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 번째 직업 기술자격증으로 도전해볼까

 

 

사회적 수명과 생물학적 수명의 간극은 시니어들을 가장 고민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직업은 단지 경제적 자원을 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인생의 보람, 즐거움 심지어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격증을 선택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결국 취업이든 창업이든 기술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위한 자격증, 무엇이 좋고 어떻게 딸 수 있을까?

 

 

시니어들의 자격증에 대한 관심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은퇴 후 삶을 대비하기 위해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50~60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간한 <2016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15년 50대 자격증 취득자는 2011년 2만6307명에서 2015년 3만8260명으로 45.4% 늘었다. 65세 이상 고령자도 2011년 571명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에는 101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은 78.1% 증가했다.

 

자격증 수요와 효용가치 잘 따져봐야

자격증은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특정 기술에 대한 기능자격을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이 있고, 기술 외 전문 분야에 대한 자격인 국가전문자격 그리고 민간자격증이다. 국가기술자격과 국가전문자격은 크게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행하는 자격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같은 관련 정부산하기관에서 시행하는 자격으로 나뉜다. 이런 자격증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포털사이트Q-net(www.q-net.or.kr)에서 자세히 검색할 수 있다.

자격증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모든 자격증이 취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민간자격증의 경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과 응시비용 자체를 ‘수익 모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잘 따져봐야 한다. 물론 민간자격증도 업계에서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자격증 획득 전에 발급기관 연혁이나 회원수, 자격 보유자수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 취업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해당 자격증 보유자를 구인하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전액 공짜! 기술교육원을 아시나요

보통 자격증 취득을 생각하면 가까운 지역학원에 가서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통해 응시 준비를 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면 온라인 학원을 통해 교재를 산 뒤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 강의에 참여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운전면허증에서 공인중개사까지 마찬가지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만약 모든 교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있다면 어떨까. 자격증 취득과 취업 알선까지 지원해주는 공립기관 중 대표적인 기관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술교육원이다. 서울시 기술교육원은 동부, 중부, 북부, 남부 4개 기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4개 기관에서 1년짜리 정규 과정 53개 학과 1842명, 단기과정 25개 학과 915명을 교육시키고 있다. 교육 과정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을 우선시한다. 또 예산으로 진행되는 만큼 수료 후 취업자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일단 합격만 되면 수료 때까지 교재와 실습 재료비를 포함해 전액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취업 알선과 취업 후의 생활 상담까지 가능하다. 일부 과목의 경우는 협력기관,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 지원금까지 제공받을 수 있고, 수업시간이 긴 과목은 점심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공되는 혜택이 많다 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과목에 따라 경쟁률이 2대 1에서 4대 1을 넘기도 한다. 전형은 면접이 50%, 서울 거주기간(5년 이상 만점)에 따른 배점이 50%다. 면접에서는 기술을 익히려는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을 중점적으로 심사한다.

 

 
시니어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는 중부기술교육원 한국의상학과 김경미 교수.

 

전통기술에서 첨단기술 분야까지 다양

교육 현장의 실무자들은 시니어들의 자격증 취득에 대한 관심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높다고 말한다. 남부기술교육원의 남혜성 팀장은 현장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시니어 교육생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대까지 늘었고, 시니어들의 관심이 큰 학과의 경우는 40~50% 정도까지 비율이 늘었습니다. 창업 등을 고려해 바리스타나 외식조리학과를 지원하는 중•장년층도 많아졌고, 옻칠나전, 조경관리와 같은 분야도 시니어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분야입니다.”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과도 인기가 높다. 예를 들어 전기학과의 경우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건물 관리인 등으로 취업하기 쉬워 남성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다. 여성 중•장년층은 피부미용 관련 자격증을 통해 피부과, 성형외과, 피부관리실 등에 취업한다.

최근 구인 수요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자격증 중 하나는 요양보호사다.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을 위한 노인요양보호시설이 늘어나면서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 그러나 궂은일을 꺼리는 추세와 저임금의 처우까지 겹쳐 여전히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같은 첨단 분야의 교육도 진행된다. 관계자들은 매년 새로 생겨나는 자격증이나 취업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중부기술 교육원의 박훈균 팀장은 “신재생에너지 PM(프로젝트 매니저)학과가 대표적이죠. 전력 직거래를 통해 태양열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의 교육입니다. 협동조합에 취업하는 경우도 많지만, 토지나 자본이 있으신 분들이 직접 사업화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시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귀띔한다.

 

무엇을 할지 몰라도 방법은 있어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 중 상당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상담을 신청하는 시니어 중 대다수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자아실현, 취업을 통한 생계유지나 창업, 자기계발 등 어떤 목적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문가와 함께 찾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목표가 설정되면 그다음부터는 교육 과정 속에서 함께 고민을 하므로 쉬워진다.
중부기술교육원 한국의상학과의 김경미교수는 기술 전달뿐만 아니라 취업이나 창업 이후까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개량 한복이 인기를 끌면서 한복분야도 다양해졌어요. 중•장년 학생들은 창업에 관심이 많고요. 학생들과 옷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주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층이나 외국인들에게 한복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부기술교육원에서 옻칠나전공예를 가르치는 임충휴 명장은 교육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전칠기를 활용해 창업을 준비하시는 시니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중•장년층이 섞여 수업을 하다 보니, 오랜 경험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너지 효과를 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품으로 응용이 시도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전통적인 디자인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학생들의 아이디어에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각 지역 기술교육원은 이달 중순까지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MINI INTERVIEW

 

옻칠나전공예 수강생 이수매씨
“규방공예와 접목한 공방, 3월에 창업해요”

 

남부기술교육원 옻칠나전학과에서 만난 이수매(李秀梅•63)씨는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옻칠나전 수업에 푹 빠져 있는 수강생이다. 그녀가 옻칠에 관심을 갖게된 건 박물관에서 옛 문화재들을 보며 매력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요리강사를 꽤 오래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쉬었거든요. 그러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에 전시장 속 칠기에 눈길이 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배울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남부기술교육원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먼길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와요.”

물론 그녀가 은퇴 후 계획을 착착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계획과목적 없이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다.

“막상 은퇴하고 나서 보니 할 것도 없고 준비도 안 해놨다는 것을 느꼈어요. 100세 시대라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그때까지 놀면서 시간만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할 것을 찾자하고 규방공예를 열심히 배웠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 옻칠나전과 접목할 수 있겠더라고요. 현재는 창업을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내년 3월에 작은 공방을 낼 계획이에요.”

이씨는 은퇴 후 계획을 세우려면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면 될 것도 안 되고, 자기 재능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업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품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돌아갈 때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는데, 기념품 가게에서 한 중국인이 그러더라고요. 살 것이 없다고.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성의 없어 보이는 공장제 제품이 대부분이라서 소유욕이 안 느껴졌어요. 저는 외국인들이 사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 한국의 전통공예를 외국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또 이를 위해 개인작품으로 외국에서 전시회도 해볼 계획이에요.”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덕에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옻칠이 주는 매력도 컸다.

“옻칠은 새 물건에만 하는 작업은 아니에요. 닳아서 쓸모없는 것도 손질해서 칠하면 훌륭한 물건이 되죠. 제 작품을 보고 남편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더니, 이제는 어디선가 이런저런 소품을 들고 오기도 해요. 칠해달라고(웃음).”

그녀는 마지막으로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우리가 이만큼 살면서 다양한 희로애락을 경험했잖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은 물론 힘들고 어렵지만, 그간 우리가 겪었던 희로애락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 무언가 배울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