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고즈넉한 산촌,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풍경.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꿈을 꾼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어요.
시골에서의 슬로 라이프? 꿈 깨세요
“몇 년 후에 귀농하려고 했었는데, 이 책 읽어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온 친구가 한 말. 막연한 듯했으나 나름 확고했던 귀향의 꿈을, 제고해 봐야겠다고 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손사래를 치는 책이었다. 이미 귀촌해서 경기도 시골에서 살고 있는 선배도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면 진짜 한번 읽어볼만 하다고 말했다. 시골이 그런 곳이라거나, 그런 곳이 아니라거나 어린 시절 16년을 시골에서 농부의 딸로 자란 사람으로서 시골 자체에 대한 신비도 낭만도 없던 터였다. 시골과 농사에 대해 더 배워야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면 가는 거지. 돌아가서 살면 되는 거지. 구십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신 부모가 있고 그 일과 땅을 물려받아 칠십 평생을 농부로 살고 있는 큰오빠 부부의 땅, 시골. 거긴 그냥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 생의 정리가 될 장소였다. 나이 들고 보니 그 시골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는 오빠부부가 가장 부러운 사람이 되었다. 농사를 짓든 텃밭을 가꾸든, 그저 가만히 나물먹고 물마시듯 살든 아무튼 평화롭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안식처로 기능하고 있는 곳이 시골인데. 그런데, 마루야마 겐지는 도시에서 산 사람에게도, 이미 귀촌한 사람에게도, 곧 돌아갈 생각을 하는 시골태생의 사람에게도 아니다! 아니다! 라고 대갈일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골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혼을 내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시골로 가서 살고 싶은 꿈.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인생 2막의 찬란한 시작이라는 입에 발린 겉치레 소리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기고, 혼마저 너덜너덜해진 시점에서 간신히 정년을 맞습니다. 인생의 전부였던, 가정보다 더 절실한 공간으로 여겼던 직장에서 완전히 내몰렸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세상은 마치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빛을 볼 것 같은, ‘인생 2막’이니 뭐니 떠들어댑니다. 새장이나 형무소에서 풀려난 것 같은 멋진 후반생이 열린 양 기대하게 합니다. 추상적이고 입에 발린 겉치레 소리입니다. 이런 치유와 구원의 색으로 치장된 눈속임에 혹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혹독한 현실에서 일껏 길러 왔을 엄한 척도를 단숨에 내던져 버립니다. 이런 생활은 참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바라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며 잠 못 이룹니다. 이런 막연한 고민 끝에 그야말로 무모하고 경솔한 판단을 내리고 맙니다. 그런 안이한 생각에서 출발한, 본전도 찾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인생 계획에 소중한 퇴직금이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통째로 쏟아 붓겠습니까.”
시작부터 사자후다. 거의 날려갈 것 같다. 위로와 힐링과 치유가 대세인 이즈음, 나이 들고 지치고 퇴직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단 ‘귀향’ ‘귀촌’을 헤엄도 못 치는 사람이 급류를 향해 건너려고 한다며 정신 차리라고 죽비로 등짝을 거듭거듭 내리친다.
마루야마 겐지, 1943년생. 현재 나이 74세. 1968년에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본인도 나가노 현 시골 아즈미노로 이주한 사람. 소설가이면서도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는 꼬장꼬장한 남성작가의 대명사. <소설가의 각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당신의 젊음을 죽이는 적들> <그렇지 않다면 저녁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다> 등을 쓴 사람. 견결하고 단호하고 진지한 걸로 이름난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에서도 그랬다. 소설가로 살려면 술이나 마시고 상상이나 해대며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잘난 척과 퇴폐적인 삶을 살아선 안 된다고 추상처럼 차갑게 호통 쳤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단 한순간의 허랑방탕함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므로 남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다. 이제 그 단호함과 투철함은 시골에 살려고 결심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귀촌귀농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시골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천국이 아니라고.
“퇴직을 기회로 이런저런 역겨움을 전부 뭉뚱그려 남김없이 퇴치해 버리자. 독립된 인간의 자리와 인간다운 진정한 삶을 되찾자는 초조함이 일순간 몰려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거의 발작적으로 시골에서의 슬로 라이프가 뇌리에 번뜩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심금을 울리고,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뇌를 완전히 지배합니다. 어차피 짧은 인생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지금부터는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거야 하는, 반쯤 자포자기한 듯한 혼잣말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어 갑니다. 그 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일리 있는 충고를 모두 흘려듣습니다.” 라며 기꺼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한 멋진 결단에 찬물을 끼얹겠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저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구가 계속 줄어들기만 하는 지역에 상황은 개의치 않고 이주자를 무리하게 끌어 들여 활성화를 꾀하려는 행정 관계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삐뚤어진 향토애에 얽매여 진실한 모습을 외면하는, 극히 시야가 좁은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고 덧붙이면서.
어떻게든 되는 시골생활은 없다고 해도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읽는 입맛이 쓰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도, 작가인 당신만큼 다 알고 있는 것인데도 새삼 듣고 보면 그의 어투가 하도 비관적이고 신랄해서 돌연 화가 솟구치기도 한다. 2장: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3장: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4장: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까지 읽노라면 나도 다 안다고! 소리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시골은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간 왕따 당한다,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더 벌어진다, 모두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모두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 까지 읽으면 바야흐로 마음이 차갑게 식어간다. 아, 이 작가, 협박도 고단수다.
사생활도 없고 까닥하다간 목표물이 되어 사기를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시골, 맑은 공기로 건강해질 수 있겠다싶지만 웬걸 외로움으로 알코올 중독이 될 수 있는 시골, 병원도 가깝지 않아 까딱하면 비명횡사할 수 있는 곳, 도시의 삶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편함의 연속인 땅. 그 시골은 우리가 생각하는 안주의 땅, 마지막 거처, 별천지, 지상 낙원 같은 이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그의 말을 다 읽고 나면 거꾸로 불끈 오기가 치솟는다. 누가 무릉도원을 찾아가겠다고 했는가. 누가 시골에 가서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했는가.
걱정이 지나치시네! 싶은 마음도 든다. 당신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반론을 펴고 싶기도 하다. 충고는 고마워요. 잘 들었어요. 그러나 너무 혼자만 안다고 가르치시진 마세요.
여자 둘이 시골에 살면 위험하지 않나요. 사실 위험한 곳이 어디 시골뿐이랴.
현실과 대치하며 진지하게 사는 법
이 책의 끝에 우리 마음을 다 읽은 듯 추천작가가 말한다. “어디에 살든 인간의 고민과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도시든 시골이든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새끼줄처럼 뒤엉켜 하나를 이룹니다. 풀어서 ‘좋은 면만 가로채기’란 불가능합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살고 있는가. 증오와 절망을 억누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함과 각오를 지니고 있는가. 사는 곳이 시골이든, 도시든, 시골생활을 꿈꾸고 있든 아니든 이 책이 던지는 물음 앞에서는 같은 처지입니다. 어디에서 살고자 하든 한결같이 진지하게 살고, 바깥 세계와 대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라고. 마루야마 겐지의 책은, 그 날카롭고 잔인한 충고의 말은 시골로 가기 전에 깊이 한번 받아들이고 귀촌의 결심을 했다면 다시 한 번 다스리면 된다.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는다. 유쾌하고 품 넓은 젊은 여자들의 귀촌이야기.
힘이 난다.
우리는 무작정 간다, 돈 없이 간다, 준비 없이 간다. 귀향.
그런데 마루야마 겐지의 저 진지하고 까탈 맞은 귀농 전 마음가짐에 대한 호통을 가볍게 물리친 시골이야기가 있다. 가볍고 사랑스러운 귀농귀촌 책이다. 제목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심지어 이 책은 만화책이다. 게다가 미혼의 젊은 두 여자와 유기묘 두 마리가 깡촌 시골에서 같이 사는 이야기다.
권경희와 임동순, 두 여자는 마루야마 겐지의 촘촘하고 무서운 충고와 사전준비의 말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알고도 일거에 모두 뒤집어버리는 식으로 귀향을 완성했다. 시골 살이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고, 돈도 없고, 살 집도 없고, 귀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자!고 마음먹은 지 한 달 만에 득달같이 그냥 동네 빈 집으로 살러 들어가는 패기를 보여준다. 한 장 씩 만화책을 넘기노라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 받은 서늘한 두통과 불편한 마음이, 불안이 일거에 화락 날아가 버린다. 이웃에 무서운 범죄자가 살고 있을 수 있으니 자는 방을 요새화하라는 마루야마의 충고도 좋지만, 덜덜 떨면서도 고양이 두 마리와 술 취한 남자를 대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더 실감나고 귀엽다. 못 먹을 풀과 먹을 풀을 헷갈리면서도 신나게 채취, 수렵해 요리를 해먹고 벌레가 나와 꺄악꺄악 대면서도 즐겁게 별을 바라보는 모습이 유쾌하기 짝이 없다. 덩달아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온 동네의 내남 없는 시선에 노출되어 있어도 종종 욕심 사나운 이들에게 내침을 당해도 상처받지 않고 좋은 쪽으로 돌려 생각하는 이 여자들은, 아, 도 닦나 보다 싶을 정도로 의연하다. 대책이 없어도 너무 없는 그녀들이 8개월 만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 빈 집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는 모습은 사실 남 일이어서 보기엔 즐거운데, 부모나 동네 어르신들이 보기엔 얼마나 한심하고 어이없을지 상상이 간다. 아무튼 그녀들은 세상의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 누구나 되풀이 하는 그 불안과 우유부단한 결정 번복 따위에 지지 않았다. 경험 없다는 이유로 위축되지도 않았다. 그것이 삶의 방식과 장소와 미래를 온통 바꿀 수 있는 장소의 이동, 직업의 이동, 귀촌, 귀농인데도 말이다.
도시에서의 비윤리적 소비의 강요가 싫고 쫓기고 힘겨운 날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귀농을 선택한 권경희와 공해와 스트레스를 견디며 일해도 남는 것은 적은 돈과 몸과 마음의 병일뿐인 도시 빈민의 삶을 그만두고 싶어 낙향했다는 임동순은 말한다.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심지어 시골에 와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졌다고. 세탁기를 쓰지 않고 손빨래를 하고, 아궁이에 불 때는 집을 찾아 버려진 나무로 땔감을 하고, 농약도 제초제도 쓰지 않고 손으로 논밭을 매는 청정한 삶의 방식을 재미있게 받아들였다고.
“지금 너희들이 지금 사는 것은 노인들이 사는 거다, 은퇴하고 나서 사는 거”라며 어서 도시로 올라와 결혼도 하고 멀쩡한 직장도 다니고 사람답게, 여자답게 살라는 부모의 말씀에도 당당하게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귀농도, 귀촌도 모든 사람에게 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기 나름이고 각자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움직일 때마다 돌다리도 두드리듯이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옳다는 사람도 있고, 충동적으로 확 저질러 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일 뿐, 홀로 옳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삶의 방식을 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까. 지금 40대, 50대, 아니 60대가 된 사람들이 귀농을, 귀촌을, 귀산촌을 꿈꾼다면 읽어볼 만한 책들은 쌓이고 쌓였다. 돈 버는 방법, 집 짓는 방법, 농사짓는 방법, 마을을 찾는 방법까지. 모든 자료들이 인터넷에, 각종 지자체 홈페이지에 그득하니, 찾으며 공부하면 된다. 그렇다 해도 이것저것 다 읽지 않고도 용감하고 무모하게 딱, 실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의 다른 방식과 거처를 옮기려는 모두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발길에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