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제대로 즐겼어요”...한국 산악 비경의 최고봉 공룡능선에 다녀오다.
일행 3명이 공룡능선을 향해 떠난 것은 지난 10월 둘째 주 주말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엉겁결에 공룡능선 등반에 동의한 것인데,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로망’이고, 설악산의 대표적인 명소니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내심(內心)도 작용했다. 금년에 역대급 더위가 한창이던 7월 말에 공룡능선을 다녀온 한 일행이 기꺼이 안내산행을 맡아줘 비교적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
10월 13일 금요일 08시 20분 우리 일행 3명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좀 이른 단풍철임에도 버스는 등산객 차림의 승객들로 만원이다. 지금까지 설악산 단풍 구경은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다. 교통체증, 수많은 인파에 휘둘릴 자신이 없어 그 상황을 피했던 것인데, 생각했던 것보단 도로는 뻥 뚫려 제 속력으로 달려간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가로변 코스모스, 백일홍, 국화꽃을 보면서 달리다 보니 어느덧 용대리 백담사 입구에 도착한다.
세월이 어느새 저만치, 강원도 인제 용대리 백담사 입구
2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30여 년 전 아이들이 어렸을 적 같이 와 보고 처음이다. 그런데도 마치 엊그제 다녀갔던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이 그만큼 빠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때보단 주변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11시가 채 안된 이른 점심이지만 입구 ‘백담황태구이’ 집에서 황태구이와 더덕구이를 시키고, 인제 막걸리를 곁들이니 한 상 근사하다. 오늘 밤 산사에 들어가 내일 전투산행을 마칠 때까지 마지막 만찬인 턱이다.
백담사행 마을버스
차비는 1인당 편도 2,500원이다. 오래전에 왔을 땐 비포장 길로 버스 폭과 도로 폭이 같을 정도로 비좁은 구간이었다, 계곡 쪽에 앉아 굽이굽이 돌때마다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깔끔하게 아스팔트가 깔렸다. 그리고 도로 끝에 보행자용 데크 길을 조성해 도로 폭이 넓어진 것 같고 안정적이다. 입구에서 7.1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백담사까지 마을버스가 있어 접근이 수월하다.
‘님의 침묵 길’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주차장에 내려 백담사 내부로 들어가는 길에 백담계곡의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의 아름다음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담계곡 층층 쌓인 돌탑들 또한 볼거리다. 안으로 들어서면 백담사의 웅장한 규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담사는 64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지만 고풍스런 맛은 느낄 수 없다. 수차에 걸친 화마(火魔)가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라는데, 그간 스쳐간 수많은 애환(哀歡)의 역사를 누가, 무엇이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백담사를 짧게 돌아 나와 발길을 계속 이어간다. 백담사를 출발하여 영시암까지 3.5km 구간은 편안한 둘레길 수준으로 푹신한 흙길과 울창한 숲길을 걷게 된다. 가는 길에 수렴동 계곡의 맑은 물과 함께 물들어가는 단풍도 구경할 수 있다.
▲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수렴동 계곡 ⓒ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영시암을 지나서부터는 산행하는 맛이 난다. 오세암까지의 거리는 2.5km지만, 오르막길이라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두 번의 깔딱 고개를 지나 다다른 고개에 오세암 가는 길 안내판이 반갑다.
산행을 즐기는 사진작가 김영재 시조시인이 백담사~영시암~오세암의 길을 `님의 침묵 길`이라 소개했다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이라는 시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는 구절에서 착상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한용운 스님은 오세암에서 출가하여, 백담사에서 득도하였다니 이 길을 수도 없이 걸어갔을 것이다. 그 님의 무수한 사색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코스는 왕복 12km로, 여기까지만 왔다가도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설악산을 즐기기에 좋은 코스인 것 같다.
체력 비축을 위해 쉬어가는 오세암 1박
오세암은 백담사에서 마등령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있다.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마등령 삼거리까지 1.4km로 공룡능선을 타는데 가장 수월한 코스다. 우리 일행은 공룡능선 산행을 위한 체력 비축을 위해 오세암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 4시경 출발하기로 했다. 오세암에서 1박을 위해서는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백담사를 출발하여 오세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
사찰 순례팀을 비롯한 공룡능선, 대청봉, 봉정암으로 향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미 도착하여 여정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방 배정을 받은 후 경내를 구석구석 돌아보며 여유를 즐겼다.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용아장성의 모습, 곱게 물든 단풍의 아름다움,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오세암 산사의 절경에 취한 채 내일의 장정을 위해 일찌감치 단잠을 청한다.
▲ 용아장성이 마주보이는 오세암의 절경 ⓒ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절경에 반해버린 공룡능선
설악산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무너미 고개까지 험준한 암봉이 연속된 약 5㎞의 능선을 일컫는다.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생겼다 해서 공룡능선으로 불린다.
우리는 예정했던 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아침 공양을 올리고, 예정대로 4시 조금 넘어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마등령을 향해 출발했다. 앞 사람만 따라 무념무상(無念無想)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발 한발 1시간 30여 분 오르다 보니, 힘든 길이 힘들지 않게 능선에 다다르는데, 어둠 속에서 지나는 헤드라이트 행렬이 인상적이다. 마등령 삼거리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나한봉(1,298m)을 지나고, 큰새봉, 1275봉을 거쳐서 신선봉, 무너미 고개에 이르는 공룡능선은 오르락 내리락에 아찔한 돌계단, 너덜길, 철 난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급경사 구간이 많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이내 봉우리에 올라서면 보이는 절경이 가히 국립공원 100경 중 제1경이라 할 만하다. 경관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이 맛을 느끼려 공룡능선을 찾는가 보다.
▲ 공룡능선 절경 ⓒ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천불동 계곡
무너미 고개에서 하산하여 양폭대피소, 비선대에 이르는 천불동 계곡의 빼어난 경관도 빼놓을 수 없다.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마치 천 개의 불상을 늘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천불동 계곡이라 하는데 무르익은 단풍과 어우러져 처음 보는 비경인 양 신비스럽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천불동 계곡의 빼어난 경관 ⓒ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
나중에 다시 온다면,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서 천불동 계곡(비선대, 양폭대피소)까지만 코스를 잡아도 훌륭한 코스가 될 것 같다. (왕복 13km, 예상 소요시간 8~9시간)
대장정의 마무리
오세암에서 새벽 4시 넘어 출발하여 설악동 소공원에 오후 4시 조금 넘어 도착하였으니 시간상으로는 1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공룡능선 구간은 절경을 감상하고 사진 찍고 하느라 6시간 정도 걸렸다. 시간당 1km 정도 내외로 여유 있는 속도조절이었다.
소공원 주차장에서 택시를 타고 속초고속버스터미널 부근 ‘속초해수피아’로 가서 온탕에 몸을 담그니 대장정의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것 같다,
저녁 식사는 ‘청초수물회’라는 속초의 맛집에서 청초호수의 야경을 감상하며 즐기니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로 남는다.
저녁 8시 40분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서울이다.
2023년 가을을 제대로 즐긴 1박2일 여행이었다. 함께 한 일행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