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불사하고 누비고 다녔던 11월 늦가을의 맨해튼 거리 풍경과 거리의 카페,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진 레스토랑들, 세계적 건축가들의 두뇌가 집결된 건축물들, 다양한 이민자들, 패션, 음악, 거리공연들, 여의도 면적보다도 더 큰 도심의 센트럴 파크, 이곳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뉴요커들에 대한 기억이 퇴색되어가는 것이 몹시 아쉽다.
무엇보다 맨해튼의 한복판에 전 세계를 옮겨다 놓은 듯 수십 만 점의 작품을 수장하고 있는 많은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만나기 위해 전시되려면 수년간 전시를 해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모마,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휘트니, 구겐하임 클로이스터, 스톰킹아트센터, Neue(노이에)갤러리, Pace갤러리등 아트 갤러리들, 역사박물관... 그리고 이곳의 자원봉사 해설사들, 그 많은 장소에서 접한 수 천, 수 만 점의 작품들로 나의 눈이 호강하였다. 이후로도 많은 기억과 추억을 곱씹는 재미가 쏠쏠하였는데 최근에 다시 친구의 부추김과 재촉에 새로운 테마로 맨해튼 나들이 시즌2를 슬그머니 꿈 키워본다.
흔히 미술은 소통이라고 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현대미술 작품 앞에 서서 소통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내게는 불소통인 이 어려운 난해한 시각예술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도대체 페인트를 흩뿌린 것과 같은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잭슨 폴락의 액션페이팅(action painting)과 dripping기법이 무엇인지, 추상미술의 대가 칸딘스키(러시아)의 추상적 그림들은 무슨 의미인지? (그는 작품에 음악, 미술, 문학을 담아냈다). 또한 미술 분야의 절대주의 창시자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실현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작품은 근대 가장 고가의 작품 기록을 남겼다. 1조원의 가치?)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즉흥성과 유연성을 날카로운 붓질과 역동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빌럼 데 쿠닝(네덜란드), 잡스가 사랑한 색면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라트비아출신)의 작품 등 열거하자면 너무 많고 방대하고 또한 무척 어렵다. 또한 미술과 음악, 건축 등 장르에 경계도 없다. 음악이 흐르는 퍼포먼스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오감을 느끼게 독특한 체험을 하게 하는 현대의 미술의 흐름과 작품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미술관을 다니며 많은 작품을 접하고 나니 적어도 요즈음의 시각예술은 이런 트랜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싹튼 것 같아 나로서는 커다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예술에 감상법을 먼저 익히는 것이 순서인 듯싶다. 통역사로 오래 활동하신 한참 선배의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났다. 강의 요지는 브리검 영 대학(Utah) Alan K. Melby교수(언어학자)가 정리한 시각예술 감상법은 다음과 같다.
• 풍부한 감수성으로 작품을 느낀다.(to feel)
• 꼼꼼하게 논리적으로 분석과 이해를 한다.(to reason)
• 판단하고 선택한다.(to judge and to choose)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견해를 작품에 담아낸다. 그리고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 때 사회적 문화적 배경은 물론 조형적 특징을 내기 위해 소재를 찾고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작품을 감상, 일단은 봐야(to see)하는 것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조형적 특징,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데 너무 치중하다보면 작품과의 첫 대면에서 감성적 떨림이나 감동을 놓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감상자의 주체적인 인식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강요된 이해가 될 위험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술 감상은 뭐니 뭐니 해도 ‘본다'라는 주체적 행위와 작품에 관심과 흥미를(애정이면 더 바람직하다) 가지고 작품을 구석구석 관찰하고 탐구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추상적인 예술작품이라도 작가는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적 경험을 작품에 담아 낸 것으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예술 작품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작가의 아주 주관적 해석으로 완성된 작품도 관람객이 작품과 무언의 소통을 이어가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공감할 수 있다면 미술은 소통이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결론적으로 작품, 작가의 창작물도 독창적인 미를 담아내야 하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통합적으로 여러 차례 작품을 감상하면서 예리하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시각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시각예술의 감상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맞다, Seeing is believing... 일단 봐야 그 실체를 알게 되고 더 알고 싶게 되는 것이 미술이다. 이제야 비로소 미술이 무엇인가? 사람은 언제 왜 미술관을 찾는가?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현대의 직업군 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직업이 왜 화가이거나 미술가일까? 에 대해 하나씩 풀어가야 할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작품성 및 예술적 가치로 세계에 주목을 받고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화가들은 왜 모두 작품을 남긴 후 자살하거나, 중독(알콜, 약물)에 빠지거나, 사고사하거나 하는 불행을 겪는 것인지? 하는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한 심오한 작품세계, 창작물을 완성한 후에 오는 허탈감과 허무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숙명적인 고뇌가 그들의 불행의 핵심이 아닐까 또 다른 의문을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