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셈하여도 에누리 없는 완벽한 60세에 이르니 언제부터인지 내가 하는 모든 사회활동 앞엔 접두사 ‘시니어’ 또는 ‘어르신’ 이란 단어가 붙여진다. 시니어 활동가, 시니어 인턴쉽, 시니어 기자단, 시니어비즈니스사업단, 시니어멘토단, 어르신봉사단 등등 ‘낯선 시니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려고 스스로 재빨리 모드전환을 하였다.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과의 이별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를 살면서 시니어로서 특히 유념하는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최신의 트렌드를 파악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자는 것과 정보를 얻기 위해 무턱대고 가족이나 주변에게 알아봐 주기를 삼가자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복잡하고 세분화된 상황에서 관심을 갖고 있거나 원하는 것을 미리 꼼꼼히 살피지 않고 무작정 주변의 도움을 청했다 본의 아니게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된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법은 내가 원하는 내게 맞는 안성맞춤의 정보를 얻는데 지름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스스로 뭔가를 얻고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검색을 하는데 의외의 수확을 얻는 경우가 많다. 지난 무더운 여름 인터넷을 검색하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만 6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시니어 영화공방’ 이라는 영화 제작과정을 개설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동영상 촬영이나 편집과정 또는 유튜브를 이용한 1인 미디어 과정은 많이 들어보았는데 영화 제작과정은 생소했다. 이 나이에 새삼 무슨 영화 제작을? 당장 필요도 없는데 하는 부정적인 마음과 신청 자격요건이 만 60세로 나이가 딱 들어맞지는 않은 시점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일단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이론수업

 

요강에는 기본적 영상 제작 기본기를 갖춘 시니어 10명 모집이었는데 신청자가 몰려 과정은 15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영상 제작에 자신이 없어 공연히 욕심을 내었다 중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15명의 참가자를 4개 그룹으로 나누어 과정이 진행되었는 데 참가자 전원이 영화제작이론과 실습 과정을 거쳐 5분짜리 영화 제작과정을 완수했다.

 

촬영 전 콘티 점검

 

첫 기획과정에서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따른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완성하였다. 영화는 흔히 콘티라고 약칭하여 불리는(콘티뉴이티, continuity) 영화 촬영 장면과 장면을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자료가 필요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각 장면을 나누어 그림으로 표현한 연출 및 촬영 대본이다. 콘티에는 그림과 함께 대사, 액션, 카메라의 위치, 음향, 효과 등 촬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완벽히 기재되어야 한다. 이런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콘티를 직접 제작하고, 각자의 배역을 맡아 대사를 외우고 연기를 한다니 영 믿기지 않았다. 각자의 배역에 따른 연기를 촬영하고 편집프로그램을 구동하여 영상 편집까지 마쳐야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 내가 출연하는 5분짜리 영화라니 설렘과 두려움에 앞서 흥미진진했다. 영화제작의 A to Z를 교육만 받는 것에 5분짜리 영화라는 결과물을 내는 실전 과정을 신통하게도 우린 해냈다.

 

 

연기 돌입

 

내가 서두에 “시니어”란 접두어를 강조한 이유는 앞에 ‘시니어’ 자가 붙여진 각종의 모임이나 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참여자 가운데 분야별로 실력을 갖춘 베테랑 전문가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자 함이었다. 통상 시니어 과정은 설사 그 과정의 내용이나 속도에 있어서 시니어에 맞추어져 있을지는 몰라도 참여자 중에는 예상치 못한 실력파 전문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편집 중

 

이번 과정에서도 내가 속한 팀에 우리나라 3대 공중파 방송국 중 한 곳에서 CP로 정년 퇴임한 후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 중인 베테랑 전문가가 계셨다. 단번에 익힐 수 없는 전문기술과 지식을 농축 엑기스를 섭취하듯 그 전문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도움은 효과 만점이었다. 일반 교육기관에서 동일한 과정을 수강한다면 몇 회를 반복 들어야 이수가 가능했을 것이다.

 

시니어 과정에 모여드는 시니어는 나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서도 과정을 신청하지만, 전문가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주변과 나누는데 보람을 얻고자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을 발휘하여 굳이 자신을 어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기 PR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분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수강생들의 후속 모임으로 이어져 조부모 세대가 손자녀들의 성장 동영상을 제작하거나 가족 간의 스토리를 담은 이벤트 영상물을 기획하여 완성하는 맞춤형 과정을 지도하면서 바쁘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품평회

 

짧은 기간에 익힌 이론과 실습을 거쳐 5분짜리 미니영화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4개의 작품 품평회를 마치고 난 후의 뿌듯함보다 더 벅찬 감동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리라. 몇 명의 시니어가 초상권(?)을 제기하여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영상자료원에서는 4개 팀의 5분짜리 영화를 영상자료원의 웹에 팝업창으로 게재하여 ‘시니어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적극 홍보하고자 동의를 구하기도 하였다.

 

내가 출연한, 우리가 완성한 5분짜리 영화는 중독성이 있는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무한반복 감상하게 한다. 시니어영화공방과정을 통해 무더위를 잊고 ‘영화제작에 꽂혔던 짧은 체험’은 그 결과물로 두고두고 오랜 여운이 남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사람의 기억과 기능 중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는 것은 몸으로 익힌 학습된 신체적 습관이라고 한다. 스스로 손이나 발을 써서 하는 행동들이다. 비록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고 사물의 이름이 바로 생각이 안 나고 몇 번 들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해도 내 손과 발의 신체적 습관이 유지되고 기능에 문제가 없는 한 무엇이든 새로운 도전을 안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나는 지금도 다음 도전의 대상을 물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