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돌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 잘랄루딘 루미

 

우리가 살아온 삶이란 결국 마음이 걸어온 마음의 길이었다. 고생과 역경의 삶을 살았다면 마음의 길은 울퉁불퉁했을 것이고, 평범하고 무난한 삶이었다면 마음의 길은 한결 평탄했을 것이다. 마음은 애초에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마음의 길을 따라 더듬어 가보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욕망을 품고 아픔을 겪기 이전에 마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 50+세대는 이제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나의 마음을.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마음 여행은 관계의 여행이기도 하다.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의 경로를 알 수 있다. 마음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보고, 마음이 어디서 멈추는지 미래를 더듬어보자.

 

마음의 탄생 :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탄생한 걸까.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마음의 원형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한다. 정신 분석 전문의인 토마스 버니 박사는 저서 <태아는 알고 있다>에서, 태아는 전통적인 소아학 분야에서 일컬어지듯 '수동적이고 생각이 없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맛보고 심지어 단순한 수준의 학습까지 가능하다. 성인처럼 섬세하지는 않지만 감정을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버니박사는 어머니의 태도가 태아의 심리 발달 및 출산 시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어머니가 보여주는 감정과 행동의 패턴은  태아의 상태를 형성하는 가장 주된 자극의 원천이다.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아버지가 임신에 대해 보이는 태도 및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헌신이다. 유전적 형질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바로 양육의 질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정서적 상태는 이미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와 태어날 때 느낀 감정에 따라 정해져 있다.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였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들고, 우리의 마음은 그 틀 안에서 고통과 즐거움을 반복하게 된다. 어린 시절 경험한 외로움이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가족관계는 인간관계를 찍어내는 붕어빵 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자란 가족 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형성된다. 마음은 자신의 과거를 무한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음의 실체 : 성인이 되어 부부가 되다

우리가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거쳐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마음의 실체가 드러난다. 순수한 줄만 알았던 자신의 마음이 어느새 탐욕과 욕망의 화신이 되어 있고, 분노와 좌절의 아픔을 겪고 있다. 결혼하여 부부가 되면 그 실체는 더욱 진면목을 드러낸다. 부부는 문명과 원시가 공존하는 관계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상호간의 예의와 체면이 있어서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가정에 돌아오면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 집에서는 가면을 벗고 예의와 체면도 내려놓고 자신의 원시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게 된다. 그 원시적인 감정은 누구를 향해 표출되는가. 바로 배우자를 향한다. 배우자는 서로의 감정을 숨기거나 감출 수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문명의 껍데기는 부부관계 앞에서 더 이상 맥을 못 춘다. 생활 속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만 부부 사이의 감정은 원시적인 상태에서 머물러 있다. 부부관계가 어려운 이유이다.

 

더구나 아동기에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고통 받은 사람이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신을 결핍으로 이끌었던 상황을 똑같이 자신의 자녀에게 재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릴 적 부모에게 억눌렸던 자기 욕구와 보상 심리를 현재의 배우자와 자녀를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이유도 없이 배우자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의 불안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누르고 배우자에게 나를 맞추려는 노력은 내면에 긴장과 갈등을 유발시킨다. 대체로 남편과 아내는 성실하지 못해서, 참지 못해서, 버티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너무 참아왔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거리감과 친밀관계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아침에 좋은 감정이었는데 저녁에 갈등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럴 때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차분한 대응을 해야 관계가 편해진다. 불안과 분노가 외부 요인이나 누구의 탓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부관계에서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 일쑤이다.

 

마음의 종착점 :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다

50+세대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살다보니 은퇴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고 부모와의 정서적 연결고리는 점점 엷어져 간다. 자신의 사랑과 증오, 아픔과 분노를 살펴보고 자신의 가족관계를 돌아보며 마음의 길을 따라가 보자.

 

50+세대는 자신의 가정을 따뜻한 둥지로 만들어 가족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평안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사람일수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복하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최악의 고독이란 지금의 나 자신과 불편한 상태로 지내는 나날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자신의 오랜 도피처이자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마음의 좁은 공간에서 서서히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신만이 거처하는 마음의 방이 있다. 그 방은 어릴 때 드나들던 컴컴하고 구석진 골방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에 친밀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그 오랜 친구 같은 마음의 공간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환하고 밝은 마음의 방을 새로 만들어 이사를 가야 한다. 그 방으로 가족을 초대하고 친지와 지인들을 초대해보자. 그 방이 삶에 지친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화해와 사랑의 방이 되도록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음의 길을 걷다보면 가족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서 작은 좌절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쉽게 저절로 얻어지는 평화나 기쁨, 행복은 없다. 가정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따뜻한 둥지이기도 하지만, 자녀들이 언젠가 둥지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날개 짓을 할 힘을 길러 주는 곳이기도 하다. 자녀들을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시키고 분리시키는 것도 50+세대가 해야 할 몫이다. 물론 둥지를 벗어나기 위해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결정적인 날개 짓은 본인의 몫이다

 

 

50+세대는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가 함께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마음은 과거를 배회하기를 좋아한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그때의 정서적 상태에 습관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마음은 시공간을 무시로 여행하며 하늘 높이 치솟아 천국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지옥 밑바닥으로 처박히기도 한다. 그래도 50+세대는 한평생 잘 살아왔다고 자부해도 좋다. 50+세대가 된 지금 마음이 언제 어떻게 과거를 배회하는지 그 실체를 파악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된다면 그 때 비로소 ‘마음 여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노라’, ‘즐거운 소풍을 마쳤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