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자산과 소비
허영숙 박사 ((사)허브앤이사/전 생산성본부 센터장)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무트 로사는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가족이나 노동과 같은 사회 구성요소 또한 나날이 빨리 변화하는 가속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1)한다. 기술과 사회, 그리고 삶의 리듬이 서로 얽혀서 가속화를 부채질할 때 50플러스 세대 또한 그 중심에 있으며, 고령사회의 길어진 노후는 빨라진 삶의 리듬에서 우리를 예외로 비껴가지 않는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으니 이제 됐다 하고 외친들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회다.
길어진 노후, 기대여명의 증가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지만 급변하는 사회는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소득이 끊긴 경험을 통해 다음 단계를 준비할 지혜가 생기는데, 벤치마킹할 선진사례도 제대로 없다. 예측이 어려운 미래사회는 퇴직하는 50플러스에게 조용히 지갑을 들여다보게 한다. 향후 30년을 살아갈 50플러스 세대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걸 가지고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림 1> 50+세대의 자산현황
길어진 노후로 인해 50플러스세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후빈곤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들의 자산은 평균 4억 8천만원 규모이며, 그 중 4억 6천만원이 살고 있는 집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소득이 끊기는 그 시점부터 자산의 감소가 시작되므로 노후불안으로부터 안전하기 어렵다. 50플러스 세대들은 47.2%만 소득이 있고,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하는 비중도 47.6%나 되어 노후 준비의 여력이 없다. 이들이 지속적 일거리를 찾지 못할 경우 10년 이내에 51.9%가 노후빈곤층으로 진입하게 된다.퇴직과 노후를 앞에 두고서야, 허덕이며 살아온 시간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고, 남들은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시간, 나의 논문은 ‘노후빈곤 진입시점별 특성에 따른 노후대비방안 연구’2)라는 제목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내용은 늘 내게 위안을 주지만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게도 한다. 당시의 조사대상자들은 지금 55~74세에 해당된다. 50플러스 세대3)인 이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중심이 되는 그룹이다.
길어진 노후로 인해 50플러스세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후빈곤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들의 자산은 평균 4억 8천만원 규모이며, 그 중 4억 6천만원이 살고 있는 집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4) 소득이 끊기는 그 시점부터 자산의 감소가 시작되므로 노후불안으로부터 안전하기 어렵다. 50플러스 세대들은 47.2%만 소득이 있고,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하는 비중도 47.6%나 되어 노후 준비의 여력이 없다. 이들이 지속적 일거리를 찾지 못할 경우 10년 이내에 51.9%가 노후빈곤층으로 진입하게 된다.
누가 부양하는 노후인가?
<그림 2> ‘노후빈곤’ 진입시점
우리 모두는 노후빈곤층 진입시점을 기준으로 세 그룹 중 하나에 속한다. 첫 번째 그룹은 10년 이내에 노후빈곤으로 진입하는 그룹, 10년 이상은 버틸 수 있지만 20년 이상은 어려운 그룹, 그리고 20년 이상 계속 노후자립의 준비가 된 그룹이다.
<그림 3> ‘저축 없음’으로 나타난 가구 분포
아직도 소득이 있다는 것은 노후자금을 좀 더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아놓은 데에서 꺼내 쓰기 시작한 상황은 아직 아니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 가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교육비가 많이 들고, 결혼시켜 내보내는 시기다.
45세~49세의 연령층에서 ‘저축 없음’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은 35%를 상회한다. 그 다음 5년간은 43%, 10년 후에도 53%가 저축을 할 수 없었다고 대답한다. 60~65세 기간에는 63% 이상이 저축 없이 살아간다. 가족을 구성하고, 자녀들이 독립하고 자신들의 노후를 들여다보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소득은 끊기고 저축은 어려운 시절이다.
우리의 노후는 누가 부양할 것인가. 지금 80대 노년층까지는 33.5%가 자녀들이 부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 50플러스 세대들은 자식에게 의존하기엔 그들의 삶이 너무 버거운 것을 이해한다. 8.3%만이 자녀들에게 의지하고자 하고, 이 비중도 나날이 감소한다. 연금 대세를 절감하지만, 50플러스 세대에게 소득이 꾸준히 있을 무렵에 연금을 준비한 비중은 15%미만이었다. 노후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그 어느 대책에도 끼어들지 못한 18%는 사실, 스스로 헤어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제로 일자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그룹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일거리가 필요하다.
<그림 4> 노후생활비 마련 대책
소비에 관심을 집중시키자.
소득이 끊긴 시점에 50플러스 세대의 75%는 3억 이하의 자산을 가지고 노후와 맞닥뜨린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평소 생활비로 나누면 얼마만큼 살아낼 수 있을까를 알게 된다. 10년 이내일까? 20년 이후에도 아직 건재할까? 빠르게 노후빈곤으로 진입하는 그룹과 노후자립을 준비한 그룹의 차이를 보면 소득차이는 월 평균 40만원 수준이다. 노후빈곤그룹과 노후자립그룹으로 나누는 기준으로서는 큰 금액이 아니다.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결국 소비규모다. 자산의 가치는 소비규모에 의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상대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구 자료들5)은 소득이 끊기자마자 잠시 동안은 15~20% 정도의 지출을 줄여서 살아가는데, 그러한 절약기간은 오래가지 않고, 곧 원래 생활비의 90% 수준까지 회귀한다고 한다. 줄어드는 내역조차도 결국 출퇴근에 소요되는 경비 수준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계속 최절약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림 5> 월 소비 항목 비중 (단위 : %)
노후빈곤과 노후자립의 두 그룹은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저축이 많았던 노후자립 그룹의 경우에는 노후빈곤 그룹보다 적은 식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식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나 정신적 허기를 풀어주는 식문화 소비다. 일상의 소득부족이 스트레스로 오면 간단하게 식비가 늘어난다. 생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허기를 풀어주는 역할, 그것이 식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것을 일상에서 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내 안의 불평을 잠재우고 긍정마인드를 키우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생각해 볼 순간이다.
노후자립그룹은 매월 사용하는 용돈이 노후빈곤그룹보다 많았다. 용돈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는 식비, 피복비, 문화비 등으로 처리한다. 대부분의 용돈은 남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 데 사용된다. 만나서 차를 마시고 소품을 사주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용돈이 많이 쓰인다는 의미는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관계에서 오는 정보를 관리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식비를 줄이고 용돈을 늘리는 방법으로 정비한 지출체제는 향후 보다 신뢰를 받고 보다 소득이 높아지는 요인이 된다.
용돈은 소통이다.
<그림 6> 관계에 의해 정립되는 나의 가치
고령사회다. 노동시장에서 30년 일하고 퇴직 후 40년을 더 살아간다. 월급을 받는 동안 절반은 떼어서 미래소비를 위해 남겨둬야 했다. 월급을 받는 30년 동안에 가족이 생기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 교육비를 지출한다. 그 30년의 소비가 중요한 마당에, 미래 40년을 설계하자고 선뜻 덤빌 수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환갑 무렵에 퇴직하고 한 십년쯤 더 살아가던 때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고령사회를 받아들이려면 자기 자신의 자산과 마주치는 순간을 늘려야 한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나의 노후를 그저 막연히 세상에 던져놓고 스스로 자라기를 바랄 수 없다.
50플러스 세대의 노후는 4차산업사회와 맞닿아 있다. 등 돌리고 모른 척 할 수 없는 이 사회 변화는 퇴직 전까지 핵심역량에 몰두하던 우리들에게 전문성만으로는 안된다고 협업을 들이민다. 협업의 골자가 소통이다. 소통을 잘하던, 인맥과 네트워킹을 중시하던, 노후자립그룹의 삶의 방식에서 짚어내야 할 것은 ‘관계를 유지하라’다.
고령사회로의 진입, 어떤 기준으로 상상하는가?
퇴직했기에, 현업에서 물러났기에 추구해오던 많은 것을 내려놓기엔 아직도 삶의 길이와 깊이가 너무 당당하게 내 앞에 놓여 있다. 50플러스 세대의 자산은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노후를 살아갈 만큼 모으기는 어렵다. 소득기간이 비소득기간보다 짧고 지출기간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소비관리는 자산축적보다 다루기 쉽다. 게다가 차세대들도 성장둔화사회를 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를 줄이고 있다. 그들은 미니멀리즘까지도 유행시키고 있다.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싸게 많이 사야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1인가구를 위해 소포장과 빠른 배달이 대세를 이룬다. 필요할 때 조금만 사기, 같이 먹고 각자 내기 등의 소비 다운사이징은 집과 차에도 적용되고, 신용카드의 상한선에도 적용해서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공유경제는 가끔만 필요하던 모든 기기를 그 때에만 빌려 쓸 수 있는 여건으로 만들어 놓았다.
노후는 결국 내 자신이 관리하게 되므로 소비를 포함한 내 생활을 관리하는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 예전에는 역량을 키우는 일을 혼자서 해냈다면 이제는 다양한 협조라인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찾아서 손을 내미는 전략을 채택한다. 50플러스 세대의 자산에는 이제 우리의 경험에서 나온 암묵지와 인맥, 충분히 축적된 경력을 포함하고, 우리 세대의 소비에는 간결함이라는 형용사를 포함할 시기다.
<그림 7> 50+의 개인별 준비
50플러스 세대인 우리들은 고령사회 1세대다. 우리가 살아가는 전략이 차세대의 매뉴얼이 된다. 가장 급격하게 구축된 고령사회를 선제적으로 살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고학력인구의 비중이 높은 세대라는 것 자체가 자산이다. 글로벌 시니어 인구 중 가장 4차산업사회에 적합한 인재집단, 시니어집단 중 가장 모바일 환경 적응력이 높은 우리나라의 50플러스 세대가 적극적 소비관리로 노후빈곤을 늦추고, 일거리를 향해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1) Harmut Rosa, 다비드 오티시에, 이준 필립, 장 미셀 무토의 공저 『딜리버리』에서 인용
2) 연구내용은 제2차 고령화패널 기본조사 8,688명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에 근거한다. 고령화연구패널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이 2006년 과 2007년 2차례 기본조사를 실시하였다. 당시 45세부터 64세까지의 중장년층 통계자료이므로, 지금 55세부터 74세에 해당된다.
3) 이 글에서는 논문의 통계대상인 현재 55-74세 연령계층을 50플러스세대라 부르고자 한다.
4) 연금생활자는 15~24% 수준이며, 연금액이 월 생활비를 충분히 보장하는가의 문제가 따로 존재한다.
5) Haider & Stephens(2004), Hurd & Rohwedder(2003, 2008), 안종범 & 전승훈(2003), 이선형 & 이연숙(200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