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에 대하여 

 

바쁘게 달려온 당신
우리나라에서 나이 쉰을 넘겼다는 것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 붐 세대로 태어나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먹고 살만한 나라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이들에게 숨 가쁘게 달려온 과거의 시간은 일종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하나 둘 일터를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상실감이 밀려들곤 한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바쁜 사람일수록 중요한 사람이었고, 바쁜 사람들이 더 많은 성공을 보장 받았다. 이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막상 일터를 떠나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도 함께 멈춰버린 느낌이 든다.

 

한창 일할 때는 자신의 노후가 어떠하리라는 상상을 거의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 학교만 졸업시키면 여유 있는 노후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떠나면 소득이 거의 없지만 생활비는 줄지 않는다. 그나마 자녀의 취업도 쉽지 않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과거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허드렛일밖에 찾을 수 없고, 그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집안에 눌러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

 

정부 부처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은퇴한 분에게 들은 유머가 있다. 어떤 장관이 임기를 마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더란다.

장관으로 재직할 때는 비서가 전화를 걸어주고, 음식점을 예약해주고, 종친회 일까지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아내가 시장까지 자동차를 운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간 아내는 남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할 남편이 뒷좌석에 앉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고위직에 있었더라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불러주는 이도 없고, 밖에 나가려 해도 지하철 표마저 혼자 끊기 어렵다. 이것이 50플러스 세대가 마주쳐야 하는 현실이다. 직장에서 인정받았던 사람일수록 이런 현실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일이 몸에 밴 사람들은 일이 없고 한가한 것이 더 고통스럽다. 이들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필요한 일들을 자꾸 만든다. 그래서 집안 식구에게 늘 지청구를 듣게 마련이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놀 줄도 모르기 때문에 늘 혼자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2014년 미국 버지니아대학과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진행한 심리 실험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있기보다 전기충격을 선택했다. 빈 방에 홀로 남겨진 남성의 3분의 2가 15분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에게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어떤 남성은 무려 190번이나 전기충격을 즐겼다. 여성들도 횟수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자극이 없는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은퇴 후 주어진 시간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나이 들수록 행복감이 높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행복지수는 더 높아진다. 2011년 미국에서 연령대별로 5년과 10년 주기로 추적 조사에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U자 곡선’으로 설명한다. 청년기에 절정을 이룬 행복감은 결혼을 계기로 점차 낮아지다가 자녀가 사춘기에 이른 40대 중반에 저점을 찍는다. 이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지는 이유는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2005년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의 추적 연구에 의하면, 나이든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나쁜 사건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에 비해 부정적 감정을 적게 경험한다. 설령 나쁜 경험을 하더라도 감정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어 재빨리 균형을 회복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60세에 이르면 젊은이들에 비해 긍정적인 표정과 감정을 더 빨리 지각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사람이 젊음을 원하지만 40대가 되면 젊음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여 60대가 되면 나이 드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든 후에도 절망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모른다.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은퇴 후의 삶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나이 드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실제로 2006년 미국에서 18~49세의 성인 남녀를 38년 동안 추적 연구한 결과 노화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심장마비 위험이 80% 더 낮았다고 한다.

 

행복한 삶이 꼭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일상의 작은 경험에서 얻는 행복이 특별한 경험에서 얻는 행복만큼 크다. 꽃을 가꾸거나 유치원 아이들을 잠깐 돌보는 경험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이다. 이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시각을 바꾸자. 그리고 남은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다시 채워 가겠다는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밖으로 나서자.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성취의지가 강하고, 동기부여가 더 잘되며, 곤경에 더 잘 대처한다. 자신에 대한 통제감과 자신감이 가장 높은 시기가 중년기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