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산, 북한산.

내 나라 땅이라, 내가 사는 곳이라 애정이 깊어진 탓이겠지만 산 좋아하는 이들은 종종 중국의 황산이나 네팔 히말라야만큼이나 북한산을 사랑한다. 비행기 타고 멀리 갔다 와도, 한 달 넘게 트레킹을 하고 와서도 잊지 못해 그리워 북한산을 찾아간다. 새삼 최고라고 탄복하면서. 이 산은 한국 아닌 어디에도 없는 산이라며. 북한산은 물도 맑고 나무도 많고 절도 많다. 깊은 골마다 물이 흘러 적시고 산 사이로 놓인 길은 수백 가지다. 높이는 너울너울 능선을 껴안고 산이 흘러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어디에서나 북한산으로 들어가는 길머리가 있다. 북한산 둘레길이 표지를 달고 동네마다 숲으로 오라고, 어서 오라고 말을 건다. 그 중에 하나. 평창동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일선사로 가는 길이 하나 열린다.

계곡을 따라 물을 적시며 걷다보면 대동문 못 미쳐 왼쪽으로 작은 절, 일선사가 있다. 스님은 한 분. 거기에 사는 개는 두 마리. 어느 날 숲 속에 들어온 개 한 마리를 들여 천수를 누리라고 천수라 이름지어준 장적스님이 계신다. 천수를 따라다니는 작은 개의 이름은 습득이. 엄마 따라 스님 따라 백만 가지 큰 도를 가만히 '습득'한다는 개다. 신이 아니면 옮길 수 없는 커다란 바위 아래 넓은 자리. 종종 스님과 절을 찾은 이들이 서울을 내려다보며 명상 아닌 명상을 하는 그곳에 오르려면 천수와 습득이가 먼저 오른다. 천진과 순수는 이런 것이라는 듯 오르자마자 두 마리의 개는 소리 없이 신나서 놀기 시작한다.

 

 

북한산 어디에서나 보이는 서울의 다닥다닥 집들. 저 많은 집들 속, 어딘가에 우리가 몸을 누이고 밥을 먹는 집들이 있다.

싸우고 울고 고민하고 웃는 일들이 가득한 저 집들 속. 어제 밤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다 놀던 곳.

저마다의 사연들로 깨어나고 저무는 사람들이 사는 풍경. 이렇게 내려다보면 너무나 작고 엄청나게 많아서 내 작은 슬픔이 무슨 소용이랴 싶은 엄청난 풍경. 발아래 저 사바세계를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마도 천수와 습득이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는, 알 필요도 없는.

 

 

천수야. 습득아.

그저 핥고 깨물고 뒤엉켜 웃는 너희들이 도가 튼 현자일지도 모르겠다. 매일의 고민으로 뜨거워진 머리를 감싸며 개들을 불러본다.

"이리 와 봐. 같이 놀자.!"

먹고 자고 노는 것밖에 아무 걱정 없는 개들은, 그러나 불러도 오지 않는다. 아랑곳 하지 않는다. 짖지도 않고 소리도 없다.

그냥 보라고. 그냥 두라고. 서울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 사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개 두 마리로구나.

스님보다도 더 큰 도를 얻은 것 같다.

 

 

오르느라 풀린 다리에 한 발 한 발 힘을 주며 내려오다 큰 바위에 앉으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숲 사이에 작은 절이 보인다.

밤이면 작은 불빛으로만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릴뿐, 조용하기 그지없는 작은 절 일선사. 북한산 가장 높은 봉우리 보현봉 아래, 알리지도 감추지도 않고 그저 여여如如한 조그만 절, 누군가에겐 불빛만으로 따스한 일선사가 있다.

 

 

 

산 속에서 사는 것은 따로 있다.

우리는 스님처럼 천수와 습득이처럼 산에 살지 않는다. 마을로 내려와 집 속에 산다.

보현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집 들 사이로 거리로 내려오는 길.

인간이 옮기지 않은, 사람이 짓지 않은 천혜의 바위와 나무 등걸에 앉아 쉰다.

사방으로 집들이 나타나고 사람살이의 풍경에 눈높이가 맞춰진다. 마을이 보여도 그래도 아직은, 산 속이다.

예기치 않은 빛들이 빛나는 강으로 하늘로 마지막 눈길을 주고 심호흡을 하고 나야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어느 날, 어느 밤에 천수와 습득이가 생각이 나면 북한산 둘레길 수십 개 길속으로 쑥 들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