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얻는 것으로 삶을 꾸려 나간다.

우리는 우리가 주는 것을 통해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we make a living by what we get, we make a life by what we give.

- 윈스톤 처칠 Winston Churchill -

 

꼰대 유행 유감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경험법칙의 하나다. 최근 꼰대라는 말이 다시 유행한다는 뉴스가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꼰대로 되는 것일까? 진짜로 이 생각은 진실일까?

젊은이들은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나이든 사람,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신념을 강요하는 어르신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어려운 것을 잘 몰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꼰대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체로 자신만의 관념과 경험에 갇혀 사는 답답한 시니어를 비꼬는 말이다. 시니어 세대로 막 진입한 나로서는 이런 현상이 몹시 불편하다. 꼰대화 현상을 따져보는 이유다.

 

 

나이 듦이 꼰대를 만드는 것일까? 나이 듦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다. 시간은 경험을 낳고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가치와 신념을 얻는다. 가치와 신념은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삶을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다. 세상을 살면서 가치가 모호하거나 약하다면 온전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또한 경험은 세상살이를 위한 지혜를 낳는다.

이 점에서 나이 듦은 자연현상이면서 인생의 축복이다. 내가 이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젊은 시절에 깨달았으면 하는 지혜를 돌이켜 보지 않는 어른은 없다.

 

그럼에도 꼰대는 있다. 제법 많다. 가치와 신념에 동반하는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와 신념이 강할수록 다른 가치와 신념을 배제하기 쉽고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용인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일 수 있고, 내가 믿는 가치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대체로 고집스럽고 다른 가치와 신념에 닫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꼰대는 과연 인간에게는 불가역적인 현상인가? 다른 경험을 했다는 차이로 생기는 소통장벽은 불가피한 것인가? 나이 든다는 것,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이 듦은 분명히 이해와 소통의 장벽을 만든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상대방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예전에 중고등학생들에게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겪어야 했던 세계대전을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 그들의 선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무척 힘들었다. 21세기에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들에게 당시 유럽인들이 마주했던 삶의 엄청난 무게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려웠다.

 

 

꼰대에서 탈출하는 이유

일단, 세대 차이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을 인정해야겠다. 그런데 꼰대는 이런 소통의 어려움을 넘어서는 단계에 있다. 즉, 젊은 세대가 꼰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소통의 어려움을 넘어 아예 소통불가의 단계에 있는 시니어를 뜻한다. 즉, 꼰대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거나 그의 입장을 경청하거나 배려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는 막힌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꼰대는 정신적 노화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나이 듦의 귀결이 결코 아니다. 오래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정신과 몸에 새겨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꼰대는 일종의 삶의 태도이고 방식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니어들이 다른 세대와 소통단절을 겪는 이유는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가치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의 방식,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방식을 만들어오면서 고정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이 자신에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삶의 태도와 방식은 고정불변인 것일까? 물론 아니다. 태도와 방식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며 활기차게 사는 시니어가 있다. 굳이 자신을 나이로 규정하지 않고, 나이로 권위를 생각하지 않으며, 나이로 지식의 우열을 따지지 않고 활력 있게 소통하는 시니어도 있다. 조선시대 이황 선생조차도 26년이나 어린 기대승과 격의 없이 토론을 나누지 않았는가? 결국 꼰대화는 자신에게 새겨진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자각 없이 살고 있는 삶의 태도를 아프게 지적하는 것이다.

 

 

꼰대가 되고 싶은 어른은 없다. 꼰대는 분명한 구별이고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관계의 단절은 충만한 삶에 큰 구멍을 만든다. 충만한 삶이란 독립적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대로 살면서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꼰대만 있는 청년세대는 나이든 세대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삶을 통해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영향을 받는다. 시니어에게도, 청년세대에게도 이것이 꼰대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어떻게?

꼰대화는 단절이고 차별이다. 따라서 역전은 단절을 공감과 소통으로, 차별을 다름으로 포용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즉 새로운 관계 맺음이다. 관계 맺음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공감과 이해를 교환할 때 이루어진다. 다른 경험과 가치는 차별과 단절의 근거가 아니라 소통과 관계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삶을 재조정한다는 자각과 함께 삶의 영역을 재구축하고 삶의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 행복한 삶에 대한 성찰은 그 출발점이다.

 

 

행복한 삶에 대해서

모든 사람은 행복을 원하고 추구한다. 그런데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해서 단 하나의 답변은 있을 수 없다. 삶의 주인은 온전히 각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 가치라는 점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의 가치다. 부유함, 명예, 권력 같은 중요한 가치가 있지만 이들 모두는 궁극성이 없으며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행복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다.

이제 실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행복에 담겨야 혹은 담아야 하는 내용이다. 무엇이 행복을 구성하는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인간에게는 존재로서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

 

나는 경험의 질과 관계의 깊이에 행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체험하는가? 그 체험이 주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그것은 부족하지 않고 충분한가? 경험을 통해 사람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경험이 있는 순간에 자신을 느낀다. 경험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또한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관계는 사람의 존재 조건이고 양식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주인공 톰 행크스가 제일 힘들어한 것은 배고픔도 아니고 추위도 아닌 고독이었다. 우리는 누구와 만나며 누구와 관계하는가? 슬픔보다는 기쁨을 많이 느끼는 사람, 고독한 사람보다는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복은 나이 듦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먼저 나이는 행복과 무관한 듯 보인다. 사람은 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복과 소년의 행복, 중년의 행복과 노인의 행복은 똑같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이는 행복과 관련이 있다. 앞서 말한 이유와 모순인 것 같지만 이 또한 진실이다. 나이에 따라 행복의 내용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삶의 조건은 달라진다. 이 조건이 삶의 경험과 관계를 다르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의 방향과 목표, 영역, 가치와 정서는 달라진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그렇고 넓게 보면 세대에도 적용된다.

 

청년 세대의 행복: 이 세대는 자아를 발견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와 숙련을 시작하는 세대이다. 삶의 영역에서는 가정에서 사회로 확장하는 세대이다. 공부하고 자격을 얻고, 경력을 선택하고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찾고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성장과 우정은 중요한 행복의 내용이 된다.

시니어 세대의 행복: 시니어에게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 시니어는 자아를 찾았고 준비와 숙련의 시기를 거쳤다. 직장인으로든 전문가로든 경력을 만들어 왔고, 가족과 동료라는 삶의 영역을 만들어 왔다. 그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고 나름의 기여를 통해 의미를 얻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다.

 

행복한 삶은 경험의 질과 관계의 깊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 결국, 시니어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면서 경험의 질을 높이고 관계의 깊이를 더해 주는 삶의 영역을 재구성하는 것에 행복한 삶에 대한 답이 있지 않을까? 시니어가 마주한 삶의 조건과 상황을 살펴보고 방향을 찾기를 조언하고 싶다.

 

 

시니어의 행복

인간은 처음으로 생명을 얻고 그 뒤에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고 삶을 만들어 나간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이 보편적인 조건에 더해서 시니어에게는 나이 듦에 따른 조건이 더해진다. 단적으로 말하면 반쯤 색이 칠해진 도화지라는 것이다.

시니어는 청년세대와 삶의 조건이 다르다. 그것은 경험을 했다는 것,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 사물과 세계를 보는 관점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다. 행복한 삶은 이러한 삶의 조건과 부합하는 삶이다. 이 조건에서 경험과 관계를 질과 깊이를 더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어떤 시니어들은 은퇴했다는 생각, 편안한 노후생활을 한다는 생각,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보상, 그간 미뤄 둔 삶의 경험을 찾으려는 소망이 있다. 그러나 시니어로서의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거친 생각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에 생각이 머물러 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휴식과 안정에 대한 욕망이 앞서 있다.

이러한 삶이 하나의 대안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이러한 삶은 삶의 조건과 부합하지 않고 궁극적 가치로서의 행복을 실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삶을 다 마쳤을 때 행복했다고 말하려면 언제나 행복함에 대한 민감성을 의식하고, 할 수 있는 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추구는 존재로서 자신에게 최고의 선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행복은 언제나 삶의 조건과 부합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제2의 인생을 찾는 출발점이다. 제1의 인생은 자격과 능력을 얻는 삶이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목표를 설정하며, 커리어를 시작하는 인생이다. 제2의 인생은 발견과 성찰을 거친 또 하나의 생이다. 시니어로서 보다 넓은 지평에서 인생을 생각하고 진정한 가치대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삶으로서 제2의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삶의 변화와 대안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동의할 만한 원칙이 있다. 그 어떤 삶이더라도 충만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득 찬 삶. 충만한 삶이란 자신의 가치대로, 바람대로 최선의 경험을 하는 삶이다. 길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충만함이라는 목적지는 같다.

 

시니어에게 행복한 삶의 방향은 축적한 지혜와 경험을 활용해서 보다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즉,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방향은 다양한 사람과 관계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 시니어는 자신 밖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경험과 자격과 역량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니어의 행복은 의미와 가치, 공헌이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

 

 

꼰대에서 멘토로

나는 충만함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시니어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바로 꼰대에서 멘토로!

 

 

멘토는 어떤 사람일까? 멘토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사람을 말한다. 방식은 다양하다. 인생에 대한 조언, 혹은 다른 사람의 자질을 발견하고 키워 주는 것,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적,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 등. 멘토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목표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발휘해서 그 사람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사람이 어울려 사는 이상 사람은 관계를 맺는다. 멘토와 멘티라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그 사람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신뢰, 멘토에 대한 멘티의 신뢰- 이 관계에서 인간이 가진 지적 자산과 경험을 교류한다는 뜻이다. 이런 교류는 희귀한 것이 아니다. 멘토링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교류 방식이자, 가장 자연스럽고 충실하게 서로를 돕는 방식이었다.

시니어는 꼰대가 될 수도 있지만 멘토가 될 수도 있다. 시니어는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먼저 세상을 산 사람으로서 인생을 보는 관점과 이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세대가 갖고 있지 않고 필요로 하는 자원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꼰대는 젊은 세대를 비판하고 평가한다. 멘토는 젊은이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사용한다. 삶의 충만함이 경험의 질과 관계의 깊이에 달린 것이라면 멘토로서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대학생과 직장인을 멘티로 멘토링을 하면서 삶의 영역은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다른 세대와 관계하는 삶에서 깊은 만족과 함께 충만함을 느꼈다.

 

 

멘토로 사는 삶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의식과 행동 양쪽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1. 의식 : 자신에게 있는 지혜와 통찰의 우물을 발견한다.

인간은 기억, 상상력,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를 활용해서 지식을 만들고 지혜를 축적해 왔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원숙해지면서 이 3가지 원천을 계발하고 활용하게 되는데 세대에 따라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원천과 비중이 달라진다.

기억은 경험과 지식의 결합을 통해 발전된다. 지식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부한 기억이 만들어진다. 불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면 자신도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상력의 원천은 경험과 지식을 포함해서 다양하다. 그렇지만 소년기와 청년기에 중년 이후보다 풍부하게 상상력이 계발되는 것은 맞다. 이성은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이 적절하고 현명한가에 대한 판단력의 원천이다. 이것은 지식보다는 경험에 대한 해석을 통해 길러진다. 중년 이후 세대는 기억과 이성이 청년들보다 앞선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해 왔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기억과 이성이다. 상상력에 관해서는 한계가 있다(물론,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시니어가 소수지만 있긴 하다). 다양한 인간을 만나고 인간을 이해한 지식과 경험, 세상사의 변천에 대한 경험은 시니어에게 풍부한 기억으로 담겨 있다. 이 기억을 멘토는 현명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기억을 고집하고 기억한 것만을 실제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태도가 꼰대로 되는 지름길이다. 기억을 가진 사람에게 그 기억은 소중하다. 그렇지만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한 세대가 그 기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공감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그 기억을 통해 현재의 세대에게 의미와 맥락을 전달하는 사람이 멘토이다. 그러한 기억은 지혜가 되고 통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등장과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는 전체주의의 극악함을 알 수 있었고, 민주주의가 선물이 아니라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한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이성은 현명한 결정을 돕는 원천이다. 이성은 신념으로 혹은 가치로 드러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지침과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결정의 근거를 제공한다. 젊은 세대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는 것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그 자체로는 옳고 틀린 것이 아니다. 이성에 비해 감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그 어떤 사회에서나 변화를 이끄는 세대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감정은 충동적이기도 하고 때로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대체로 옳게 여기지지 않은가? 혹은 사랑하는 무엇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행동은 멋질 수도 있지만 무모한 것일 수도 있다. 중년 이후 세대는 중용을 이해하고 행위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사람을 관계하고 일해 본 경험은 극단을 피하는 판단력과 인내라는 덕목을 체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세대에 따라 배워야 할 지식을 구분했는데 그는 젊은 세대에게는 논리학과 체육을 권장했지만 정치와 사회를 이끄는 철학과 지식은 중년이 넘어서야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험은 값어치가 있다.

 

2. 행동 : 삶의 영역을 넓히고 그것으로부터 배운다.

멘토로서 청년들을 돕기 위해서는 우선 만나야 한다. 만남은 두 가지 혜택을 준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그가 처한 문제와 고민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멘토가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원이 청년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얼마나 청년들과 다른 가를 이해하는 경험도 갖게 된다. 두 번째 혜택은 멘토의 배움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스승이다. 멘토도 청년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 그들의 열정,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사람들에 대한 개방성, 열린 세계에 대한 호기심. 아마도 멘토가 청년시절에 경험했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세계에 대응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다. 멘티가 멘토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멘토 또한 멘티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 있다.

 

 

3. 젊은이들을 신뢰하라.

멘토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다. 이 도움은 멘토가 멘티와 신뢰라는 관계를 맺을 때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멘토는 교사와 다르다.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있을 때 멘토의 언행은 멘티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멘토는 우선 그가 도움을 주고 싶은 청년세대를 신뢰해야 한다. 청년의 언행이 옳다거나 청년이 하는 모든 행동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그가 잠재력이 있으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이 있다고 신뢰한다는 뜻이다.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모든 재료에는 조각으로 드러날 형상이 있으며,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단지 그 형상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예술관을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이 인간에게도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탁월함을 성취하는 잠재력이 그 안에 있다.

시니어가 멘토로 살아가는 것은 시니어와 청년세대 모두에게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도록 돕는 소중한 삶의 경험을 제공한다. 꼰대에서 멘토로 전환하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삶은 충만한 삶의 핵심 요소이다.

삶의 초점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맞출 때 자신에게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은 인간사의 감춰진 비밀이다. 멘토로의 전환은 시니어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인생에서 배운 경험과 지혜를 나누라. 청년은 하루의 빵이 아니라 긴 인생을 살아갈 지혜를 원한다. 당신의 지식과 경험을 변주하고,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오늘 당장 멘토링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