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구
박찬홍ㅣ50+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평일이든 주말이든 아버지는 잠시라도 시간을 만들어 대학로에 위치한 전수관에 가십니다. 이 전수관은 풍물굿패 신바람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평생의 꿈이셨던 풍물을 배우고, 가르치고, 함께 하고 계십니다.
나의 아버지는 미싱사입니다. 서울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아버지의 회사는 지하실에 있습니다. 삼형제를 키우시기 위해 평생을 지하실 공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늙어가는 작은 미싱기 하나를 지금까지 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몰랐습니다. 왜 우리 아버지는 많고 많은 직업중에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미싱사를 하시는지, 때로는 아버지의 직업이 싫어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자식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낡고 오래된 미싱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조금 느리고, 퍽퍽한 느낌의 노루발은 아버지의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손을 닮았습니다.
페인트도 벗겨지고, 오래된 기계의 냄새가 풍기는 미싱기의 몸체는 힘든 세월에 지친 아버지의 몸과 닮았으며, 미싱기 전체와 작업물품을 받쳐 주는 미싱기의 작업 받침대는 한 가정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 아버지의 작은 발과 닮았습니다.
자식들이 성장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갈수록 아버지의 손과 발은 더욱 바빴습니다. 힘들고, 지치는 날들이 수없이 많았을 텐데, 어찌 그 고통을 다 인내하고, 지금껏 건강하신 모습으로 자식들을 위해 삶을 태워 나가시는 모습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죄송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 미싱기를 한켠에 고이 밀어 두셔도 되시는 연세에 도달 하셨습니다. 아니 이미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평생의 반려 자인 미싱기를 저버리지 못하시는 것은 아마도 당신과 함께해온 지난 삶속에서 당신만의 소중한 또 다른 자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미싱기를 통해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장가를 보내면서 가장 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하셨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빠! 아빠 꿈은 무엇이에요? 운동선수, 판사, 검사, 선생님??”
큰 아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아버지는 빙긋 웃기만 하셨습니다.
“아빠도 꿈이 많지, 그런데 지금은 바빠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 고 있다. 이다음에 너희들 다 크면 아빠도 아빠의 꿈을 실현해 봐야겠구나!”
이렇게 짧은 답변 속에 결국 아버지의 꿈은 무엇 이였는지 모르 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미싱기 하나와 40년 이상을 함께 하면서 당신의 꿈은 잠시 접어 당신 가슴에 잠시 숨겨 두셨습니다.
이렇게 오로지 가정을 위해 평생을 일만 하셨던 아버지께서 몇년 전부터 생활의 패턴이 바뀌기 시작하셨습니다.
일을 조금씩 줄이시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집안에는 장구, 꽹과리 등의 풍물 악기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알아 보셨는지 대학로에 위치한 한 풍물패 전수관을 찾아 가셔서 풍물을 배우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매일 같이 악기를 배우고, 당신보다 40년이나 어린 사람들과도 어울러져 풍물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배우고, 얼마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실 수 있을 정도가 되시더니 나중에는 강습도 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참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가요.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와 오랜만에 약주를 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꿈이 풍물 하시는 것이였나요?”
차가운 소주 한 잔을 자연스럽게 드신 아버지께서 운을 떼셨습니다.
“그래… 꿈. 나의 꿈 이였지… 애비는 박병천, 조공례 씨라고 들어 보았니?”
“아뇨 잘 모르는데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구요.”
“박병천 어르신은 우리와 친인척이셨던 분인데 우리와 같은 진도 분이시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셨던 국악인이시다. 또 조공례 어르신은 내가 어릴 적에 고모라고 부르며 나를 아껴 주셨던 분인데 그 분도 유명한 소리꾼이셨다. 그 분들의 소리를 듣고, 가까이 하면서 나도 그 분들처럼 멋진 소리꾼이 되고 싶었단다. 하지만 형편과 상황이 되지 않아 이렇게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국악이라는 주제로 한 데 뭉치고, 노력하며 웃음을 찾을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아빠는 너무나 행복하구나.”
아버지의 꿈은 소리꾼이 되고 싶으셨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단어 소리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꿈이였고, 갈망의 단어였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주말이면 항상 전수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십니다. 때로는 손녀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시고는 합니다. 그러다 함께 국악기를 배우시는 젊은 친구들과 소주 한잔도 하시고는 합니다.
또 대학로나 광화문 광장 기타 기관에서 공연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 일에 아버지는 너무나 정열적으로 매진하십니다. 바쁜 날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연습을 하시고,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면 우리 집 뒷산인 백련산에 올라 장구 연습을 하고는 하십니다.
아버지는 풍물패에서 장구를 맡아 하시는데, 자식인 내가 봐도 연주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지십니다. 항상 아버지 곁에는 작고, 오래된 미싱기만 있었는데 어느덧 그 자리에 장구라는 작은 악기가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장구를 소중히 여기시고, 꼼꼼히 관리를 하시면서 정성을 기울이십니다. 무엇보다 좋은 소리를 위해 많은 연습을 하시고, 때로는 명인이 만드는 장구를 사고 싶으셔서 지방에도 며칠씩 다녀오시고는 하십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이제야 자신의 삶과 꿈을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많은 돈을 주는 일도 아닌 일이지만 그 배움과 열정을 통해 아버지는 젊은 시절 숨겨두었던 자신의 꿈을 되찾고 계시는 것이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공장으로 가셔서 늦은 시간까 지 열심히 일을 하시고, 집에서나 가끔 약주 한잔 하시던 아버지의 소박한 모습이 이제는 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모습으로 바뀌신 것이 내심 기쁘고,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인생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 이라는 말이 있듯이 꿈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갈라진 손과 손바닥 먼지가 많은 작업환경으로 인해 약해진 기관지,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기에 허리와 무릎 등 아버지의 몸은 많이 상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갈라진 손으로 채를 잡고, 약한 기관지에 힘을 주어 멋들어진 추임새를 보여 주시고, 아픈 허리와 무릎을 일으켜 세워 정직한 자세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아버지의 장구 연주 모습을 보면 이미 아버지의 꿈은 다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의 장구 소리처럼 아버지의 꿈과 다가오는 미래에 지금 보다 더 멋지고, 울림을 주는 장구 소리의 명인이 되어 있으시길 기원해 봅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의 문화,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례를 발굴하고 50+세대의 활동이야기를 알리고자 ‘2016년 50+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수상작 50+스토리를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