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까지 가리라

 


이윤재ㅣ50+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도대체 어디든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있으니 원”

아내는 오늘도 나에게 점심을 차려주면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두런거렸습니다. 나는 정년퇴직을 한지 10달이 다 되어가지만 막상 갈 곳이 없어 집에서만 생활을 합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삼시세끼 꼬박 밥을 차려줘야 하니 화도 날만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갈 곳도 없는데 무작정 밖으로 나가 헤맬 수도 없는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인생 2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40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였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미술에서부터 음악은 물론 글쓰기까지 다방면에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좀 있잖아.’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 글쓰기 지도를 해 대전시 글짓기 대회에 수없이 참여했습니다. 내가 직접 글을 써보지는 않았어도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첨삭하여 지도해 준 경험이 수십년입니다. 그러니 글짓기 지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 글을 써보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무작정 대전시 문인협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전에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며 아이들을 지도했던 선생님들이 다 몰려있었습니다.

“이 선생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지도했던 평생 경험을 발휘하여 이번에는 직접 글을 써 발표를 해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문인협회 사무실로 거의 출근을 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고장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글로 써 발표하는 기회가 있는데 한 번 해보시겠어요?”

정년퇴직을 해 일거리가 없어 무료하게 지내던 나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대전시내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 글로 옮겼습니다. 문장 하나를 쓰면서도 적당하고 아름다운 말을 찾느라 여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글을 다 써놓고도 수없이 읽어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동료들 이 내 글을 읽어보고 잘 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는 최종적으로 글을 다듬어 서울의 주최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얼마 후 전국에서 20명을 뽑아 결선으로 올렸는데 그 중 나도 뽑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만 잘해서 10등 안에만 들면 됩니다.


한 달 후 서울에서 낭독대회가 열렸습니다. 평생 동안 수백, 수천의 애들과 학부모 앞에 서서 운동회도 지휘해봤던 내가 몇 안 되는 심사위원 앞에 선다니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대전시 대표로 출전을 했는데 망신을 당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차분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아주 잘했어요.”

 

문학 공감 낭독 경연대회장 전경

 

 

문학 공감 경연대회에서 발표하는 모습

 

 

공감 경연대회에서 받은 상장

 

 


서울 문학의 집까지 따라온 아내가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결과를 발표해 수상한 장려상이 좀 실망스러웠지만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이제는 갈 곳이 없어 방안에서 뒹굴지 말고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동료들과 어울려 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하면서 나를 가꾸고 있습니다. 또 남의 좋은 글을 읽고 내 글을 쓰고 다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 선생, 옛날에 클라리넷 좀 불었었지? 우리가 며칠 후 산사 음악회를 해야 하는데 회원 한 사람이 부족한데 좀 도와줄 수 있어?”

 

현직에서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전화를 해 죽는 소리를 하며 한번만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악기의 연주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더구나 내가 클라리넷을 불지 않은 시간이 10년도 넘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연주가 어렵겠다고 빼자 그는 막무가내로 자기들 연습실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그날 저녁 그들의 연습실을 방문하여 음악으로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놓았던 악기를 들고 연주를 하자니 독보의 힘도 떨어지고 손가락은 제 맘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번 도와준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음악회를 망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남은기간 열심히 연습해 그들과 화음을 맞춰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산사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모습

 

 

“이 선생, 고마워. 그런데 이참에 우리 음악회원에 가입해 같이 활동하면 어떻겠어?”

옛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나는 선배 따라 음악회에 가입해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시도 집에 안 붙어 있고 돌아만 다니니 원 참.”


이제는 아내가 도리어 나를 보고 역마살이 끼었다고 나무랍니다. 그래도 나는 늘그막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그것도 우리의 심성을 맑게 가꿀 수 있는 문학과 음악활동을 하니 말입니다. 내 나이 이제 60이 한참 넘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해 여든까지는 문학과 음악활동을 해야겠다는 야심에 차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의 문화,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례를 발굴하고 50+세대의 활동이야기를 알리고자 ‘2016년 50+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수상작 50+스토리를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