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짓는 주부, 50이후의 시간을 여행하다
김정은ㅣ50+스토리 공모전 장려상
저는 독신을 꿈꾸다가 콩깍지가 씌어 첫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온전히 제대로 된 전업주부로 살 작정이었지요. 직장과 가정 사이를 오가며 1인 2역을 감당해야 하는 엄마의 바쁨 사이에서 종종 애정 결핍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일상에도 중대한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사회적 관계의 결핍이었습니다. 저는 늘 아이교육, 어른시중, 남편보조에 연루된 단순노동 속에 갇혀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이 사회가 '아줌마'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어딘지 모르게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결국은 자발적으로 사회에서 고립된 자신을 스스로 구제하고 성장시켜야 했어요.
그 작은 돌파구를 저는 ' SNS 블로그 글쓰기'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감정을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양한 기록으로 남기길 십년 여. 블로그 글쓰기, 신문 만들기, 여행책 공동저술, 다양한 글쓰기 활동 등을 통해 조금씩 세상과 인연을 맺어 생각을 교환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편, 노후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을 줄 몰랐던 양가 부모님을 돌보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가꿀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해야겠다고.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희망제작소의 이모작 프로그램 '행복설계아카데미'를 수강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을 얻기 위해 5년 전부터 '지혜로운 학교'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정주부로 지내는 동안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나름의 소명의식도 느낍니다.
그러면서 십여 년 이상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모아 '엄마난중일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를 선택했던 저의 삶 속에서 발견한 깨달음과 지혜였지요. 마침 작은 아이까지 성년이 되는 시점이어서 북 콘서트 이름을 '엄마은퇴식'이라 붙였습니다. 이제 가정을 늘 우선순위로 두어야 했던 저의 인생 1막을 마무리 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정은 저에게 소중하지만 동등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하자는 거죠.
그러고 나서 스토리매니저로서 1인 창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의 난관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자기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오지랖통신'이라는 온라인 이야기신문을 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자기 세계에 고립되어 있는 현대인들이 자기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정보를 아무때나 편하게 비용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메일로 보내는 방법 을 선택하였습니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보다 뉴스감이 되지 않는 일상의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요.
현재 저는 인류 최초의 100세 시대를 맞아 사회적 실험을 추진 중인 50플러스 재단에서 보람일자리 '모더레이터'라는 시간제 업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글쓰기 경력과 관련지어 홍보모더레이터의 중간 데스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저에게는 하나의 신기한 여행과도 같습니다.
50 이후의 제 삶은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비록 옛날보 다 젊은 기운이 쇠하고, 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뱃살이 두둑해진 여자사람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만 구애되지 않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아쉽게도 돈 버는 일에는 큰 재능이 없어서 좋은 소비자나 후원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간의 다양한 경력으로 대부분의 일은 제 손으로 혼자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늘 유익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려고만 애쓴다면 뭐 그리 큰돈이 필요할까 싶기도 해요.
지금은 적당하게 강의도 하고, 글도 쓰고, 모여서 협업을 하기도 합니다. 불안하고, 막연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시간 여행 같아서 설레기도 합니다.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철부지에요. 그렇게 살아가는 제가 제법 마음에 듭니다. 토닥토닥.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의 문화,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례를 발굴하고 50+세대의 활동이야기를 알리고자 ‘2016년 50+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수상작 50+스토리를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