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정신적 고통은 우리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한다.

- 슈창베르제 외,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중에서

 

 

최근 TV 광고의 한 장면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노인은 걱정하는 딸의 전화에 잘 먹고 잘 있다고 말하지만 선 채로 대강 넘기는 끼니는 부실하다. 중년의 한 남자 탤런트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아내와의 사별을 상상해보던 중 혼자 남는다는 사실은 상상하기도 싫다며 울먹인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중년 이후의 사별

50대 이후의 사별은 상호의존도가 높고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 부부간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찰나의 상실이기에 충격과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다.

전화를 걸면 받을 것 같고 문을 열면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황망함,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먼저 떠나버렸다는 원망과 배신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리움, 혼자 남았다는 두려움이 뒤섞인 복합적인 슬픔과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당사자들은 입을 모은다. 감정적인 고통 외에도 무기력해져 외출도 꺼리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더 심각해지면 수면장애, 면역력 약화,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 유독 심하게 앓는 한국인

한국인, 특히 한국 중장년 남성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오래, 심하게 앓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미시건대 인구연구센터 아푸르바 자다브 교수팀의 각국의 55세 이상 26,835명을 대상으로 한 2002-2013년간의 연구조사를 인용한 보도에 의하면 배우자 사별 이후의 우울정도 변화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영국, 중국, 유럽 등지와 비교해 그 상승폭이 크게 나타났다(미국 대비 2.6배). 특히 주목할 대목은 여성은 사별 후 1년 이내 우울감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가 점차 안정세를 보인 데 반해, 혼자가 된 남성은 2년 후 우울감 최고치를 보인 이후에도 신체적 정서적 불안감이 지속된다는 조사 결과다. 한국 중장년 남성들은 감정을 억누르고 쌓아두는 경향이 있으며 슬픔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호소가 많았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는 모두 힘든 과정을 겪는다. 오랜 지병으로 예견된 죽음이거나 급작스럽고 예견되지 않은 죽음 둘 다 남아 있는 이를 힘들게 한다.

IT 붐 시대를 가장으로서 성실히 살아오느라 늘 바쁘기만 했던 한 남성은 첫사랑이던 아내를 암으로 잃고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들었던 농담으로 인해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친구가 한 농담은 상처한 남자가 새 장가갈 기대에 웃는다는 세속적인 우스갯소리를 빌린 “너 그래도 혼자 있을 때는 좋아서 웃지?”였다.

멀쩡히 아침에 인사한 후 저녁에 돌연사로 배우자를 잃은 60대 초반의 아내는 자녀의 혼사라는 인생의 과제를 이제 혼자 치러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집단상담 형태의 사별 애도상담에 참여하는 동안 목소리가 유난히 높고 씩씩했던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다며 깔깔 웃곤 했지만 애도상담 회기 중 고인에게 편지를 낭독하는 순서에서 차마 편지를 읽지 못했다. 기껏 막고 있는 둑이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터져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이 5,60줄에 심심하다면 복 받은 인생

배우자와의 사별만이 관계 상실과 관련된 위기는 아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현재 50+세대는 8,90대의 부모와의 사별과정에서 힘겨워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60줄에 드니 무료해 죽겠다”는 하소연에 “나이 5,60줄에 심심하다면 나름 복 받은 인생이다”라고 누군가 자조적으로 말했듯이 전환기의 내 삶을 점검하거나 쉴 여유도 없이 오랜 간병 등, 노부모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자식으로서 추스르느라 가족간의 갈등을 겪게 되거나 번아웃되는 경우도 근래 자주 보게 된다.

퇴직 즈음의 삶에서 누구보다도 위로가 되어준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유난스럽다고 할까봐 맘껏 슬퍼하지도 못한 채 오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슬픈 말이라도 하세요. 말하지 않은 슬픔은

괴로운 가슴에 속삭여 그것을 갈기갈기 부숴버리니까요.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모든 상실은 애도가 필요하다

상실 초기에 겪는 비탄을 벗어나 그 이후의 삶을 겪어나가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 애도Mourning이다. 즉 애도란 괴로움,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그 사이를 통과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애도상담학자 윌리엄 워든W. Worden은 각 문화마다 다른 지점이 있으나 상실 이후에 일반적으로 다음 4가지 과업을 겪어내야 한다고 말한다.(Grief Counseling and Grief Therapy, 5th Ed.)

 

첫째)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일단 고인이 이제는 떠나고 없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그녀)는 이제 이승에는 없다.

둘째) 슬픔의 고통을 겪어나가며 애도하기

고인이 어떤 형태로 떠났든 사회적인 시선이나 분노, 죄책감 등 감정에 억눌려 슬픔을 보류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눈물은 남녀 불문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훌륭한 치료제란 말이 있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울고 싶은 대로 울고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말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

셋째) 고인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외적 적응, 내적 적응, 영적 적응의 과정이 필요하다. 외적 적응으로는 가장의 역할, 주부의 역할 등 떠난 이의 빈자리를 대체할 역할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적 적응은 정체성의 문제다. 특히 독자적인 사회생활 없이 배우자의 사회적 역할이나 정체성에 의지해 오고 애착이 높았던 경우일수록 고인의 부재 이후 혼란을 느낄 확률이 높으므로 자신만의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

영적 적응은 세상은 과연 자비롭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든 신에 대한 원망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원치 않는 일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나와 만나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고작 26세의 자식을 먼저 보내는 참척의 고통을 겪은 후 밤낮으로 신에게 격렬히 따져 묻고 몸부림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며 이후 신에게 그렇게 항의하고 절규할 수 있어서 그나마 그 시간을 지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고 전해진다.

넷째) 새 삶을 시작하며 지속적인 관계 찾기

적절한 의례를 통해 떠난 이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활동을 통해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면서 상실의 슬픔을 통과한 뒤의 더 성숙한 나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위의 4가지 과업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슬픔은 모두 개별적이고 독특하며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즉 위의 과업들이 시간표처럼 순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앞의 단계를 다시 반복하면서 과업을 치러내게 되면 비로소 애도과정이 마무리된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을 위로하는 법

상실 이후 애도에도 일정한 과정이 필요하듯이 상실에 직면한 사람을 위로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 <조의 표현의 기술The Art of Condolence>을 참조해 누군가를 잃은 이를 위로할 때의 주의점을 정리해 본다.

 

 

1. 섣부른 말보다 침묵이 낫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건네는, ‘좋은 사람이라 빨리 데려간 거다’ ‘다 신의 뜻이다’와 같은 말들 때문에 남은 이는 상처받는다. 이러저러한 치료방법은 시도해봤는지 등의 질문도 남은 이가 잘못해 고인을 보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입이 잘 안 떨어진다면 그냥 침묵으로 위로하라.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이면 전해진다.

2. 좋은 기억들을 나누자.

슬픈 기운으로 돌아가는 뻔한 말보다 예전의 좋은 기억을 꺼내는 게 현명한 위로자다. 그림동화, ≪오소리의 이별선물≫에서 오소리가 떠난 후 동물들이 모여 오소리와 얼마나 좋은 기억이 많았는지 나누며 위로 받고 치유되는 따뜻한 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

3. 내 감정보다 당사자의 감정을 배려하자.

때로 자기 감정에 빠져 유가족보다 자기가 더 슬픈 듯 굴거나 자신의 경우를 대입해 조언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위로방식이 아니다. 슬픔을 경험하는 방식은 모두 달라서 누군가는 슬플 때 집안 대청소에 더 몰두하기도 한다.

4. 죽음의 죽자(字)도 꺼내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터부시되어 왔다. 그러나 죽음이란 단어를 굳이 돌려 말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해도 된다. 그래야 당사자도 죽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5. 감정을 뺀 직설적 말이 환영받을 때도 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착하지만 공허한 위로의 말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위로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담백한 말과 (장지에 관한 조언 등) 현실적인 도움이 고맙게 받아들여진다.

6. SNS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일에는 페이스북에 축하 댓글을 달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등 멀리 인사만 전해도 되지만 슬픈 일은 직접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 좋다.

7. 위로하는 시간에는 마감이 없다.

상실 즈음만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생일, 명절 등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있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선물은 ‘시간의 선물’이라고 한다. Pay It Forward라는 행복한 선행 다단계는 여기에서도 통한다. 누군가에게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간을 선물하라. 꼭 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시간의 선물로 돌려줄 것이다. 그럼 세상은 점점 따뜻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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