐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담배를 볼까요?
놀랍게도 제가 대학교 4학년이던 1988년에 와서야 국내선 비행기에서 전면적인 금연이 실시됩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믿기 힘들겠지만 1988년 이전엔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는 것입니다. 신문사 편집국도 너구리 소굴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2000년대 초까지 임신한 여성 후배가 있는데도 옆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사를 쓰곤 했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임 장관 기사에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두주불사란 문구가 자랑스럽게 박히곤 했습니다. 선배 세대와 달리 과거 386으로 상징되던 우리 50대는 막걸리에서 소주, 맥주, 양주에 폭탄주까지 주종을 가리지 않고 마셨습니다. 대낮에 술 마시고 수업을 듣고 술 마시고 기사를 써도 풍류쟁이로 양해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생활습관 바꿔야
요즘은 사라지다시피한 무지막지한 직장회식문화의 마지막 희생양도 우리 50대였습니다. 줄담배에 강소주, 어쩌다 불에 바짝 구운 삼겹살과 함께 2차와 3차를 달려가며 밤새 폭음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담배와 술처럼 몸에 나쁜 것은 우리가 나서서 모조리 없애버려야지”라며 한껏 호기부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습니다. 돌이켜보건대 몸에 나쁜 것이란 나쁜 것은 모조리 50대 남성들이 도맡아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회 탓이나 시대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우리 50대가 헌신적으로 일에 몰입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뤘다고 자화자찬하지도 않겠습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50대 남성이 자신의 몸을 돌보고 배려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반성이 필요합니다.
50세는 동서양 모두 중요한 연령이더군요. 공자님은 50세를 세상 이치 다 깨우치는 연령이란 뜻으로 지천명이라 불렀습니다. 서양에서도 성서를 보면 유대인이 예수님에게 “네가 아직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아느냐”라며 핀잔을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나 나이 오십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과대 포장된 면이 큽니다. 막상 오십이 되어보니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 하나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건강을 소중히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보답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대체로 역치의 법칙을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99도에서 끓지 않고 100도라는 역치를 넘어서야 비로소 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마다 역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평생 1만 개비 담배가 폐암의 역치라면 이 사람은 늦게라도 9900개비에서 멈춘다면 폐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50대 남성들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음식을 골고루 드십시오. 욕심을 덜 내고 과로나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말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 검진과 진료를 받으십시오. 요즘처럼 불황에 시달리는 시대일수록 건강이 재산입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 50대 남성들이 건강하게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 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