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아이 낳지 않을 거예요.”
아들의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 선언으로 한동안 내 속은 다 키워놓은 꽃밭을 갈아엎은 듯 어수선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려 하지 않아 출산율이 심각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내 가정의 문제로 다가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많이는 아니어도 한둘은 낳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고많은 이유 중에서 아들은 이런 이유를 들었다.
“둘이 직장을 다니는데 맡아 길러줄 수 있는 가족이 없어 적절히 키울 환경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에 대해 인정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고,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이 기를 돈으로 하고 싶은 활동 하며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살고 싶고 자식에게 쓸 에너지를 부모에게 쓴다면 엄마도 좋지 않겠어요? 주위에 보면 자식들 때문에 특히 문제 있는 자식으로 고생하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왜 그런 생각을 아들이 했을까, 혹여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나? 결혼 전에 며느리가 아들만 둘을 낳고 싶다고 해서 ‘요즘은 딸 낳기를 원하는데 아들만?’이라며 나와 동시대 사람 같아서 속으로 살짝 웃었는데 말이다. 옆에서 조신하게 앉아있던 며느리는 그새 아들에게 물들었는지 아들만 둘 낳고 싶다고 말했던 입술을 꼭 다문 채 까만 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우리 때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낳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고 듣는 게 넘쳐서인지 아는 것도 많고 그 설득력도 대단하다. 그런 젊은 세대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내 집 마련과 육아 비용 등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아이에게 들일 비용을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는 데 쓰며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 출산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을 포기하거나 경력단절이 되는 것이 싫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고 잘 기를 자신이 없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반면 아이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50+세대들의 생각은 대체로 이렇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출산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자기 먹을 것은 타고난다)/ 부부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 노후에 든든한 배경이 되고 외롭지 않다/ 아이가 없으면 완성된 가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식 때문에라도 이혼하기 힘들어져 가정이 끝까지 유지된다/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구성원으로서 의무이며 책임을 지는 일이다.
생명을 낳고 기른다는 것. 과연 내 선택과 능력으로 낳았으며 나의 힘만으로 길러졌는가. 내 몸을 통해 아들과 딸이 세상에 나오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가 아이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부모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역시 나를 부모로 선택해서 내 자식이 된 것도 아니다. 단지 애들 아빠와 사랑하여 생긴 아이를 위해 평소보다 잘 먹으려 노력했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건강하게 자라라며 그들을 열심히 먹였을 뿐이다. 생명은 사람의 손 그 이상의 힘에 의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보다는 네 인생에 더 중요한 문제이니 네 생각과 판단을 존중하겠어. 요즘같이 부모도 자식도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 각자 생존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부모가 ‘낳아라 말아라’ 강요할 순 없겠지. 하지만 현재의 생각이 최선이 아닐 수 있으니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말고 긴 시간을 두고 더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어. 피임으로 아이의 출생과 수를 조절할 수 있고 나의 편익이나 사회 변화의 추세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생명을 단지 그것으로 가볍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불임부부들에겐 이루지 못할 꿈이란다. 그러니 어느 날 새 생명이 너희 부부에게 찾아온다면 무조건 감사하고 기쁘게 맞아주기를 바란다.
<잉태> 문향은, 2019년 11월, 프랑스 옹플뢰르 초대전에 전시되었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