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인격체
1. 둘째 딸과 동네 찻집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데 네댓살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와 유모차에 태운 유아를 데리고 두 엄마가 들어온다. 자매 같다. 옆자리에 앉자마자 꼬마 아이는 케이크! 주스! 라고 하며 또, 이것저것 물어보며 무엇인가 잔뜩 기대감에 얼굴빛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둘째 딸은 아기들을 너무 좋아한지라 옆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잠시 후 냉커피와 주스, 커피빵이 나왔다. 아이에게는 커피빵을 먹으라고 주며 둘은 음료를 마신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아이는 맛없는 커피빵을 주고 자기네들만…. 둘째와 나는 안타까움에 서로 눈만 쳐다보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꼬마 아이가 "내 음료?" 하며 엄마의 음료수 잔으로 손이 간다. 엄마는 종이컵을 한 개 가져다가 아이에게 주스를 나누어 따라 준다. 아이의 실망하는 얼굴빛이 역력하다. 조용히 엄마 빨대를 가져다가 종이컵 주스를 빨아 마신다. 당장 주스를 사서 아이 손에 당당하게 들려주고 싶었다.
2. 유튜브 TV 몰래카메라 장르를 시청하다 놀라운 대화 장면에 적잖이 당황했다. 집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아버지가 퇴근해 돌아오면 당황할만한 화제를 꺼내, 보이는 반응을 공급하는 콘텐츠 TV다. 딸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 뒤에는 대부분이 딸을 비하하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옆에 앉아 있는 엄마는 남편의 말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녀들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마음이 씁쓸했다.
3. 퇴직해서 집에 있는 김영식(가명) 씨는 주야교대로 근무하는 아들이 밤샘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모습을 보면 늘 안쓰럽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아들에게 ‘야 xx야! 밥 처먹어라.’ ‘저 xx는 밥도 안 처먹고 뭐 하고 다니는 거야.’라는 식으로 항상 아들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가족관계의 한계
우리는 때로 지나치게 인색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인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에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지불식간의 인색함으로 기쁨을 빼앗아 버립니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 관계까지도 어렵게 만듭니다. 알고서 인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작은 관심의 부족으로 생겨납니다.
어린 자녀이지만 당당하게 한 인격체로 대접받아야 함에도 아이이기 때문에 푸대접받기에 십상입니다.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할 수 없으므로 아이는 받아들이지만, 자존심과 인격에 큰 상처로 남아 무의식에 잠재되어 집니다.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거치면서 상처 난 자존심은 대개 과정 가운데 치유되고 회복되지만 계속 반복되면 여러 반사회적 성향이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는 가족관계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가족이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 많이 받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모든 것이 용납되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모든 것을 억압하고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특히 자녀에게는 어린 자녀일지라도 더 관심을 쏟고 소홀히 말고 더 친절히, 더 소중히, 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며 더 나은 삶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구속하고 통제합니다. 자녀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부모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자신의 가치체계와 다른 말에 순종하는 경우에는 독립한 이후에 부모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가족갈등의 큰 원인이 되며 부모는 배신감에 자녀는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지지자와 조력자로
자녀는 부모의 그늘 속에서 성장합니다. 어떤 그늘이 되어야 할까요? 크고 시원한 그늘,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뜨거운 해 아래 있다가 더위에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말, 격려의 말, 사랑의 언어를 매일 공급해줘야 합니다. 자녀와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곰곰이 살펴보세요. 상스러운 말, 지시하거나 통제하는 말을 하고 있다면 인격적인 말, 부드럽게 인정하는 말, 친구 같은 대화의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들은 부모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힘든 고통을 말할 곳이 없어 우리 자녀들은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담아내기와 버텨주기
남편의 사업을 함께하는 아들은 늘 출근 지각을 합니다. 다른 직원들 보기 민망하여 야단을 친 아버지에게 대들고 나서 아들은 독립하여 단독으로 사업을 합니다. 지지부진한 사업으로 투자 비용도 못 건지게 될 것 같아 남편은 아내를 닦달합니다. 아내도 득달같이 아들을 닦달합니다. 아들은 부모 집을 찾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들이 다시 자신의 사업체로 들어오도록 설득하라고 합니다. 아들은 들은 척도 안합니다.
상담실을 찾은 K여사에게 아들에게 부드럽게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아들을 진정 위로하는 문자를 보내도록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회 상담에서 K여사는 아들이 자신과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자식은 부모의 등이 필요합니다. 어린 자식이나, 청소년이나 성인이거나 다 같습니다. 와서 비빌 수 있도록 자녀에게 등을 내어 주십시오.
직장에서 퇴근한 딸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잔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온종일 사람에게 시달린 마음을 꺼내놓습니다. ‘잘 들어주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그랬어. 힘들었구나. 어떡하니.”라며 집중해서 경청하고 끈질기게 버텨줍니다.
이야기는 끝이 없이 계속되고 저는 한순간 무너집니다. “그것은 이렇게 해야지.” 아차 실수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치는 순간 딸은 강한 눈빛으로 저를 쏘아봅니다. “아빠 상담하는 사람 맞아. 아빠나 잘하세요.”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모는 노력해야 합니다. 자녀 나이와 관계없이 인격체로 대해야 합니다. 지지자, 조력자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담아내기와 버텨주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친구 같은 관계로 함께 찻집에 가기 위해서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멋진 모습을 만들어 가십시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