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조우주ㅣ50+스토리 공모전 장려상

 

 


5월 어느 화창한 봄날, 50플러스센터에 뮤지컬과 봉산탈춤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첫 수업이었는데, 인원이 많았습니다. 뮤지컬과 봉산탈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온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쭈뼛쭈뼛 눈치 보기에 바빴습니다. 누구나 신청해도 되는 수업이 었지만 센터 자체가 50대 이상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부모님 뻘, 혹은 그 연배 이상이신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물론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교실에 들어가니 긴장이 돼서인지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로 머무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디론가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신청한 거, 첫날은 들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배우가 될 수는 없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이 이미 배우로 가는 길의 시작이라는 선생님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날 끝까지 꿋꿋이 앉아 수업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자 긴장도 어느 정도 사라지고,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수업을 들어도 되는 것인가, 심지어는 학습 분위기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어서 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다가갔습니다.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극단 부단장이시라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으셨습니다. 말 꺼내기도 힘이 들었지만, 주춤주춤 다가가서는 “제가 이 수업을 들어도 될까요?”라고 물었고, 선생님은 들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르신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식자리에서 선생님은 딱 봐도 내성적으로 보이는 내가 이런 수업을 신청했다는 것에 놀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게 눈에 보였다고 하시며, 3년만 더 따라다니며 다 배우고 가라며 다소 진담 같은 농담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노래 부를 때마다 목에 힘이 들어가며 고음이 힘들다고 하자, 선생님은 한 곡을 천 번, 아니 몇 백 번이라도 불러봤냐고 물으셨습니다. 지금은 고음을 가성으로 내고 싶더라도, 진성으로 내면 힘들더라도 관객들에게 그 감동이 전해질 것이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고음 잘 낸다고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게 느껴졌습니다. 노랫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부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했습니다. 뮤지컬 반은 언제나 웃음소리와 흥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뮤지컬반이 성비균형이 어느 정도 맞았다면 그럴듯한 뮤지컬 공연을 할 수 있었을텐데 어르신들, 아니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셨습니다. 뮤지컬의 특성상 남성배역이 많은데 남자 분은 겨우 두세 분 정도였습니다. 가끔 한두 분이 안 나오시면 나오신 분들이 좀 민망해하셨습니다. 그때마다 남성분들이 좀 많이 들어오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용기 내기가 어렵지 막상 배우면 흥겨운데 가부장적인 옛 사고방식과 체면 때문에 시작이 어려워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자 어르신도 일단 들어오고 나면 다들 유머감각이 넘쳐나셔서 늘 다른 분들을 폭소케 하셨습니다. 교사나 교직원이신분, 은퇴하신분들, 젊었을적 꿈이 뮤지컬 배우셨던 분, 합창단을 하셨던 분, 가정주부이신 분,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 등 정말 이곳에 오기까지 다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반이었습니다.

 

뮤지컬 수업이 끝나면 봉산탈춤 수업이 이어집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져 수강생이 약 20명가량이지만 내가 배웠을 때는 그 반절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이 수업에서도 긴장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인원이 적어 눈에 잘 띠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되었습니다.

“산중에 무력일하여 철 가는 줄 몰랐더니 꽃 피어 춘절이요, 잎 돋아 하절이라. 오동 낙엽에 추절이요, 저 건너 창송녹죽에 백설이 펄펄 휘날리니 이아니 동절이냐~ (중략) 어디 한번 놀고 가려던…… 낙양 동천 이화정!”

 

처음에는 봉산탈춤의 둘째 목 중의 사설과 불림을 혼자 일어서서 큰소리로 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 명씩 시키는데 그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긴장은 수업이 진행되면서 봉산탈춤의 춤사위가 어느덧 몸에 익고 선생님 들과 점점 친해짐에 따라 거의 사라졌습니다. 보기에도 쉽지 않은데 따라 하려니 땀이 뻘뻘 났습니다. 회식할 엄두를 못 냈던 뮤지컬반보다 인원이 적어서 회식도 하고, 일단 다 같이 고생을 하니 알게 모르게 끈끈한 연대감이 생겼습니다. 사설과 불림을 할 때마다 서로 누가 더 목청을 크게 하나 응원해 주었습니다. 얼쑤하며 흥이 났습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오전에 학교 수업이나 시험이 끝나고 점심 먹을 새도 없이 갈 때와 그간 늘 책상에만 앉아 있었던 바람에, 워낙 온몸이 굳어있어 “젊은 사람이 벌써 지치면 쓰나~! 무릎 더 굽혀!”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그동안 운동을 안 했던 것에 대한 자책이 들었습니다. 내가 몸소 ‘젊은 사람도 운동 안 하면 더 뻣뻣하다’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습니다. 선생님들 앞에서 핑계를 댈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무척 뿌듯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봉산탈춤의 매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풍류정을 만났으니, 어디 한번, 놀~고 가려던!”

 

신나게 뮤지컬 수업과 봉산탈춤 수업을 들을 무렵,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재미나게 봤었습니다. ‘어른과 노인의 차이가 대체 뭘까?’라는 질문이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였습니다. 드라마를 제작하기 전에, 작가는 청춘들의 어른에 대한 시각을 취재했습니다. 취재에서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신의 윗세대를 어른 아닌 노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명 꼰대 같고 답답하며 구질구질하다는 식의 단어들로 이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청년들의 시선이 드라마와 언론 속에서 비춰진 노인들이 기존의 질서에 목매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젊은이를 견제하고 나이를 권력으로 여기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노인들이 정보와 관찰의 부족으로 청년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이야기가 아닌 어른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청춘과 어른이 ‘친애하는 친구’가 되는 관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드라마에서 집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뮤지컬 수업과 봉산탈춤 수업을 들은 그 경험은 참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으시지만, 청년들의 입장에서는 기성세대인 그분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부모님과 있는 것 같아 편안하고 참 즐거웠습니다. 오히려 또래들과 했다면 괜한 경쟁의식이 생기거나, 친한 친구들끼리만 어울리는 등 관계 맺기의 미숙함으로 생기는 문제점들로 불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가 본 그분들은 지금껏 본 어떤 젊은이보다도 자신감과 흥이 넘치셨으며, 단톡방을 이용해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안부를 나누고 자료를 공유하였고, 수업할 때는 서로 누가 더 재미있는 농담을 하나 경쟁을 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각 장면들이 생각났습니다. 마치 서술자이자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하나의 극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분들도 젊은이에 대한 어떤 편견이 있으셨거나 정보가 없어 잘 모르셨다면 나를 통해 조금이라도 생각이 변화되셨을까. 이것이야말로 드라마를 뛰어넘는 현실이 아닐까. 어깨가 막중해집니다. 이럴 때면 내성적인 내 성격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마 지금도 ‘나의 이 나이 든 친구들’은 연말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의 멋진 공연이 기다려집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그리운 분들이 참 보고 싶습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의 문화,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례를 발굴하고 50+세대의 활동이야기를 알리고자 ‘2016년 50+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수상작 50+스토리를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