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생활을 급격하게 바꿔 놓고 있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 등 비대면 활동이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빨리 다가오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코로나19는 우리들에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직접 대면을 하지 말라고 강요를 하고 있다.
일상화 되는 비대면 문화
시장에서 값을 흥정하며 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홈쇼핑과 온라인쇼핑을 통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생필품을 사고 배달받는다. 음식점에서는 키오스크(무인 정보단말기) 앞에서 주문을 하고 계산한 뒤 음식을 받는다. 교사와 학생이 교실이 아닌 온라인에서 만나 수업을 한다. 일터에서 서류를 주고받고 서로 말을 하며 일하던 사람들이 집에서 화상으로 의견을 나누며 일을 한다. 차에 탄 채로 진료를 받고, 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린다.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도 관중이 없이 치르며 온라인으로 중계하고 관람한다. 한마디로 비대면 문화, 언택트(un-tact, 비대면 서비스) 인간관계가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에 없었던 바이러스가 팬데믹(세계적 전염병 유행)이 되어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그곳에서 게임을 하며 노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러나 50+세대들은 일터에서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일을 하고 친구 등 지인들과 얼굴을 맞대며 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젊은 세대보다는 적응하기 더 어려울 것 같다.
바이러스 방역을 위해서 모임이나 회식을 하지 말라고 한다. 여행하는 것도 자제하고 만나면 마주보지 말고 서로 멀리 떨어져 앉으라고 한다. 인간관계가 점점 멀어져 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를 걱정하듯 방송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 라는 멘트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언택트, 관계형성의 또 다른 방식
사람들은 어제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이 부자연스럽고 당황스럽게 느껴지겠지만, 미래는 언택트 사회로 가는 것이 시대의 큰 흐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이런 변화의 속도를 강제적으로 더 빠르게 하고 있다. 적응이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빠르게 적응을 해야 한다. 특히 스마트폰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현대를 ‘포노사피엔스시대’라 말하기도 한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의 합성어이다. 스마트폰을 내 몸의 일부처럼 생각하는 시대를 뜻한다. 우스갯말로 옷은 벗고 나가도 스마트폰은 들고 나간다고 할 정도이다.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것 없이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사용법을 부지런히 익히고 그 이용 범위를 넓혀가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발생 초기에 대구에서 확진환자가 폭증했을 때의 일이다. 병상이 부족하여 다른 지역으로 중환자를 옮겨야 하는데 ‘코로나 환자는 가족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데다가 가족과의 거리도 멀어지기 때문에 환자가 이동을 거부했다고 한다. 일본의 한 요양원장인 다나까 아야씨가 요양원에 입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입소 당시에는 입소자들의 84%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코로나에 감염된다면 연명치료를 해달라는 사람이 43%로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리면 임종 할 때에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니 그것이 괴롭고 슬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족이나 지인들의 눈과 귀, 손에서 멀어지는 상황이 낯설고 두려운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듣는 눈과 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직접 와서 내 눈 앞에 보이고 내 귀에다 대고 말을 해야만 서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님을 새롭게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등 온라인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마음을 나누면서 가까워질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마음과 영혼으로 보고 듣는 눈과 귀다.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앞에 없어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며 그 목소리가 귀에 잔잔하듯, 마음과 영혼의 눈과 귀로도 누군가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새로운 일상은 우리들에게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세상과 사람들을 바르게 보라고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일상이 언젠가는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보금자리를 흔들어서 새끼로 하여금 날개를 퍼덕이게 한다. 새끼에게 날개를 사용해보라는 신호인 것이다. 우리도 흔들리는 일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향해 더 높이 올라가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시대를 읽고 적응하려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밖으로 나가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가 ‘아차’ 하며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마스크를 놓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