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기분 좋아 신나게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고 그저 쭉 행복할 것만 같습니다. ‘나에게 이런 순간이 있었어.’ 라며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지나간 불행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제의 불쾌한 경험은 감정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감정호르몬 때문입니다. 감정변화에 따라 기분을 좋게 하여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이 있고, 불안감과 두려움, 분노를 일으키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본 것은 도파민, 세로토닌, 아드레날린, 엔도르핀 등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좌우하는 또 한 가지는 뇌입니다. 사람의 뇌는 3중구조입니다.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입니다. 파충류의 뇌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뇌로 간뇌와 연수로 본능적인 기능을 하고, 포유류의 뇌는 해마, 편도 등 변연계이며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은 이성을 다루는 영장류의 뇌, 인간의 뇌로 사고와 이성의 중심적인 기능을 합니다.
문제는 포유류의 뇌로 사람의 감정과 정서의 중심이 됩니다. 원하는 것이 충족되고 만족스러우면 본능적인 뇌나 감정의 뇌, 이성의 뇌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불편한 자극이 생기거나 인지되면 변연계는 인간의 뇌인 전두엽이 합리적인 기능을 하도록 가만 두지 않습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도록 해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수동적 공격인 삐지거나 상대가 원하지 않은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내일이 시험이어서 공부를 해야 하지만 부모가 싫은 소리를 하면 공부가 하고 싶지 않아 빈둥거립니다. 부부가 다투게 되면 두 사람 사이는 일정기간 불편하리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기어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의견충돌이나 언쟁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릇은 잘 깨집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그릇은 놋이나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잘 깨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사기그릇이나 유리그릇이 많아 조금만 부주의하면 깨지거나 금이 가고 흠집이 생깁니다. 예쁘고 멋진 그릇일수록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데 그릇을 가만히 두었을 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루는 사람이 그릇끼리 부딪치거나 그릇이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의 자극을 주었을 때 일어납니다. 그릇은 깨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루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이 조각을 밟아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릇과 같습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화려하고 멋진 그릇처럼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극에 민감해 마음을 건드리면 호르몬과 뇌가 순식간에 반응합니다. 쉽게 말해 감정을 자극하면 사람은 감정적이 됩니다. EQ가 중요시 되고 세일즈 현장 또는 광고나 마케팅에서 사람의 EQ에 호소하는 이유가 같은 원리입니다. 이성적 사고나 판단보다 감정에 치우쳐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좋은 감정에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안 좋은 감정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그릇은 부드럽게 다루고 사용하고 나서 좋은 천으로 잘 닦아내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윤기가 납니다. 잘못 다루어 부딪치거나 떨어뜨리면 흠집이 생기고 깨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순간 마음에 금이 가고 조각이 납니다. 금이 가고 조각난 마음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옆 사람과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릇과 사람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릇은 한 개씩 각자 다른 공간에 놓이면 부딪치거나 떨어뜨려 깨질 염려는 없습니다. 사람은 조금 다르며, 특히 가족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멀리 떨어져 살거나 가끔 만날지라도, 아니 몇 년을 만나지 않을지라도 정서적으로 가족이라는 한울타리 의식이 작용합니다.
결혼해서 이민 간 자녀가 한국 땅에 사는 부모에게서 자주 상처를 받고 있어 괴롭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따로 살고 있는 60대 자녀가 80대 부모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족은 내 내음대로 해도 돼.’ ‘너는 내 자식이잖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의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가 한 일이고 공적은 맞지만 버리지 못해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가족주의 영향입니다. 물리적 분리는 됐더라도 정서적 분리가 일어나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지리적으로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정서적 분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한 공간이라는 항상성이 작용합니다.
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가족은 어떨까요? 매일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갑니다.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 사이에서도 상처와 고통을 겪는데 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가족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니라고요, 아무 일 없다고요.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상처가 덧날까봐 모른 채 하며 차라리 덮고 가는 겁니다. 자꾸 들썩거리면 상처는 계속 더 커지거든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감정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삐진 사람이 소심해서, 대범하지 못해서, 옹졸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아셨을 겁니다. 물론 미성숙이라는 과제는 있지만 성숙과 미성숙은 다른 차원의 접근입니다. 성숙하다고 감정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상한 감정을 다루는데 성숙한 사람은 바람직하고 능숙하게 소화하며 관계를 깨드리지 않은 성품과 기술적 처세가 잘 작동하도록 내적 외적으로 훈련된 것입니다.
뇌의 기능과 호르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 같은 감정의 지배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입니다. 나도 연약하고 가족 모두 다 연약합니다. 부딪치고 잘못 다루면 흠집이 나고 금이 가며 깨지는 감정의 유리그릇입니다. 소중히 다루어 주세요, 부모님, 자식, 형제 서로 신분과 위치 연령이 다를 뿐입니다. 매일 깨끗하게 씻고 닦아주어 빛이 나면 나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릇은 스스로 닦을 수 없습니다. 가족, 그들은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인정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주십시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