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행 : 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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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구석구석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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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인용된 “ ” 안의 글들은 1914년 발표된, 고흐가 네 살 차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임을 밝힙니다.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년

 

 

오랫동안 계획했던 ‘남프랑스 미술관 투어(6/14~6/24)’를 다녀왔다.

프랑스 남쪽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호텔을 잡고,

마르세유의 뮤셈(Mucem)박물관과 칸티니 미술관(Musee Cantini)

고흐의 도시 아를, 세잔의 아뜰리에가 있는 엑상프로방스,

앙리 마티스와 샤갈 미술관이 있는 니스까지, 험난하고 모험적이기까지 했던

미술관 투어를 꿈꾸듯 탐방하고 돌아왔다.

 

마르세유에서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까지 가는 방법은

기차와 버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모두 마르세유의 생 샤를( Marseille Saint charles)역에서 출발한다.

우리는(일행) 아를에 도착하기 전, 아비뇽에 잠깐 머물기로 하고,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마르세유->아비뇽 떼제베(TGV) (30분 거리) 티켓을 샀다.

아비뇽에서 TER(기차)로 다시 20분 거리에 아를이 있다.

 

 

▲아비뇽에서 아를행 티켓, SNCF는 프랑스 국영철도청을 의미한다

 

 

 

 ▲아를역

 

 

아를 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면 고흐가 강가에서 그림을 그렸다던

바로 그 강, 론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이 강을 중심으로 무역업이 발달하였으나

이후 퇴적물이 강가에 쌓여서 배가 뜨지 못하게 되어

모든 정치적, 무역, 상권이 마르세유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강을 따라 걷는 내내 강물은 멈추고 하늘은 흐르고 있었다.

적막하기조차 하다.

어디선가 조용히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론강

 

 

“사람들은 그곳(아를)에서 붉은색과 초록색, 푸른색과 오렌지색,

짙은 노란색과 보라색의 아름다운 대조를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한참을 걷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건물과 풍경과 하늘이 온통 아름다워 좁은 길목을 목적도 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헤매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어떡해’를 연발하다 정신을 차리고 구글 지도에 의지해서

고흐 미술관에 다행히 도착할 수 있었다.

 

미술관 입구의 설치미술, 호수(플라스틱)분수-딱히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를 지나,

티켓을 구입(9유로)하고 미술관에 드디어 입장했다.

고흐의 작품은 많지 않았다.

고흐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아를 지역의 고흐 미술관이라서

작품이 많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적은 작품 수에 크게 실망하고

심지어 입장료가 아깝다라는 생각까지도 잠깐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다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보았다.

시선 아래로 여기저기 골목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코발트 빛 하늘.

마치 고흐의 작품 속에 들어와 앉은 듯 착각이 들었다.

 

 

▲반 고흐 미술관(Fondation Vincent von Gogh Arles)

 

 

 

“색채를 통해 뭔가 보여 줄 수 있기를”

 

마을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 바로 길을 건너면

바로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epulique)이 나타난다.

그 옆에는 프로방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건축물인 생 트로핌 성당이 있다.

성당 뒤쪽으로 고대 극장과 원형경기장이 있어서 한 번에 관광이 가능한 장소다.

 

성 트로핌 대성당(Cathedrale Saint- Trophime d’Arles)은

프로방스 지방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종교 건축물이다.

대성당의 입구와 회랑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12~14세기에 만들어진 섬세한 조각들이

유명하지만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1840년 대성당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선정되었고,

1981년부터 ‘아를의 로마시대 건축물’ 목록에 포함되어

유네스코(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생 트로핑 대성당( Saint Trophine)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형경기장(Arenes d’Arles)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원형경기장(Arenes d’Arles)은 관객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경기장이다.

5세기 말까지 검투사들의 대결했고 맹수와 인간의 싸움 등을 오락거리로 제공하기 위한 건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를이 ‘작은 로마’로 불리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작지만, 손상되지 않고 정교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어 건물이 주는 통일된 완벽함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많지 않았으나, 경기장 안 응달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

“내 영혼을 주겠다”

 

 

 

▲생 레미 정신병원( Saint Remy di Provence)

 

 

고흐의 작품(900여 점과 1100여 점의 습작품, 75점의 자화상)은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1890년 7월 29일)을 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에 그려진 것이다.

 

‘물감에서 솟아오르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람을 보여 주는 일’

 

1889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고흐는

우울증을 앓았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는데, 정신 상태가 그림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선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우리가 전형적으로 알고 있는 ‘소용돌이 화법’과 원색(노란색)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밀레의 그림을 모사 한, <낮잠>과 <첫 걸음마>가 이 시기의 작품이다.

<프로방스 시골길의 하늘 풍경>, <해바라기> 등도 이때 그린 작품이다.

고흐의 너무나 유명한 작품, ‘별이 흐르는 밤<The Starry Night, 1889>도 이 시기에 그렸다.

 

고흐가 그랬듯이, 고흐처럼 병원 안 정원을 서성이며,

후세인들이 그의 작품을 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광기, 정신분열, 성격장애 등. 이러한 부분들이 정신병에서 오는 극단적 광기의 표현이라기보다,

별이 되어 하늘로 가고 싶은 지극히 간절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테라스 카페(cafe Terrace Place du Forum)

 

 

이 그림의 배경이 된 포럼광장에는 네다섯 개의 카페가 한 광장에 모여 있었다.

고흐의 그림 배경 장소인 바로 그 카페뿐만 아니라 광장 전체 카페에 손님들이

꽉 차 와인과 맥주와 음식, 커피를 나누며 10시가 되어야 해가 지는 남프랑스 여름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디를 가나 프랑스인들이 부럽다.

그들의 여건과 여유, 문화적 환경 등이 사람을 온통 풍요롭게 하는 것 아닌가.

 

카페건물은 곳곳에 고흐의 해바라기가 장식되어 있었고,

카페 주인은 명랑하고 유머스럽게 손님들의 사진을 친절하게 찍어 준다.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가격은 5.50유로. 글라스 와인도 5유로.

 

기차 시간에 맞추어 아를을 떠나야 했기에 카페에서 나와 다시 아를역이 있는 론강을 걸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동안, 동네 전체가 이런 집들 분위기다.

온통 건물과 풍경 하늘까지, 전체가 미술이고 작품이고 명품인 도시 아를.

 

친구는 아를이 너무 좋아, 하루를 머물며 아를을 즐기자고 보챘다.

하지만 거금의 마르세유 호텔비와 예약한 기차표, 무엇보다 다음 일정으로 인해 아름다운 도시이자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을 뒤로 하고 다시 아를 역에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의 생 샤를 역으로 되돌아왔다.

 

 

 

▲아를의 어느 한 골목에서

 

 

고흐의 말한 이 문장으로  ‘고흐가 사랑한 도시 아를(Arles) 방문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