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귀향도 멈춰버린 섬 ‘교동도’

 

 

강화도에 접어들어 관광객이 붐비는 도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보면 앳된 군인이 차를 막아선다. 그가 전해준 비표는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쳐 낡아 있었지만, 잃어버렸을 때 간첩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쥐어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때마침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에 잡음이 끼어들며 괜한 으스스함을 더한다. 그렇게 언덕을 넘으니 교동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다리 앞에서 다시 군인의 출입통제 시간에 대한 당부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이 섬과 마주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와 말이다.

 

 


교동도 대룡시장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은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키가 큰 오동나무[喬桐]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 교동도는 강화도 서쪽에 자리 잡은 섬으로 면적으로는 14번째로 꼽힐 만큼 큰 섬이다. 섬 사이의 물살이 거세 조선시대 때는 탈출이 어려운 유배지로 활용되었다. 연산군은 이 섬에 유배돼 생의 마지막을 보냈고 광해군과 임해군, 고종황제의 조카 이준용도 교동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고려 때는 중국과의 교역 중심지 중 한곳이었지만, 교동도가 무엇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부분은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집성촌이라는 것이다. 교동도는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오는 탈북자가 있을 정도로 북한 황해도와 가깝게 마주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위해 교동도로 월남했던 황해도 도민들이 휴전 후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집성촌이 형성됐다.교동도의 대표적 관광지로 꼽히는 대룡시장을 황해도 연백군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의 슬픈 사연도 시간의 흐름에 바래버린 것인지 대룡시장에서 만난 한 실향민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제 이 시장에서 실향민은 별로 없어요. 다들 일흔이 넘은 나이이니까요. 많이 돌아가시기도 했고 아이들은 모두 인천이나 서울로 떠나 남은 실향민 가족도 거의 없어요.” 실제로 대룡시장의 명물 중 하나였던 시계방도 이곳을 지키던 주인의 죽음으로 멈춰버렸지만, 이어받은 이가 없어 문을 닫았다. 시간이 멈춘 것이 이 때문인가 싶을 정도다.

 

 

 


섬을 간척해 평야를 만든 탓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섬의 흔적은 벼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실향민의 한, 켜켜이 쌓인 곳

이전까지 교동도는 북한 땅과 맞닿아 있는 탓에 출입제한이 있었고, 강화도에서 건너오는 뱃삯은 차량 편도가 1만6000원이나 되어 관광지로 환영 받지도 못했다. 유동인구도 적었다. 이런 외부와의 단절은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을 붙잡아둔 듯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만들었다. 약국이며 양복점이며 시계방, 잡화점 할 것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교동도의 대룡시장이 유명해진 것은 지난 2010년 KBS2 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소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9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후인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완공되면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이어졌다. 교동도 토박이들은 아직도 이런 관심에 의아해한다. 대체 이곳에 볼 게 뭐가 있다고 몰려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관광객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교동다방이다. 이 마을에 살면서 15년째 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은 섬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한 이 중 하나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동네 장사였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섬에 사람이 꽤 많았어요. 다들 쌀농사를 크게 지어 풍족했죠. 술 마시다 흥에 겨워 2차, 3차 오는 모임도 몇 개나 됐으니까요. 그러다 사람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한동안 섬이 조용했다가, 다리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밀려들었어요. 여기 사방에 붙어 있는 메모도 다리가 생기면서 다녀간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써놓고 간 것들이에요. 장사가 잘될 때는 쌍화탕을 하루에 100잔까지 팔아봤어요. 이후 석모도에 다리가 생기면서 서울 사람들이 그리로 갔고, 요즘은 손님이 좀 줄었어요.”

 

대룡시장에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간식 ‘꽈배기’다. 관광객들의 배를 채울 만한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교동도의 한 주민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시장의 대표 상품이 됐다. 일부 상인이 놀러온 사람들이 물건은 안 사고 꽈배기만 입에 물고 다닌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최근에는 외지 상인들이 대룡시장의 빈 가게들을 채우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복각해 곳곳에 붙여놓은 군사정권 시대의 포스터들도 시장의 옛 모습 위에 개성을 더하고 있다. 1970년대의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 등 일부 가게의 수익은 마을 공동체를 위해 쓰인다.

 

 

 

북한과 맞닿은 땅

키가 낮은 시장 건물의 처마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제는 낯선 제비집이다. 교동도 사람들에게 제비는 지켜야 할 귀한 손님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건물 안에 집을 지어도 내쫓는 법이 없다. 바다 건너 고향 연백평야의 흙을 물어다가 집을 짓는 제비를 마치 북한의 가족처럼 대하는 실향민들의 마음 때문이다. 시장 곳곳에는 제비집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은실향민들이 고향 땅을 맘껏 드나드는 제비가 부러워 소중하게 여기는 모양이라며 심지어 이곳 사람들은 간식도 제비콩을 즐겨먹는다고 말한다.

대룡시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려가면 망향대를 만날 수 있다. 실향민을 위한 작은 쉼터와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 두대가 설치되어 있다. 섬에 많지 않은 높은 장소 중에 군사시설을 피해 고른 탓인지 접근도 쉽지 않고 전망도 그리 시원치 않다. 그래도 지척에서 황해도 땅을 볼 수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북한 땅이 가깝다는 것은 실향민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지만 외지 출신 주민들에게는 공포가 되기도 한다. 2010년 바로 옆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은 이곳 주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한 주민은 자다 깨면 눈앞에 간첩이 서 있는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한동안 불안장애로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았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교동도는 다리가 생긴 지금까지도 일부 통제가 이뤄진다. 교동대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왕래가 완전히 차단된다. 여행지 정보를 미처 챙기지 못한 남녀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갇혀 밤을 지새울 수도 있겠다는 괜한 걱정이 든다. 섬 안에 대형 숙박시설은 아직 없지만 몇몇 민박집이 운영 중이다.

 

 

 

1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 2 방문자들의 온갖 사연이 사방에 붙어 있는 교동다방의 천장. 3 북한 땅이 눈앞에 보이는 망향대.
4 마을 곳곳에 붙은 포스터. 비록 새로 
그려진 것이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가 된다. 5 대룡시장 최고의 인기상품 꽈배기.

 

 

 

인력으로 만들어진 평야

교동도의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은 벼 이삭으로 가득한 넓은 평야다. 섬에 무슨 평야가 있을까 싶지만 육지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 농기계들을 길에서 쉽게 마주친다. 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정미소가 이곳의 쌀농사 규모를 짐작케 한다. 교동도의 쌀은 맛이 좋기로 소문나 섬 주민의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어왔다.

 

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교동 평야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곧고 길게 쭉 뻗어 있어 한국전쟁 때 활주로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넓게 펼쳐진 논이 바다 처럼 보이고, 가운데 작은 동산이 황금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진다.

교동도가 산으로 둘러싸인 평야, 즉 분지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땅이기 때문이다. 3개 섬 사이의 바다였던 이곳은 고려시대 때 대대적인 간척이 이뤄져 평야가 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최영 장군이 간척을 주도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섬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고구저수지와 난정저수지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구저수지는 가물치와 베스가 잘 잡히는 낚시 명소로 낚시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난정저수지는 농업용 저수지로 지정돼 낚시는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으로 영화,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고있다.

 

교동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가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인 1127년에 창건돼 국내에 남아 있는 향교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초입을 따 라 펼쳐진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군락이 빚어내는 풍광은 이곳이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교동도를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다면 강화군에서 만든 강화나들길 중 두 개의 교동도 코스를 추천한다. 바로 ‘교동도 다을새길’과 ‘교동도 메르메 가는 길’이다. 한 코스당 소요시간은 6시간. 만만치 않은 거리이지만 그래야 교동도의 멋진 풍광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