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 화가, 자기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
영화 <내 사랑>의 원제는 그냥 <모디Maudie>. 영화 속 주인공 모드의 애칭이다. 모디는 실제 캐나다 최고의 나이브 화가였단다. 나이브 화가?! 통칭 나이브 아트(Naive Art)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화풍을 나누는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세계의 주변을, 풍경을, 내면을 그리는 예술을 말한다(고 한다). 소박파, 일요화가 등으로도 불리는 일종의 아마추어 화가. 천재 끼로 특출하지 않은, 대작을 그리지 못한, 커다란 캔버스를 사용하지 않은, 거대한 이야기를 담지 않은, 예술가로 대접받지 못한, 아주 유명하지 않은. 새, 나무, 고양이, 숲, 하늘, 개, 닭, 구름 나비 같은 주변의 것들을 조그맣게 취미삼아 그리는 화가를 일러 나이브 화가라 한단다.
보다시피 모드가 처음 그림을 그린 곳은, 아니 처음 색을 칠한 곳은 낡은 갈색 찬장이고, 처음 사용한 물감은 페인트다. 쓰다 남은 하늘 색 페인트로 잿빛으로 죽은 공간과 사물에 색을 입히는 것이 그녀의 첫 작업이었다. 서랍장과 찬장에, 계단참에, 창틀에, 창문에, 그릇에, 의자와 벽에. 두세 송이의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서너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조그만 물고기가 매달린 창은, 정말 마법처럼 신기하게 변해간다. 그렇게 작은 집이 갑자기 구석구석 다 그림 그릴 공간이 수두룩한 장소가 된다. 생각해 보면 모드뿐이겠는가. 지금 내 주변에도 수많은 나이브 화가가 있다. 페이스북만 열어도 진정 전문화가 뺨칠 정도로 자기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있다. 수선화를, 도시의 한 풍경을, 꽃과 고양이를, 문인화를 매일 그려 올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모드가 천천히 작은 집을 그림으로 채우는 시간처럼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꽃을 그리는 손, 고양이를 만지는 시간, 지붕을 그리는 옥상의 노을빛까지 상상이 된다. 진심으로 좋아서‘좋아요’를 누르게 된다.
영화 <내 사랑>에도 모드의 그림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 에버렛보다 먼저 도시에서 온 여자, 산드라(캐리 미쳇)는 생선을 사러 왔다가 작은 집을 가득 채운 모드의 그림을 보게 된다.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Show me, How do you see the world).”산드라는 합판에, 벽에, 작은 종이에 그려낸 모드의 그림에 탄복을 거듭하고 찬사를 보내면서 모드의 자존감을 드높여준다.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세요! 내게 그림을 파세요! 산드라의 심미안에 힘입어 모드는 그림으로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리면서 행복하게 그림에 몰두해간다.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까지 자기 인생을 그려나간다.
영화 제목이 <내 사랑>인 이유, 로맨스영화가 된 까닭
사랑받고 살았다, 는 그녀의 마지막 말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에버렛 루이스는 말한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보다도 아래로 서열을 매기고 함부로 모욕하고 때리던 에버렛은 모드로 인해 변화한다. 그는 천천히 그녀로 인해 생기를 찾아가는 집을, 정갈하고 예뻐지는 살림살이를 사랑했다. 그녀의 서럽던 지난날을 받아들였다.
불편하고 아픈 그녀의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낳자마자 빼앗겼다는 모드의 딸을 찾아서 행복한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즈음에서야 왜 굳이 못된 남자의 가정부로 들어가 가축만도 못한 존재라는 모멸을 받으며 살아가려는 걸까. 왜 굳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따귀를 후려치는 남자 옆에서 살려는 걸까. 왜 저렇게 자존감을 훼손해버리는 남자와 한 집에 있는 걸까, 모드가 답답해 안타깝던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내 집이야. 내 벽이야. 내 의자야. 모드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경계하던 에버렛은 같이 살면서, 모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드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곁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성실한 머슴, 스폰서가 되어준다. 합판을 잘라주고 종이를 사다주고 의자를 받쳐주고 가정부인 모드가 해야 할 집안일도 한다. 비척비척 흔들리며 걷는 여자를, 나 몰라라 성큼성큼 앞서 걷던 그는 이제 손수레에 태워서 달려간다. 마주보고 환하게 웃고 업고 가다가 보폭을 맞춰간다. 어쩌면 처음 만물상회에서 만났을 때 모드는 에버렛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만 같다.
저 사람이야, 내가 사랑할 사람은! 단숨에 결정했을 것만 같다. 그 남자가 자기 인생의 전부인 집 전체를 그녀의 캔버스로 자, 맘껏 그려, 내어줬을 때, 그 온 집의 공간에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을 것이다. 미성숙한 한 남자가 제 소유로 악착스럽게 끌어안고 있던 집을 내어주었을 때 모드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말로 “나는 사랑받았어요.”라는 말을 남겼을 것이다.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바로 저기에...”라고 모드가 말할 때, 그 집자체가 이미 에버렛일 것이다. 잔혹동화나 스릴러 영화처럼 스산하고 공포스럽던 영화의 시작은 그래서 마침내 로맨스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이삼십 대의 젊은 친구들이 영화 내내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것이다. 뺨을 맞고도 같이 살기를 선택한 모드의 간절한 삶이 진정 사랑받은 기억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