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집’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시행한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한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결과물입니다.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더함플러스협동조합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경미
세 여자의 토마 키우기
녀석을 데리고 오기 위해 두 여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입양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캔슬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강아지가 있었다. 슬며시 눈치를 보며 같이 키우지 않겠냐고 말을 건넸다. 당시 나는 도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쉐어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룸을 쓰는 두 여자 마루와 오류의 합의를 구해야만 했다. 다행히 개털 알러지 있는 친구도 없었고 동물포비아 있는 친구도 없어서 무사 통과했다
2007년 12월 1일, 드디어 새 식구를 맞이하는 날이다. 나와 마루는 신오쿠보 전절역을 향해 흥분된 마음으로 마중을 나갔다. 큰 귀에 큰 눈을 가진 조그마한 녀석은 털이 긴 치와와였다.
나는 녀석이 낯설고 두려워할까봐 얼렁 맨살이 닿는 부분인 목쪽으로 조심히 끌어안았다. 새끼강아지의 털은 부드럽고 따쓰했다. 마루와 나는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기쁨에 들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재잘거리며 걸어왔다.
이놈 이름부터 지어야 하는데… 우리집의 세 여자와 옆집 건넛집 여자들이 녀석을 둘러싸고 앉아 그럴듯한 개이름들을 나열했다. ‘여기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도쿄토마토니까 토마토?” “아냐 토마토는 부르기 좀 길어” “아님 마토? 좀 이상한데… 토마가 좋겠다! 토마로 해” 건넛집 아줌마가 툭 던진 한마디가 지금까지 나를 ‘토마맘’으로 살게 한 것이다.
다음날 퇴근 후 돌아온 마루는 치와와에 대한 정보를 잔뜩 갖고 왔다. 꼼꼼한 마루는 육아정보 검색 담당자로, 섬머슴 같은 오류는 발로 마사지해주기를 잘해 놀이담담자, 나는 밥주고 똥치우는 집사로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담되었다. 우리 세 여자 뿐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는 낯선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 덕분에 토마는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화 훈련이 되었다.
벚꽃이 화려한 3월, 마루와 나는 6개월이 된 토마의 공원 데뷰(일본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공원에 데리고 나와 첫 지역사회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를 위해 여기저기 개모임을 기웃거리며 개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세 여자의 돌봄과 사랑 속에서 토마는 활발하게 또 구김 없이 잘 자라났다. 마루가 준 잡지에는 치와와가 운동량이 적다고 적혀 있었지만 토마는 넓은 공원을 큰 개보다 더 빨리 달렸고 공원야산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는 에너자이저 였다.
웰컴 투 ‘개 세상’
토마를 공원에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는 리드줄이 필요하 다. 소위 ‘개끈’이다. 평소 목줄 한 개를 보면 안쓰러웠는데 동네 펫숍에 가니 내가 상상하던 가슴줄이 진열돼 있는 것이였다. 가슴줄을 ‘하네스’ 라고 부른다. 이제 나는 개세상에 한 발 내디딘 것이다. 듣도보도 못한 제품들의 이름까지 알아야만 하는.
그 동안 보이지도 않았던 동물병원, 펫숍, 개미용실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인터넷 즐겨찾기 폴더에는 토마폴더가 가장 윗자리를 차지했다.
2011년 3월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후쿠시마의 대지진으로 토마와 나는 한국으로, 오류는 캐나다로, 그리고 마루는 부모님이 사는 야마나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한국에 온 나는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개 공원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토마를 모든 곳에 데리고 갈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누군가 토마를 봐줄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 한국은 가족여행을 하다보니 집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
개와 함께 묵을 수 있는 숙소도 거의 없었고 여행지에서의 식사 또한 문제였다. 음식점에 들어갈때면 케이지에 넣어 몰래 몰래 들어가거나 운 좋으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 구석자리에 앉는다.
대부분의 여행지 역시 동물입장이 거의 금지되어있다. 실내 어트렉션은 물론 사찰, 국립공원, 개 풀면 딱 좋을 만한 수목원까지 금지지역이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 가족끼리 사는 것보다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반려인들이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나 장시간 여행가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생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가 일본에서 그랬던 것 처럼.
내가 여행갈 때마다 토마를 데리고 다니자 주변에선 ‘나도 토마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라고 우스개 섞인 소리를 한다. 물론 토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나는 가장 행복했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토마에게 그 여행이 좋았을까라는 후회섞인 의문이 든다. 언제나 낯선 경험 을 해야 했고 덥고 멀미나는 차와 비행기 속에서 몇 시간이나 버텨야 했다.
토마가 행복해 하는 것은 동네 공원에서 자기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반려동물들이 그러할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아이들과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어보면 어떨 때 웃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토마가 이어준 인연들
토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반려인들의 집에 대한 꿈은 토마가 뇌수막염으로 하늘나라로 가면서 사라졌다. 아픔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어느 날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바로 토마와 교감하며 같이 생활하던 날들이였다. 토마를 기억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펫빌리지’ 라는 이름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짓는 공동체주택 연구모임을 시작했다. 공동체주택이라는 용어도 모르고 어설프게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정기적인 모임으로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지원금을 받아 강좌도 열고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시도해 보면서 펫빌리지를 현실화 시키려는 움직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얼마전 마루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와 함께 날아온 마루 어머니의 문자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토마가 야마나시에 왔던 것이 생각납니다. 마루가 강아지를 좋아하게 된 것이 토마때문인 것 같습니 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인연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이 토마였다는 것을. 펫빌리지의 모임원들도 토마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들이다.
나는 마루와 함께 공동육아를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며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꿈꾼다. ‘펫빌리지’의 입주를 위하여.
이경미
반려동물과 함께 살 집짓기 연구모임 ‘펫빌리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토마가 이어준 사람들과 ‘공유와 나눔’의 ‘반려동물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 습니다.
토마처럼 아프거나 나이가 든 반려동물을 위한 케어하우스를 지을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생각없이 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