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과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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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과 시월은 서로 많이 닮았다. 경복궁 자경전과 교태전 사이 뜰에 가을볕이 가득했다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고궁과 시월, 이 둘은 서로 많이 닮았다. 생각해 보면 찬란하게 저물어 가는 계절과 이미 시절을 잃고 빈집이 된 고궁이 서로를 닮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서로 닮음은 어울림이고 어울림은 자연스러움이며 자연스러움은 편안한 멋스러움이다. 가을이 올 적마다 그 짧은 시간에 쉬 비어버리는 마음을 채우려고 고궁 나들이에 나서곤 한다. 올가을이 익어갈 무렵 경복궁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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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익어가는 풍경과 함께 광화문 월대와 현판 복원 기념행사 등 다양한 공연과 체험행사, 전시와 의례 등이 넘쳐나 궁을 찾기 좋은 계절이다.

복원된 광화문 월대와 현판 그리고 자리를 옮긴 해태상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궁을 찾기 좋은 계절 가을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첫 법궁이자 으뜸가는 궁궐이다. 처음 궁궐을 짓고 정도전이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담아 경복慶福이란 이름을 지었지만, 경복궁의 운명은 그다지 복스럽지 못했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이 5년 만에 창덕궁을 지어 옮겨가는 등 조선 초기에 경복궁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세종 때에야 제대로 정궁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 큰 화재를 겪고 임진왜란 때는 전소되어 그 뒤 왕들은 대부분 창덕궁에서 지냈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지만,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뒤 다시 빈집이 되었고,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가 현대에 들어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을은 궁을 찾기 좋은 계절이다. 맑고 높은 하늘과 따사로운 가을볕 그리고 채도를 더해가는 수목들이 궁의 전각들과 더 잘 어울리는 데다가 다양한 행사가 연이어 열리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1015일 광화문 앞 광장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가진 것을 비롯해 10월 내내 각종 공연과 체험행사, 전시와 의례 등 행사들을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 그리고 덕수궁에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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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치솟은 근정전 추녀의 모습이 돋보인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가을에 더욱 멋스러운 경복궁

 

경복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수목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여름이면 볕을 피해 관람하기가 어렵고, 봄과 가을에는 전각과 자연이 어울리는 모습을 감상하기에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가을이면 북악北岳과의 어울림이나 향원정과 경회루가 물에 비추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더욱 깊어가고, 전각의 치솟은 추녀마다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돋보이며 멋스러움을 더한다.

가을 경복궁엔 사람이 많았다. 역사와 문화 공간을 찾은 내국인과 현대식 한복을 빌려 입고 삼천 원의 입장료를 대신한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났다. 게다가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통해 청와대와 연계해 관람하는 이들의 걸음도 빈번했다. 그러다 보니 예스러운 모습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많은 이들이 경복궁을 찾는 것은 좋지만 그들이 경복궁에서 보고 가는 것이 건물과 경관만이 아니면 좋겠다 싶었다. 다른 생각 없이 그것만 즐기기에는 참으로 아깝고 아까운 것이 경복궁이다. 사람이 살던 자리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남아있는 집과 후대의 사람과 그들이 품은 생각의 본류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이야기를 아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고 오늘의 삶을 살아내는 힘이다. 모두가 아는 격언대로 알고 보는 그림은 이전에 보던 것과 같지 않다. 진득하니 궁을 바라보고 싶은 이라면 궁마다 제공하는 무료 해설 관람에 참여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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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의 서정 깊은 모습 뒤로 건청궁이 보인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그 시월의 건청궁

 

경복궁의 시월은 아름답다. 특별히 향원정의 서정 깊은 정취는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눈을 돌려 바로 뒤편의 건청궁을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은 이내 처연해진다. 바로 그 자리에서 128년 전 시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일제는 건청궁에 난입해 곤녕합에서 황후를 끌어내 황제의 침전인 정화당 바로 뒤에서 시해했다. 그리고 곤녕합 옆 녹산에서 시신을 불태웠다. 그리고 건청궁을 헐어 자취를 없애고 그 위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지었다. 이 건물은 광복 후에도 현대미술관으로 쓰이다가 1998년 철거되고 2007년에야 건청궁이 복원되었다.

우리는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가슴으로 그것들을 기억한다. 우리가 옛일 곧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사는 날과 살아갈 날들을 위한 것이다. 아프고 부끄럽고 노엽더라도 우리는 옛일을 기억해야 한다. 복원된 건청궁을 바라보며 아픈 이야기를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고, 그날의 분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은 다시는 그런 치욕과 무기력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믿는다. 바로 이것이 건청궁을 복원한 뜻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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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 창마다 드리운 비단 가리개가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의 깊은 들숨과 날숨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건청궁의 속살을 보다

 

궁의 전각들을 가까이에서 살피면 멀리서 바라보던 것보다 더 깊고 선명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가끔 문을 열어 내부를 개방하는 날 궐 집 안에 들면 더욱 그러하다. 있지 못하던 자리에 서서 보지 못하던 것을 보면 집안에 갇혀있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내는 마음의 귀가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궁마다 연간 일정을 세워 집 내부를 개방하거나 창호를 열어 밖에서 내부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경복궁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지난 8월 중순부터 한 달여 간 <궁 안의 궁>이라는 제목으로 건청궁 특별 개방 전시를 했는데, 빗속에서 그 전시에 다녀왔다. 건청궁은 서쪽에 황제의 공간인 장안당이 있고 동쪽에 황후의 공간인 곤녕합이 있으며 두 곳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황제와 황후는 신하를 만나고 외국 사절을 맞았으며 잠을 잤다.

관람 동선을 따라 장안당으로 들어가 황제 집무공간과 향원정이 내다보이는 추수부용루 그리고 황제의 생활실인 정화당을 보고 복도각을 통해 황후의 공간인 곤녕합으로 건너가 궁녀생활실과 황후 알현실 그리고 황후생활실인 정시합을 돌아보았다. 정화당 동쪽 창으로는 황후가 머물던 곤녕합의 복도각이 마주 보였다. 그리고 곤녕합 복도각에서도 정화당이 마주 보였다. 이날 한껏 열어놓은 창마다 색색의 얇은 비단 가리개가 안팎으로 천천히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의 깊은 들숨과 날숨처럼 느껴졌다.

 

 

황제의 서재 집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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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옥재 내부는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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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옥재 안팎 창호들의 창살문양이 인상적이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경복궁에서 전각 내부를 관람하자면 고종의 서재였던 집옥재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경복궁 관리소는 지난 2016년부터 집옥재와 팔우정 내부를 연중 일정 기간 공개해 왔는데, 내부에는 조선 왕실 문화를 알 수 있는 왕실 자료 영인본과 역사 자료를 비치하고 있다. 그리고 건립 취지에 맞추어 책을 읽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꼭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시월 말까지 개방하는데 하루 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실 집옥재는 널따란 빈 마당 끝에 경복궁 북쪽 담장을 지고 덩그러니 놓인 데다가 중국풍으로 건물 양쪽에 벽돌벽을 갑갑하게 대어 놓아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던 곳이다. 그래서 번번이 그냥 지나쳐 왔는데 마침 내부를 개방하고 있어 들러보았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아늑하고 아름다웠다. 중앙의 대청을 둘러싼 삼면의 독서 공간은 대청보다 한 단 높고 어둑했는데 서가와 독서용 책상을 두고 그 위에 일자 등을 켜두었다. 곳곳에 자리한 창을 넘어 들어오는 은은한 빛과 노란 등불에 젖어가며 책을 읽거나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집과 썩 잘 어울렸다. 집옥재 안팎을 가르고 내부 공간을 나누는 문과 창에는 사각이나 원형, 반원형 틀에 마름모와 사각이 교차하는 문양이 멋스럽게 들어있었다. 집옥재에 붙여지어 복도로 연결된 팔우정은 1층만 개방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벽돌 크기로 나뉘어 박힌 유리창 너머로 건청궁과 향원정 일원의 가을이 넓게 펼쳐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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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우정 창 너머로 건청궁과 향원정 일원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보였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는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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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앞에서 고궁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수정전은 한글의 고향인 집현전이 있던 자리에 중건되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후원 권역을 벗어나 광화문을 향해 가다가 옛 집현전 터에 중건된 수정전 앞에서 고궁음악회를 만났다. 고궁음악회는 풍류에 그루브를 더하다라는 소제목을 달고 나흘 동안 다섯 차례 재즈와 국악, 전통 무용 콜라보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공연마당 가득히 어른과 아이 그리고 외국인과 내국인이 어울려 순서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음악만 그럴까 싶었다. 가을의 궁을 둘러보고 있으면 옛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도 우리 안에서 현재와 어우러진다. 그렇게 우리 마음터야말로 늘 옛것과 새것이 만나 다시 앞날의 삶을 열어나가는 마당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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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끝의 잡상들이 옛이야기를 궁싯거리는 듯하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돌아 나오는 길

 

광화문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자 가을 해가 낮아지며 길어진 그림자가 궁의 전각들을 덮어가고 있었다. 문득 기형도 시인의 시 <빈집>을 떠올렸다. 젊은 시인은 시 첫 줄에서 사랑을 잃고 쓴다고 했다. 그리고 시 끝에 이르러 눈먼 사람처럼 더듬으며 문을 잠근다고 그래서 가엾은 자기 사랑이 빈집에 갇혔다고 썼다. 이미 사랑을 잃고 나서 시를 쓰고 있으니 그가 빈집에 가둔 것은 그가 사랑했던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잃고 가여워진 자신의 사랑이었으리라. 요절한 시인의 한없는 상실과 슬픔 그리고 절망을 생각했다.

경복궁의 옛 주인은 나라와 시간과 생명을 잃고 빈집을 남겼다. 궁을 비우고 떠난 이가 무엇을 남겨두었는지 나는 짐작할 뿐 밝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남은 고궁 빈집과 뜨락에서 나는 전설 같은 가을 이야기를 듣는다. 가을엔 이야기도 익어간다. 영화롭기보다 아프고 슬프고 처연한 경복궁의 가을 이야기는 빈집을 나와 출렁이듯 사람 마음에 젖어 들어 익어가고 있었다. 노을을 등져서 한결 검어진 추녀 끝의 잡상들도 옛이야기를 궁싯거리는 듯한데, 그 아래 옛 모습을 찾은 임금의 길 어도御道에는 이제 경복궁의 주인 된 백성들의 즐거운 걸음이 분분히 이어지고 있었다.

 

 

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cbsan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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