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치링, 치리링, 풍경소리가 요란합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나 어울림직한 풍경을 두고만 보다가 베란다 창 한 쪽에 매달았더니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춤을 추며 내는 소리입니다. 춥다고 혹은 덥다고 숨어드는 바람이 들키는 소리지요. 창을 조금 닫으며 커피 보다 꽃잎 둥둥 띄운 차를 마시는 게 어울리겠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휴식에 관한 다큐를 봅니다. 네모난 TV속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어느 날 보니 나는 어디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맞은편에 앉은 다른 사람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휴식을 원하는 이유도, 연령대도 다양합니다. 20대 청년부터 50+중장년까지 달려온 날에 대한 위로가 필요한, 할 말 많은 어른들이 모여 대화를 합니다. 남에게 듣고 싶은 말도 비슷비슷합니다.
“너 정도면 참 잘 살았다.”
“너 참 수고했다.”
“너를 믿어! 네가 혹시 뭔가 잘못했더라도 나만큼은 곁에서 같이 돌을 맞아 줄게.”
검게 일렁이는 커피를 홀짝이며 무심히 보고 있던 시선이 자꾸만 화면 속으로 들어갑니다. 전쟁 같은 직장인의 삶이라고 외치면서도 그 곳에 오래 머무르고자 노력하던 사람들. 휴식이 절실한데 외면하고 달리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하는 일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휴식을 미루고 일에 매달려 달려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말에 침묵이 흐릅니다. 백 마디 말 보다 호소력 있는 긍정의 침묵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에 치이고 쫒기지 않는, 필요할 때 휴식이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한 광고회사 직원은 매 년 자기를 입증해야하는 부담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20년 직장생활동안 휴가를 3일 이상 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고 다들 자신처럼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답니다. 일이 많다는 것이 자랑이라고 생각했다는군요.
다른 한 사람이 말합니다.
“회사를 나오면 업무스위치를 꺼요.”
“그게 맘대로 되나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묻습니다. 두 사람을 보니 연령도 표정도 차이가 납니다. 회사 문을 나서면 업무스위치를 끌 수 있다는 사람과 휴일에도 업무스위치를 끌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두 사람 모두 휴식이 필요하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와 현실에 대한 불안함이 퇴근 후에도 자꾸 앞으로 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난 왜 바쁠까?”하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는 사람들이 네모난 화면에 갇혀 휴식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일과 휴식을 다 가질 수 없으니 고민은 고민입니다. 휴식이 필요한데 불안함에 일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20대 청춘은 살아보지 못 한 미래가 불안하고 50+를 살아본 중년은 살아보니 더 불안합니다. 누가 이런 경쟁을 만들었을까요.
휴가를 다 쓰면 뭔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 조직 내에서 뭔가 겉도는 느낌. 지나치게 진지한 것. 과도한 경쟁.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생각들이 넓게 퍼지다 다시 좁혀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경쟁을 만든 후 우리는 왜 경쟁에서 살아야 할까 묻는 게 아닐까 하고요.
화면이 바뀝니다. 휴식을 무능력 혹은 게으름으로 몰아가는, 일 권장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휴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방법으로 휴식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내 휴식은 뭐지? 생각하다가 즐거워집니다. 감사하게도 글 쓰는 이 시간이 내겐 휴식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편하게 가라앉는 걸 느낍니다. 이 시간이 좋습니다. 아쉬운 점은 쓰는 동안 시간이 번개처럼 지나버려 나머지 일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죠. 여유가 되면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틀어박혀 마음이 동할 때까지 밤낮없이 써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걷기도 좋아합니다. 걷는 동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순간순간 내 생각을 비우는 것. 마음을 모두 비우고 오롯이 쉬면서 “아! 참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게 바로 내게 휴식입니다. 어쩌면 딱 그만큼, 휴식이 될 만큼의 걷기와 글쓰기를 해서 가능한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네모난 화면에서 명상가들의 조언이 시작됩니다.
“인생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사막에서 목말라 죽는 대신 물 한 컵과 1억 원을 바꾸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것 같은 마음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잠시 멈추고 들으세요.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둘러보세요. 이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순간순간 삶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그러지 않으면 매 번 기차를 놓치고 후회합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적어 둡니다. 몰랐던 말도 아닙니다. 여러 번 읽은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받아 적습니다. 되새김질 하고 싶은 까닭입니다.
휴식을 따라가다 보니 홀짝이던 커피는 바닥이 보인지 오랩니다. 시간도 꽤 지났습니다. 이제부터 내면의 평화를 위해 잠시 쓰기를 멈추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야겠습니다. 궁금해집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인가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분한 삶의 휴식을 주는 그런 사람인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