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호모이코노미쿠스‘라고 한단다. 생물학에서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데 지혜를 의미하는 ’사피엔‘ 대신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를 넣은 신조어다. 지혜의 자리에 돈이 들어앉은 모양새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돈과 사람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돈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쥐고 흔드는 걸까. 사람에게 돈보다 더 영향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돈은 사람을 울게도 웃게도 한다. 그리고 돈으로 사람을 얻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잃기도 한다. 돈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짐승만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한 세대
50+세대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세대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돈쓰기가 될지를 생각해야 한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라’는 옛 속담이 있다. 누구나 잘 쓰기를 원할 것이다. 어떻게 써야 정승같이 쓰는 것일까.
돈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다음의 네 가지 타입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 있다. 즉 벌 줄만 알고 쓸 줄 모르는 사람, 쓸 줄만 알고 벌 줄 모르는 사람, 벌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 벌 줄도 쓸 줄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하려고, 무엇에 쓰려고 돈을 벌었는가.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은 고령임에도 값이 더 오를 거라며 오래되어 낡고 문제가 많은 그 아파트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과 값이 더 오를 비싼 집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하고 배가 부르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살 날이, 정확히 말하면 돈을 돈답게 쓸 수 있는 날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양반이 실제 쓸 수 있는 생활비는 적어서 쪼들리며 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만 하면서 돈을 버는 재미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일 자체가 좋다며 일에 치어 살면서 많은 돈을 쌓아 놓고도 쓸 줄 모르는 인생이다. 그렇게 번 돈을 자손에게 물려주려는 걸까? 하지만 자식에게 거저 돈을 물려주는 일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일인지, 자식이 앞으로 더 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무조건 쥐어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재산의 사회 환원을 마음먹었어도 실제로 유산을 포기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한다. 유산상속에 대해 여러 가지로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다죽다먹’의 인생이 되지 말자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는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에만 열중하다가 늙었다. 돈 자체가 목적이고 돈을 쓰는 방법과 그 용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좋은 집과 안락한 소파 등 온갖 것을 마련했으나 찾아오는 이는 없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이 그 집의 도우미뿐이었으니 이 부유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김삿갓이 길을 가다 초상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유족들로부터 비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김삿갓은 고인이 살아있을 때의 공적에 대해 물었다. 죽은 이의 생애를 다 들은 김삿갓은 ‘다죽다먹’이라고 써 주었고 유족들은 뜻을 모른 체 이 비문을 쓴 비석을 세웠다. 방랑시인은 비문에 차마 ‘먹다죽다’를 쓸 수가 없어 거꾸로 써 준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50+세대가 이 사람처럼 먹다가 죽은 인생이 아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은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한 철학과 인식
돈이 없는데 어떻게 쓰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있다고 쓰고 없다고 안 쓰는 것은 아니다. 없는 사람이 선한 일에 더 기부하며 있는 사람이 인색한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돈을 쓰는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의 문제라기보다 돈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했다는 중산층의 기준을 보면,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져야 하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에게 중산층의 기준을 물으면 대체로 어떤 말을 할까. 한 조사결과를 보면 아파트 평수, 월급, 자동차 등 주로 돈으로 중산층을 설명했다. 직장인들에게 물어서 나온 답이지만 개념과 인식의 차이가 참 크다.
돈은 필요하다. 특히 나이 들어 돈은 힘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며 자존감을 높인다. 그래서 많은 돈을 벌고 그것을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50+세대는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면 한번 잃으면 만회할 힘도 기회도 젊은이들 보다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는 것 못지않게 잘 써야한다.
수고하며 살아온 나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써야한다. 책임과 의무로 바삐 살아오느라 그동안 못했던 활동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친다면 ‘다죽다먹’의 인생이 된다. 더 나아가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하고 좋은 일을 위해 내 재정 범위 안에서 안배하여 적절히 쓰는 것도 필요하다. 돈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선한 일을 많이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자. 돈을 내입에 넣기만 하면 배설물이 쌓이지만, 주변에 베풀면 하늘에 보화가 쌓인다.
우리는 잘 벌고 잘 쓰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기본에 바로 설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나와 가족 외에 이웃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돈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며 돈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일에 돈을 쓸 때 참 기쁨이 있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는 우리 세대였으면 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낫다. - 전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