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 18세 치어리더팀

언니들, 섹시하게 날아오르다

 

 

 “하나, 둘, 셋, 넷….” “꽃손, 주먹손, 칼손, 재즈손.” 방배동의 한 무용 연습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음색의 목소리들이 구령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도 난다. 여학생들일까?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마주하고 나니 맞는 것 같다. 표정과 마음, 몸짓까지 생기 넘치는 치어리더팀. 우리는 그들을 낭랑 18세라 부른다!

 

 

 

 평균 나이 74세, 색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다

치어리더. 스포츠 경기장에서 운동선수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이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야구장 또는 농구장에서 만날 수 있다. 멋진 포즈와 율동으로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경기장의 꽃’ 치어리더. 젊고 화려한 여성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이 무대에 평균 나이 74세 ‘낭랑 18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소녀처럼 웃고 떠들다가도 치어리더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영락없는 치어리더 아가씨로 변신한다. 본격적인 치어리딩 연습에 앞서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하늘 위로 뻗고 허리를 제법 유연하게 돌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놀랍다. ‘나이 들어도 저렇게 섹시(?)할 수 있구나’란 생각마저 들정도 진짜 낭랑 18세의 모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고나 할까. 작년에는 기아 타이거즈 홈 경기장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니어 치어리더팀이 세상 빛을 본 것은 지금으로 부터 4년 전, 낭랑 18세 시니어는 전국에 50여 명이 있다. 그중 서울에 있는 20여 명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치매예방체조 배우다 치어리더가 되다

낭랑 18세는 (사)세계전통문화놀이협회(이하 협회·대표 조혜란)의 치매예방체조 프로그램 ‘낭랑스쿨’로 출발했다. 조혜란 대표는 8년 전, 처음 이 협회를 만들면서 시니어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많아졌다.

 

“협회 초기부터 쭉 전통놀이를 바탕으로 한 치매예방체조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협회 대표를 하면서 동시에 대한치어리딩협회 실버분과를 맡은 적이 있었어요. 시니어들도 치어리더 옷을 입고 뛰어보니 생각보다 잘하시더라고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낭랑 18세로 활동하는 시니어들 대부분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다, 팔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몸이 아파 오랫동안 심신이 약해진 시니어들에게 ‘스스로 설 수 있다’는 생각운동이 치어리딩을 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했다.

 

“전통놀이로 치매 예방도 하고 무엇보다 일어서서 나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어요.”

치어리딩 연습을 하기 전 낭랑 18세들은 빙 둘러앉아 손뼉을 치고 손가락을 접으면서 큰 소리로 셈을 한다. 이 모든 활동이 치매 예방운동이자 전통놀이를 통한 생각운동이라는 것. 무엇보다 이곳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시니어들 대부분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할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

“보건소에 가서 체력 측정을 할 때마다 근력도 늘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치어리딩 지도자로 제2인생을 열다

현재 낭랑 18세 회원 중 12명은 실버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곳에서 치어리딩을 배운 시니어가 동년배를 가르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지도자 실습을 두 차례 정도 다녀온 회원도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시니어다.

낭랑 18세를 향한 각종 매체의 취재 경쟁(?) 또한 부쩍 늘었다. 치어리딩 연습에 방송에도 얼굴을 비춰야 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낭랑 18세는 오늘도 초록색 치맛바람 휘날리며 목청껏 응원의 함성을 외치고 있다. 낭랑 18세 파이팅!

 

 

 

[ MINI INTERVIEW]

내 인생 다하는 날까지 파이팅~ (김순덕·80)

 


▲낭랑18세의 왕언니 김순덕씨

 

 

치어리딩을 시작한건 1년 됐어요. 원래 다리가 많이 안 좋았어요. 처음 제가 여기 왔을 때 조혜란 대표님이 걷는 모습을 보더니 “뛸 수 있을까요?” 하면서 걱정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남에게 지지 않을 만큼 잘 뛰고 있어요(웃음). 제가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아 다들 왕언니라고 불러요.

규칙적인 운동을 하니까 다리가 정말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치어리딩을 하면 아무래도 즐겁죠. 병원에서는 제가 나이도 있으니까 평소에 살살 걷고 약으로 달래가면서 생활하라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수영이랑 걷기를 했어요. 그러다 우리 딸이 여기 팀장인데 한번 와보라고 해서 왔다가 완전 재미를 붙였습니다. 좋은 친구 만나 대화도 하고 도시락 서로 싸와서 뷔페식으로 나눠 먹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도 치어리딩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요.

 

 

 

치어리딩 새내기입니다! (임창애·67)


▲치어리딩 새내기 임창애씨

 

동네에 형님 한 분이 계신데 나를 보더니 운동하러 가자면서 난타를 배우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뭔 난타냐고 그랬어요. 쫓아와보라고 해서 ‘그래 한번 가보자’ 하고 왔지요. 안 그래도 운동은 하려고 했어요. 무릎이 아파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운동은 저같이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만 맞춰진 것들이 많잖아요. 그건 또 따라 못할 것 같고. 와서 여러 형님들 하는 거 보니까 나도 조금만 하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3월에 들어왔으니까 몇 번 안 했죠. 이번에 새로운 유니폼으로 바꾼다는데 기대가 돼요.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