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가을을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수선화과 상사화속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 Herb.

 

 


▲수선화과 상사화속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 Herb

 

 

열흘간의 황금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0월 입니다. 연휴와 함께 계절도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 면서, 산과 들을 울긋불긋 물들 이는 단풍을 찾아 강원도로, 설악산으로, 높은 산으로 너나없이 줄지어 떠나는 광경 이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그 와중에 비할 데 없이 붉게 타오르는 가을을 만나려면 남 도로 가야 한다고 길을 잡는 이들이 있습니 다. 단풍보다 붉게 타오르는 진홍의축제 를 보려면 남으로, 남으로 가야 한다고 속삭이 는 이들이 따로 있습니다. 꽃무릇을 만나려는 이들 입니다.  고창 선운사 등 남도의 절 집 마당에 펼쳐진 수천, 수만 평의 꽃무릇 군락이 선홍으로 붉게 물드는 그 장관을 놓 칠 수 없다며, 강원도 단풍을 제쳐놓고 남도행을 고집합니다.

 

비늘줄기가 돌 틈에서 자라는 마늘을 닮았 다고 해서 석산(石蒜)이란 국명을 얻은 꽃 무릇은 상사화나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 사화,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꽃과 마찬가지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즉 잎과 꽃이 나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애타게 그린다는 국내 상사화속 7개 식물의 하나 입니다. 다만 다른 상사화들이 대개 6월에 서 8월 사이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을 피우고 일찍 지는 데 반해, 꽃무릇은 9월 초 순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 중순부터 진 홍색 꽃을 피우다가 추석 즈음에 절정을 이 룹니다. 그리고 꽃이 시들면 그때부터 잎이 새로 돋기 시작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이 되면 사그라듭니다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만/이 무렵//

그래선 안 된다고/그러면 안 된다고//

안간힘으로 제 몸 활활 태워/세상,

끝내 살게 하는//

무릇, 꽃은 이래야 한다는/무릇,

시는 이래야 한다는//

―오인태 시인의 ‘꽃무릇’

 

 

석산보다 꽃무릇이란 우리말 별칭이 더 친 숙한 꽃. 그 또한 본래는 야생화였겠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만나는 것은 선운사 등 유서 깊은 사찰에서 일부러 가꾼 조경용, 원예종입니다. 불교와 함께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꽃무릇이 남도 지역의 사찰에 널리 번진 것은 알뿌리에 방부제 효 능이 있어 경전을 묶거나 단청이나 탱화를 그릴 때 즙을 내 풀에 섞어 바르면 좀이 슬 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예로부 터 일부러 심어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늘줄기로 풀을 쑤면 경전을 단단하게 엮을 수 있다고 해서 사찰에서 상사화를 많 이 심어온 것과 같은 이치로 보입니다.

 

 

Where is it?

고창 선운사와 함평 용천사, 영 광 불갑사가 예로부터 대규모 로 꽃이 피는 3대 꽃무릇 군락 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 의 인공 숲’으로 천연기념물 154 호로 지정된 경남 함양의 상림공원도 길이 1.6km 물길을 따라 꽃무릇이 자연스 러우면서도 운치 있게 피어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 사찰들도 경내 에 꽃무릇을 대거 심고 있는데, 강남의 봉은사와 강북의 길상사가 볼 만하다. 충남 보령의 성주산 자연휴양림도 꽃무릇 수십만 송이가 진홍색 꽃을 피워 많은 이들이 찾는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 (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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