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 파스텔 힐링화반
내 나이가 바로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나이!
이번에 만난 시니어들은 평균 나이가 85세다. 일흔도 아직은 어려서 끼어줄 자리가 없다(?)는 진짜 액티브 시니어. 이들은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의 파스텔 힐링화반 수강생들이다. 마침 이들이 지금까지 숨겨놓았던 그림 실력을 뽐내고 싶다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렸다. 뜨거운 여름 햇볕이 내리 쬐던 7월의 어느 날, 성남아트센터의 한 전시실에서 이들을 만나봤다.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 파스텔 힐링화반 회원. (왼쪽부터) 석선희, 이옥지, 이혜훈, 김인혜, 최윤진 강사, 박선희, 이영희, 김영자, 김현경, 배옥재, 박복순, 박춘옥, 김종기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파스텔 힐링화반 강사인 최윤진씨는 기쁨 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균 나이 85세, 12명의 시니어 화가들이 감격적인 첫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 이들의 멋진 출발을 위해 가족들을 비롯해 지역 방송사에서도 나와 축하와 응원을 보냈다.
12명의 신인(?) 화가들은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에 살고 있는 시니어들이다. 입주민 생활문화프로그램 중 하나로 작년 7월 처음 개설된 ‘파스텔 힐링화반’에서 1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뽐낸 것. 이 들의 땀방울을 귀하게 생각한 최윤진 강사가 전시회를 열자고 먼저 제안했다.
“저희 시니어들이 도전한 분야는 파스텔 힐링화라고 부릅니다. 이게 보기에는 잘 모르시겠지만 손가락으로 작업을 하는 그림이 거든요. 기초과정 3개월만 배우면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 작품 정도는 내보일 수 있는 간단하고 집중하기 좋은 그림입니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파스텔 힐링화는 시니어는 물론이고 미술은 하고 싶은데 손재주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분야. 그림을 그리는 일정한 공식은 3개월 기초과정 동안 배울 수가 있다고. 파스텔 작업을 한 뒤 픽사티브(파스텔, 목탄, 연필 따위로 그린 그림이 손상되지 않도록 그림 표면에 뿌리는 투명한 액체) 로 그림을 고정해 완성하는데 밑작업 없이 그리는 그림이다. 보기에는 실력이 있어 보이지만 미술을 몰라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게 파스텔 힐링화의 장점. 무엇보다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미술이라고. 손가락 운동이 치매 예방이나 뇌 건강에 좋 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최 강사는 시니어들에게 이런 교육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강의 개설에 힘을 쏟았다.
“처음에는 25명이 시작했는데 기초과정 마치고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그 만두셔서 14명이 됐고 지금은 12명의 수강 생이 남았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1시간 20분 동안 그대로 앉아 계시더라고요. 수 강생 중 고관절 수술을 하신 분이 사실은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데 그림 그리게 되 면 몸이 괜찮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어떤 말보다 듣기 좋은 말입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시니어는 감동 그 자체라고 전하는 최윤진 강사.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좋아진 것에 고마움을 느낀 다. 어린 학생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없는 열정을 가진 시니어들. 이들의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진지한 것을 보면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다.
“이분들과는 그림을 계속 그릴 생각입니 다. 문의가 많아져서 인원이 넘치면 모르 겠지만 아직 그럴 기미는 없어요(웃음). 저 또한 내면으로 많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MINI INTERVIEW
고국이 그리워 왔는데 그림도 그리고 있습니다 (김종기•85세)
중•고등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습니다. 추억을 더듬어 동심으로 돌아가 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농촌풍경을 그렸고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렸습니다. 브라질과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다가 4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작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딸이 있는 고국으로 들어왔죠. 저는 황해도 출신입니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 출신으 로 14년 동안 군대생활을 했어요. 1964년에 제대해서 곧바로 미국으로 이 민 갔습니다. 이민 1세대로서 힘든 일을 많이 했어요. 브라질에서 20년, 미 국에서 26년 살았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옷 만드는 일을, 미국에서는 세탁 소를 했어요. 분당, 강남이 없을 때 이민을 갔어요. 지금은 아주 천지개벽 을 한 거죠. 모국이 발전돼서 마음이 기뻐요.
해외생활을 오래했고 친구들도 이제 많이 없어요. 그래서 시니어타운 에 들어왔어요. 내가 용산고 1회 졸업생인데 와보니까 동창생 180명 중에 10%만 남고 모두들 세상을 떴어요. 동창회 참석자가 9명이에요. 여생을 친구들과 같이 보내려고요.
최고령 시니어의 힐링화 도전기 (김현경•91세)
그림은 여기서 처음 배웠어요. 맨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무료하잖아 요. 그림 그리는 수업이 생겼다기에 들어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시니 어타운에 들어온 지 2년쯤 돼가요. 다른 수업도 좀 들었는데 다리가 안 좋 아서 하다 말고 그랬어요. 침도 맞고, 주사도 맞고. 그런데 그림은 너무 재밌 어요. 그릴 때는 아픈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그림 중에 배경색 이 어두워 보이는 게 제 작품입니다.
원래는 취미로 한지공예를 배웠어요. 1980대에 시작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 때도 전시회를 열었답니다. 나이 들어 일도 없으니까 자연적으로 그런 게 눈에 들어왔어요. 자식이 셋인데 똑같은 작품을 세 개씩 만들어서 다 나누 어주기도 했어요. 한지공예품이 생겨나니까 딸들이 그걸 모아 전시회를 열 어주더라고요. 제가 창의력이 좀 없어서 구상해서 그리는 건 못해요. 그런 데 선생님이 그림도 정해주시고 가르쳐주시면 거기에 맞춰서 그려요.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림이거든요. 삶의 활력소예요. 재밌어요. 안 아플 때까지 그림 그릴 겁니다.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