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첫째에게는 우왕좌왕하면서도 욕심 많은 엄마였고 둘째에게는 경험이 생겨 다소 여유 있는 엄마였습니다. 방긋방긋 잘 웃는 둘째에게 마음이 놓여 마치 여유 있는 엄마인 양 허세를 부렸다는 것이 정직하겠네요. 두 딸을 잘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순간 뜻밖의 선물처럼 셋째 아이가 생겼습니다. 세 번째는 더 큰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다시 허둥지둥한 엄마로 돌아갔습니다. 첫 아이를 키울 때의 욕심과 열정이 많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버렸을까요.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앞서 걷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산책길에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했던 딸의 말이 엄마의 마음에 담겼나 봅니다. 문득 엄마의 세월이 궁금해집니다.
스물한 살 꽃다운 나이에 오빠를 낳은 엄마는 3년 후 나를 낳았습니다. 그 후로 몇 년씩 터울을 두고 동생 넷이 태어났어요. 세 아이도 많다고 헉헉대며 키우는데 작은 체구로 여섯이나 되는 우리 남매를 키워 낸 엄마를 보면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엄마는 외롭지 않게 서로 의지하며 살라고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6.25 피난길에 가족을 잃어버린 엄마는 남편과 여섯 명의 자식이 가족의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단단한 콘크리트로 덮였지만, 불광천이 흐르는 뚝방길 근처에 엄마의 젊음과 나의 어린 시절이 묻혀있습니다. 우리 집은 사람들이 가끔 지나다니는 골목을 낀 대문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기와가 얹힌 지붕 끝 루핑으로 넓게 연결된 처마 아래 나무로 만든 마루가 있는 집이었어요. 안방에서 문을 열면 올라설 수 있도록 이어진 마루였는데 여름이면 바람이 지나다녀 방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루핑으로 떨어진 빗방울이 물받이를 타고 쪼르르 흐르며 가느다란 물줄기를 만들곤 했습니다. 엄마는 그 아래 커다란 통을 두어 빗물이 모아두었다가 청소를 하거나 화단에 물을 줄 때 사용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물이 넘쳐 골목에 작은 도랑을 만들었습니다. 마루에 누워 조르르, 조르르, 톡, 톡, 하는 빗방울이 만든 음악을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얕은 잠결에 엄마가 덮어준 이불 한 자락은 얼마나 따뜻하던지 지금도 느낌이 생생합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6남매를 키우느라 엄마는 품삯을 받고 뜨개질을 했습니다. 잔털이 보송한 한 올의 실은 엄마의 손에서 몸이 되거나 팔이 되었어요. 팔 두 짝과 몸이 될 두 짝을 만들어 귀가 넓은 바늘에 실을 꿰어 이을 때마다 고운 옷 한 벌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느다란 한 올의 실이 반들반들 끝이 닳은 대바늘에 올라 춤추다 옷이 되는 과정은 지켜보던 어린 눈에 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입을 수도, 자식에게 입힐 수도 없는 옷을 한 올 한 올 엮으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집 앞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엄마의 작은 화단이 있었습니다. 뚝방으로 오르는 계단이 막 시작되는 곳이었어요. 어른이 양팔을 벌려 사방으로 쭉 뻗으면 닿을 정도의 아주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이곳에 흙을 모아 놓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꽃씨를 뿌렸습니다. 올망졸망한 자식들 키워내느라 엄마의 손길이 못 미친 화단에서는 신기하게도 늘 한두 가지의 꽃이 피어 바람이 불 때마다 저 혼자 이리저리 춤을 추었습니다. 모양도 향도 다른 꽃들은 철 따라 피었다 지고 또다시 피었습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엄마는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마루에 비스듬히 기대어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거나 비에 젖은 꽃들을 한동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삼십 대 젊은 엄마의 깊은 외로움이 헤아려집니다. 돌이켜보니 어린 나이 홀로 남아 너무 젊은 나이에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듬고 살아내야 했던 엄마.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엄마가 살던 그 집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차가운 흙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여기저기 개발붐이 한참 일던 시절이었습니다. 뚝방을 덮어버린 차가운 아스팔트를 지날 때면 발아래 묻혀있을 우리 집을, 엄마의 화단을 그려보곤 합니다. 엄마의 젊음이 그곳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습니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한 움큼의 땅에 찬거리 대신 꽃씨를 뿌렸던 엄마. 뚝방을 떠나온 후 한 뼘의 화단도 가질 수 없던 엄마는 한동안 꽃이 심어진 작은 화분 하나도 집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의 말처럼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어느 명절 만난 엄마는 우길 수도 없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도 이제 정말 할머니가 다 되었네.”
농담처럼 말했던 그 날. 슬픔이 방울방울 올라왔습니다. 울컥 코끝이 시큰거렸습니다.
지난 시간을 이리저리 돌이켜보니 엄마는 큰딸인 나를 많이 의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처음 뇌출혈이 일어났을 때도 엄마는 제일 먼저 나를 찾았습니다. 엄마에게도 다른 이름이 있고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 이름보다 엄마로 불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처럼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것을요. 엄마의 마음속에도 보살핌이 필요한 일곱 살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혼자 잠들어버린 아이를 품은 채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꿈처럼 세월이 지나버렸다는 엄마 곁에서 중년이 된 딸은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엄마의 일곱 살 아이를 다독여줘야겠다고요. 그래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줘야겠습니다. “엄마, 사랑해!”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