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그리고 하늘
우리에게 하늘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특히 가을 하늘은 크나큰 축복이다. 가을 하늘을 보며 사람들은 하늘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봄 하늘도 있고 여름과 겨울 하늘도 있는데 왜 유독 가을 하늘에 대해서 유달리 감동을 하는 걸까. 아마도 길고 더운 여름을 견디고 맞이하는 가을이라서 그럴 것이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으면서 선선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아서일 것이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는 기쁨을 주고 감동의 탄성을 자아내게 해서일 것이다.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지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며,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과 감성을 자극해서일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여름과 겨울 하늘은 그렇다 치고 봄 하늘은 어째서 가을 하늘에 밀리는 걸까. 봄은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하게 되지만 곧이어 닥치는 더운 여름으로 인해 감상에 잠길 시간이 짧은 반면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가 길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제공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봄은 계절의 여왕답게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로 사람들을 잠시 황홀하게 했다가도 꽃이 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같이 시들어가지만 가을은 산 전체가 울긋불긋 물들어 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봄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새싹이 파릇파릇 피어올라오듯 사람들이 삶의 희망에 들뜨기도 하고 잠재해있던 욕구불만을 표출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촉발되기도 하는 ‘잔인한 계절’인 반면, 가을은 그런 봄의 희망과 욕구 불만이 현실 속에서 충족되기도 하고 좌절의 아픔을 겪기도 하는 진통 과정을 겪으면서 실현 가능한 성과와 예측 가능한 결실을 분별하게 해주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고 50+세대에게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50+세대가 되어 맞이하는 가을 하늘은 젊은 시절의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더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과 단풍잎에 물든 사랑의 추억
가을을 맞아 단풍으로 물든 길을 걷는 것은 큰 축복이다. 단풍은 멀리서 볼수록 더 멋있고 아름답다. 꽃은 가까이서 봐야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단풍은 멀리서 봐야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시간을 내어 설악산이나 강원도 먼 산을 가도 좋지만 가까운 남산이나 양재 시민의 숲에만 가도 멋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남산의 단풍 길은 전망과 풍경도 좋거니와 남산공원의 남측 순환도로를 걷다보면 단풍 아닌 곳이 없다. 연인들이 걸어도 좋고 50+세대들이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코스이다. 반면에 양재 시민의 숲은 보기만 해도 차분한 정경이다. 숲의 단풍은 그 빛을 발산하기보다 고요히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다. 숲 속에서 사람들은 느린 걸음걸이로 경치를 감상하고 때로는 멈추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단풍에서 풍기는 색과 빛깔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여 마음마저 단풍으로 물든다. 단풍이 내 마음이 된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내 마음이 단풍이었던 건지 분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단풍을 보며 옛 추억에 잠겨보고 청소년 시절에 품었던 짝사랑을 기억해내며 피식 웃어볼 수도 있다. 초등학교 단짝이었던 짝꿍은 눈동자가 영롱하게 예쁘고 피부도 희고 고운 소녀였는데 나중에 커서 알아보니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 짝사랑했던 영어선생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영어선생은 대학을 갓 졸업한 풋풋하고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교 남학생들에게는 천사가 따로 없었고 미스코리아가 따로 없었다. 자신도 꿈 많은 젊은 청춘이었을 영어선생은 중학교 1학년이던 우리를 많이 귀여워해 주었다. 소풍갈 때 알았다. 영어선생을 짝사랑했던 아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을. 녀석들은 도시락을 두 개 싸왔다. 하나는 자기 꺼, 또 하나는 영어선생꺼. '음큼한 녀석들 같으니라구.' 안타깝게도 녀석들은 영어선생에게 도시락을 전달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싸들고 돌아가야 했다. 그 여선생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들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다. 가을의 풍경은 이렇게 이런 저런 추억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그만큼 하늘은 드높고 푸르다. 가을 하늘을 보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가수가 되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옛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 노랫말들은 이제 보니 하나같이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인생에 대한 통찰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중가요라고 가볍게 여겼던 노래일수록 더 그렇다.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모든 노래 가사에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해석들이 녹아들어 있다. 사랑하며 겪어야 하는 갈등과 방황 그리고 이별의 아픔에 대한 것들이다. 50+세대가 되어 들어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고 가슴에 와 닿는 가사들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단풍잎을 보며 아련한 사랑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붉은 단풍잎을 보며 열렬했던 사랑을 회상하기도 하고, 노란 단풍잎을 보며 아쉽고 안타까웠던 사랑을 회상하기도 할 것이다. 젊을 때는 노래 곡조가 좋아서 불렀을 뿐이지만 이제는 가사를 음미하며 혼자 흥얼거린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구나!' '나의 사랑도 그랬었구나!' 이렇게 가을은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계절이다. 50+세대는 그 깨달음을 통해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이다.
계절의 틈새에서 은자가 되기 위한 연습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50+세대라면 계절의 틈새에서 어느 날 문득 다가오는 고요한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 때의 가을 하늘은 우리의 소중한 조력자이자 시혜자(施惠者)의 역할을 기꺼이 제공한다. 어떻게 우리는 은자가 될 수 있을까. 특별한 자격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김선우 시인은 어떻게 우리가 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순환하는 계절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지복(至福)한 일이다. 순환하는 계절의 틈에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레 임해지는 명상의 집이 있다. 계절과 계절의 틈새에 자리한 그 명상의 집은 외떨어져 있는 움막이거나 조촐한 초가이거나 너와를 올려놓은 귀틀집 같은 것에 가깝다. 자기의 감각을 존중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은 계절의 틈새에서 은자가 된다.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다가도 아주 잠시 스쳐지나가며 머뭇거리듯이 다가오는 느낌으로 '아, 가을이다!' '오! 이렇게 멋진 가을 하늘이 다 있구나!' 하며 감탄할 때가 있다. 이렇게 홀연 멈추어 있을 때, 어떤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품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에 잠기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머나먼 피안의 세계, 근원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자신만의 고독한 존재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은 우리를 괴롭히던 욕망과 분노가 순한 양처럼 잠잠해지는 곳이고, 슬픔과 아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즈넉한 행복과 아늑한 평화로 충만한 곳이다.
'자기의 감각을 존중하며 살 줄 안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늘 같이 맑고 순수해지는 느낌이 들 때 그런 맑고 순수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남은 50+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망으로 충만할 때, 잘하면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자신의 미래에서 살짝 엿볼 때, 그 때가 바로 계절의 틈새에서 은자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은 아주 짧고 단명하다. 그 순간이 비록 잠시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은자가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의 시간이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은자로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진대 우리가 계절의 틈새에서 은자가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의 소중한 느낌은 일상에 묻혀 점차 희미해져 가겠지만 그 기억만큼은 좀 더 오래 자신의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50+세대라면 어느 누구나 드높은 가을 하늘과 두둥실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며 이렇게 계절의 틈새에서 은자(隱者)가 되는 기쁨과 평화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쁨과 평화의 순간을 맘껏 음미해보자. 두고두고 이 가을이 다 지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