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캠퍼스와 50플러스센터 곳곳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50+동년배들이 있다. 캠퍼스와 센터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강좌를 이용하는 50+세대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이들, 모르는 것들이 생겨 50+캠퍼스와 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맨 먼저 만나는 이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할 때도 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던 이들, <50+모더레이터>들이다.
이들은 50+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음은 물론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와 모니터링, 커뮤니티 지원과 보람일자리사업 운영지원에 이르기까지 50+세대가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할 일’과 새로운 ‘관계 맺기’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들이다. 65명의 50+모더레이터들이 없으면 캠퍼스와 센터가 잘 돌아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막강 파워 군단이라 하겠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그 자리에.
영등포50+센터 키다리아저씨 <김용규>님
영등포50+센터에 가면 센터의 3층과 4층을 종횡무진하는 50+세대들의 든든한 <키다리아저씨> 김용규 모더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지난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의 주 업무는 강의 보조 진행.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에 센터에 출근해 강좌 시간표를 보고 강의실 사전 점검과 세팅을 한다. 담당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강의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담당자들에게 모니터링한 내용을 메일로 작성해 보내거나 강의 후기 혹은 진행된 강의 사진들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
3월 초 진행된 ‘스마트폰 카메라 활용하기’ 강좌에서는 실습이 주가 된 강의의 특성상 잘 따라가지 못하는 수강생들을 위해 주 강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수강생들에게 세심한 조교가 되기도 했다. 씨앗과 프린트 등 준비물이 많았던 ‘도시농부 1기’ 강좌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 강사를 도와 수강생들이 편하게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활동 초기에 생긴 에피소드는 그를 늘 심기일전하게 만들었다. 도시농부 1기 강좌 진행 중 타 강좌 담당자의 요청에 따라 새로 시작하는 다른 강좌의 모니터링 겸 강의 보조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밖에 나와 보니 도시농부 강좌의 반장이 애타게 그를 찾고 있었다. 매번 들어오던 모더레이터가 들어오지 않자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던 것.
“잔손이 많이 가는 강좌다 보니 혼자 해결이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리 복잡한 일도 아니었거든요. 내가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사소한 것일 수 있는데 그래도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죠. 이후로는 강의 모니터 한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는 다른 과목들이 어떤 것들이 진행되고 있나 꼭 확인해요. 제 손길이 필요하다 싶은 강좌가 있을 때는 모니터링을 위해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죠.”
시간제로 일하는 4명의 모더레이터 인력으로 센터의 다양한 강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그만의 세심함이다.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센터에 나올 때마다 ‘누군가는 내가 있어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더불어 참여하는 50+세대들과 소통이 잘 됐을 때는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받은 것 같아 보람도 느낀다.
관악산자락 천사들이 전해준 메시지에 삶의 가치 전환 생겨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김용규모더레이터는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펼치는 (사)호이 - HoE:Hope is Education)에 파견돼 2기로 모더레이터 활동을 한 바 있다. 평일 야간에 운영되는 성인과정과 토요일 오후에 진행된 청소년(고교 1-2학년생) 대상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보조 진행이 그의 주 업무였다. 두 과정의 교육 운영 보조를 하면서, (사)호이의 젊은 운영진들을 보면서 그 자신이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았던 시간’이 됐다. S생명에서 27년간 영업, 교육, 기획 업무를 두루 담당하며 ‘돈 버는 것만이 일이고 돈 버는 것만이 중요한 줄 알았다’ 는 그에게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의 열악한 지역 현직 초등교사들에게 교사로서의 자세를 업그레이드, 리마인드시켜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사)호이의 젊은 운영진들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 ‘천사’였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고, 교사는 사명감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 는 믿음으로 아프리카의 선생님 한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빈곤문제, 환경문제를 후진국의 문제로 돌리지않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세계평화, 인권, 문화 다양성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세계시민교육>에 자신의 가치관과 열정을 쏟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퍽 컸다.
(사)호이에서의 모더레이터 활동은 NPO단체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NPO단체에서 하는 교육에도 참여하게 됐다. 올해 하반기 아프리카 현지로 ‘시니어봉사단’을 파견할 예정인 (사)호이의 프로젝트에 참가할 예정이다.
“타산적이고 삭막한 감정을 가진 제가 호이에서 천사를 만났어요. 그들을 보면서 우리 50+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이제라도 행동하기에 늦진 않았죠.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시민교육’도 하고 싶고, 내년에는 50+서부캠퍼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NPO펠로우십 인턴이 돼서 NPO단체에서 일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모더레이터라는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그의 인생 후반이 더 특별해 보였다.
50+세대의 새로운 관계 맺기, 그 신나는 출발에 멘토가 되다.
중부캠퍼스 커뮤니티 지원업무 담당 강기영님
50+세대들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 지원과 교육과정 평가 이외에 모더레이터의 또 다른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커뮤니티> 지원 업무이다. 다양한 교육과정이 진행된 이 후, 더 활동하기를 희망하는 50+세대들이 모여 만드는 커뮤니티. 일종의 동아리와 같은 이런 모임들이 캠퍼스 개관 2년차인 50+서부캠퍼스에는 130여개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활동 중이다. 올해 3월 개관한 50+중부캠퍼스에는 현재 49개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고 올해 80개 커뮤니티 지원이 목표라 한다. 커뮤니티 신청을 해 오는 대상자들을 ‘매의 눈’으로 선별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50+모데레이터의 역할 중 하나이다. 커뮤니티 지원 업무를 하는 모더레이터는 50+서부캠퍼스 5명과 중부캠퍼스에 3명이 현재 활동 중이다.
치열하게 인생 1단계를 지나온 50+세대들은 50이라는 나이를 기점으로 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돈을 버는 일 이외에 남은 삶을 어떻게, 무엇을 하면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유야 어찌됐든 일이 줄어드는 시기도 이때다. 혼자서는 쉽사리 모색하기 어려운 삶의 진지한 방향 전환,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라면 어떨까.
50+세대들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찾는 방법이 관심 가는 교육과정을 듣는 일이다. 하지만 짧은 교육과정이 50+세대들의 니즈를 올곧이 충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이 때 작은 모임, 즉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면 새로운 가치, 새로운 진로에 수월하게 근접해 갈 수 있다. 50+캠퍼스와 50+센터에서 50+세대들이 참여하는 건강한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더레이터는 50+세대의 모든 활동들을 촉진시키는 촉매자다
“나이 들수록 비슷한 관심사를 논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 만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에 온 사람들은 다르죠. 말도 잘 통하고 관심사도 같으니 빨리 친해질 수 있어요. 뭔가를 도모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가기에도 적합합니다. 같이 하는 활동들이 가치가 높은 활동이 많거든요.”
50+중부캠퍼스에서 2월부터 커뮤니티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강기영 모더레이터의 생각이다. 지난해에도 서부캠퍼스에서 커뮤니티 지원 업무를 진행했던 그는 새로운 가치에 따른 삶의 전환도 혼자보다는 소그룹을 형성해 가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믿는다. 그가 커뮤니티 지원 업무를 하면서 ‘따로 또 같이’에 방점을 두는 이유다. 커뮤니티라는 작은 사회를 형성해 편안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50+세대들을 많이 봐 온 터라 커뮤니티의 양적 증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방향성을 가지고 잘 운영되는 커뮤니티는 확실한 목표 의식과 팀워크, 리더의 리드 능력, 활동가들이 공유할 수 있는 혹은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경우다.
커뮤니티가 많다보니 물론 단점들도 나타난다. 커뮤니티가 너무 많고 활동이 저조한 곳도 많다는 지적도 있다.
“커뮤니티에 선정되고 지원금을 받아 활동하다보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실패했더라도 활동했던 경험은 나중에 유사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할 때 분명 촉매자의 역할을 하리라고 봐요. 나 혼자의 생각보다는 함께 가려고 노력하는 성향을 띨 것이기 때문이죠. 실패의 경험은 이미 기존의 생각들을 바꾸게 하니까요.”
많은 커뮤니티의 ‘생로병사’를 지켜 본 여유가 묻어난다.
“한 커뮤니티에 지원되는 50만원이라는 지원금은 막 달리기를 시작할 때 등 뒤에서 불어오는 격려의 바람 같은 혹은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리라 봐요.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받는 지원금은 50+세대의 모든 활동이 공적인 활동이라는 의미부여도 해 주거든요.”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나무 판넬을 제작해 각각의 커뮤니티들을 소개하는 정보판을 만들어 게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언제든 교육을 받은 새로운 신입 활동가들이 속속 들어 올 수 있도록 커뮤니티는 개방적이어야 하고, 약 3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엔 커뮤니티의 성장성과 사업성을 두루 이야기할 시점이 올 것이란 것이 커뮤니티의 생성과 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생각들이다.
아쉬움도 있다.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3명의 적은 인력으로 활동하다보니 각각의 커뮤니티를 깊게 다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멘토링을 해 줄 수 없다. 교육과정이 끝나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안내하면서도 세세한 운영 관리가 이뤄질 수 없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모더레이터 활동이 나에겐 평생교육
산업교육 컨설팅 전문기관(KPC)에서 28년 동안 컨설팅과 산업교육을 해 왔던 그는 전문면접관으로 일주일에 2~3일 가량은 활동 중이다. 2016년 퇴직 이후 전직의 커리어를 살려 사회공헌 할 수 있는 곳으로 50+서부캠퍼스를 찾았다. 그가 보람일자리 중에서 모더레이터로 활동하고 커뮤니티를 선정·육성·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도 전직의 커리어와 무관하지 않다.
“커뮤니티는 일반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든 것이고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니만큼 흐름은 같아요. 생성과 발전, 소멸과 재생산의 과정을 보게 되면 문제점은 같죠.”
그가 모더레이터의 틀 안에서 꼼꼼하게 커뮤니티의 성장과정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다. 전직의 커리어로 50+세대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그는 지금 하는 일이 ‘궁합이 맞다’고 느낄 만큼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25년의 평생교육 현장 경험이 유연한 상담능력 키워
서부캠퍼스 <전성자>님
궁금한 점이 있어 서부캠퍼스 1층 50+상담센터를 찾거나 전화를 걸 경우, 남다른 유연함으로 상담자들의 궁금증을 잘 해결해 주는 모더레이터를 만날 수 있다. 60여명이 넘는 인원이 활동 중인 모더레이터 중 소수 인원이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육 지원과 커뮤니티 지원, 일자리 지원 영역 이외에 상담센터의 상담 영역도 모더레이터의 활동 영역 중 하나다. 그야말로 최전선에서 50+세대들과 만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프로그램 역량 강화 후 일자리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고 50+캠퍼스와 50+센터에 대한 문의가 그 다음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세세한 부분은 물론 50+캠퍼스 전반에 대한 상세한 부분까지도 꿰고 있어야 한다. 상담을 위해 내방하거나 전화가 올 경우 질문해 오는 것들에 대한 답변 이외에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미리, 많이 주어야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상담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작년 하반기 활동에 이어 상담 모더레이터로 올해도 활동 중인 전성자 모더레이터를 만났다.
한발 한발 평생교육을 위해 봉사하고 배우고 또 배우고 ......
전성자 모더레이터는 1992년 외국 유학생이나 개발도상국의 기술전수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 부터다. 1995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영국 행(行)을 감행하기 전까지 자원봉사는 계속 됐고 영국에서도 토요일마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이외에 그가 영국에서 경험한 기분 좋은 일들 중 하나는 저녁 시간에 평생학습관을 찾아가 그림을 공부하며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이어간 기억들이다. 이 경험은 그가 나중에 50+서부캠퍼스에서 인생 후반부를 준비하는 50+세대들을 상담하고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일을 맡아 진행하면서 50+ 당사자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 경험들이기도 했다.
3년간의 영국생활을 마치고 1998년 한국으로 돌아 온 그는 다시 자원봉사를 지속했다. 2003년 평생교육을 공부하면서 민간과 국가자격증(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을 두루 취득한 것은 물론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평생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준비한 그에게 기회가 왔다. 2007년 중국 청도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교원을 찾고 있었던 것. 아이들도 대학과 직장에 잘 안착했고 남편도 외국에서 근무하는지라 혼자서 중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동안 시청과 구청, 요양원 등으로 봉사 활동을 했던 수년간의 경험들은 그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들을 재발견하묘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고 그가 용기를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3년간의 시간을 보내고 2010년 귀국한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집단 상담과 교육을 시작했다. 다문화가족들에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2016년까지 은평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활동했다. 2013년부터는 서대문구에서 평생학습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그는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18년 전 쯤 영국에서 경험했던 시스템과 공간들이 평생교육 현장이었어요. 서대문구에서 평생학습 매니저로 활동하다보니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아 그게 평생학습이었구나’ 싶은 ......”
서대문구에서 서울시평생학습 매니저로의 활동이 끝날 즈음, 인생이모작센터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됐다.
나는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것들
한국어 교육, 자원 봉사, 평생학습 매니저 ...... 그가 하나씩 관심을 갖고 몸 담아 활동했던 것들은 현재의 그를 자연스레 만들었다. 인생이모작센터에서의 컨텐츠가 좋았던 강의를 시작으로 50+서부캠퍼스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더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비슷한 또래들의 방문과 전화 상담을 받으며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그동안의 현장 경험들과 자신이 평생교육에 대해 공부했던 것들, 미리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동원해 상담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 ‘질문해 오는 것만을 답해 주면 그 분들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캠퍼스를 찾는 50+세대는 이미 일정 부분 전문성을 갖춘 세대들이다. 이들이 새로운 일을 찾고자 할 때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도적으로 본인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지만 개인적인 고민은 있다.
“어떤 학습을 해야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거죠. 다양한 시도는 본인의 몫이니까요. 상담할 때 50+ 캠퍼스를 인테넷으로 검색해 보거나 방문해 보고, 뭐라도 하나 강의를 꼭 들어 보시라 권합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50+서부 캠퍼스를 방문한 50+세대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50+서부캠퍼스는 동년배들이 모인 집단 학습의 장이지만 상담센터의 특징도 갖고 있어서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과 수강생들 중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상담 ·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궁금해서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생겼거나 갈등이 생겨 따지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땐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때론 감정 노동자들이 겪는 상황도 직면하게 되지만 평생 학습, 성인 학습의 현장에서 안내자, 중간자의 역할을 계속 하고 싶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저를 필요로 하고 찾는 만큼 저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껴요.” 라는 말로 지금하고 있는 활동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