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님의 특강과 본격적인 문학관의 곳곳을 탐방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문학관 관계자로부터 간단한 청소 요령을 듣자마자 서둘러 일을 시작해야 했다. 우리 일행은 조별로 일감을 분담하여 용도에 맞는 청소도구와 비품, 마스크, 장갑 등을 분배받았다.

 

생전에 시, 서, 화를 두루 즐기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셨던 조병화 시인의 창작 시집 60여 권과 수필집, 화집 등 160여 권의 서적을 남겼다. 그림, 글씨, 사진 자료와 같은 소장 자료와 다양한 유품(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와 파이프, 우산, 붓, 벼루, 펜, 여행소품 등)이 서가에 빼곡한 책들과 함께 집필실, 화실과 서재 등 전 공간 다채로운 소장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편운재 유품실

 

문학관내 전시실, 집필실, 침실, 부엌, 화장실, 욕실을 포함한 모든 건물의 구석구석과 안팎의 벽과 유리창 먼지와 찌든 때를 떨어내고, 물걸레질과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고 바닥을 쓸고 닦고 책장과 집안 가구들, 화집, 유화, 유품과 소장품도 같은 요령으로 물수건과 마른 수건으로 닦아 제자리에 위치해 놓아야 한다. 또한 동산 밖 부친의 묘소와 세분이(어머니, 부인, 조병화 시인) 나란히 안장된 묘소 주변의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주워 담아 분류하고 건물 벽 유리창에 물을 뿌려 물걸레로 닦아낸 후 밀대를 사용하여 얼룩지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편운재 복도

 

이러한 봉사활동이 없다면 문학관의 관리는 고스란히 유족의 몫이다. 이전의 재단 시절에는 지자체로부터 인력지원도 받았는데 법인화된 이후는 문학관에 관리에 어려움이 많은 듯하였다. 상주 작가와 전문학예사는 본연의 업무인 조병화 시인의 전시기획업무와 자료 발굴 및 수집 업무 이외에 틈틈이 유족과 함께 생활환경 청결 업무(청소)까지 도맡아 하는 듯하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곳에 봉사활동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번 우리의 봉사활동이 빛을 발한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하였다.

 

편운동산 럭비공 석상

 

봉사 후 특강과 탐방 때 시인의 며느님으로부터 여담으로 어머니 진종여사의 묘가 부친의 묘소에 함께 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들었다.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 진종여사는 부친 조두원의 삼취(三娶)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진종여사는 사후에 남편의 묘 터에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시, 서, 화 이외에 각국의 여행하기를 즐겼고 사진에도 취미가 있었다. 청년 시절에는 럭비 선수로 활약하였으며, 술과 차, 담배를 무척 즐겼다. 그는 최소한의 물질을 소비하여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 낭만적인 로맨티스트였지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두철미하였다. 해외여행에도 딱 2벌씩의 속옷과 양말, 셔츠와 바지로 최소화한 짐으로 매일 현지에서 직접 빨아서 갈아입었다고 한다.

 

평소에 몸을 쓸 일도 없거니와 귀하디귀하게만 자라난 요즈음의 대학생들에게 이번 봉사활동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궁금하였다. 봉사활동을 통하여 다재다능하였던 시인의 창작열과 평생 어머님의 가르침을 철칙으로 지켜온 점과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효심에 감동을 받았으며 자신들의 인생의 롤모델로 앞으로 분발하겠다는 다짐까지 하다니 기특하고 감사하다. 편운재에 벽에 새겨진 시인의 어머님의 평생의 생활철학이며 큰 가르침인 ‘살은 죽으면 썩는다’라는 글귀를 청결봉사에 임한 그들도 접했으리라.

 

 

청소하면서 접한 편운재 복도 벽과 서재에 걸린 시인의 휘호가 자꾸만 떠오르며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怒山無言(노산무언) 성난 산은 말이 없다

 

祈一如(기일여) 항상 같기를 기도하다

 

시인은 평생 검소하고 근면하셨던 어머님의 가르침 ‘항상 봄처럼 부지런하라’는 말씀을 가훈으로 벽에 걸어 놓고 후손에게도 철칙으로 삼도록 하였다. 청소하는 틈틈이 우리는 다양한 공간에 전시되고 보존된 시인이 남긴 유품 시집과 소장품으로 그의 삶의 궤적과 창작 세계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詩와)의 만남>

해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의 생애>

럭비는 나의 청춘

시는 나의 철학

그림은 나의 위한

어머니는 나의 고향,

나의 종교

나의 어머니에게 태어나와

어머니로 돌아가는 그 길을 한결같이 살아 왔을 뿐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안성 조병화 문학관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니의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평생 근면하고 열심히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간 조병화 시인의 ‘아플수록 외로울수록 그리울수록 쓸쓸할수록 시를 쓴다’던 시인의 삶의 흔적과 예술혼을 흠뻑 만끽한 잊을 수 없는 어느 무더운 여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