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마음에 머물곤 합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예전에는 관심이 없었겠지요. 마시는 차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홍대 근처에 아주 예쁜 찻집이 있다고 대전에서 물어물어 찾아온 친구의 말이 신기했던 게 불과 수 년 전인데 언제부턴가 가끔 차를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홍대 찻집 입구 친구와 마신 홍차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 안 계단을 몇 개 올라가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찻집에 앉아 어떤 차를 고를까 메뉴판을 보면서 흥분하던 친구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맛을 보기 위해 서로 다른 홍차를 주문했습니다. 붉은 빛의 웨딩임페리얼과 노란빛이 더 감도는 사쿠란보를 번갈아가며 한 모금 한 모금 아껴 마셨지요. 이제 막 차를 배우고 있다면서 세팅하는 법, 찻물 거르는 법 등등. 배울수록 어렵다고 말할 때는 그녀의 양 볼이 발그레 상기되었습니다. 마치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습니다. 하긴, 그러니까 굳이 집에서 먼 이곳까지 찾아왔겠지요.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배울수록 어려운 게 어디 차뿐일까."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익힌 대부분의 것들은 배울수록 어려웠습니다.
그녀처럼 차를 배운 건 아니지만 검은 커피의 유혹도 마다하고 은근하고 담백하게 당기는 진한 차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마음이 덤덤해 지듯이 몸에도 찻물처럼 담백한 맛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나이에 생각이 멈추니 서부캠퍼스에서 열린 커뮤니티 박람회를 찾은 청년들이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부모세대가 모여 공연을 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고 하더군요. 물론 좋은 의미였습니다. 청년들이 생각하던 중년의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우연히 읽었던 청년 세대가 풍자하는 아줌마,아저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줌마들은 전철을 타면 빈 의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먼 거리에 빈 의자가 보이면 가방을 던져 자리를 확보한다든가 주말이면 배낭을 멘 아저씨들이 전철에서 막걸리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큰소리로 이야기 한다는 등 뭔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기적이고 남의 눈치 아랑곳없는 중년의 모습 말입니다.
신중년 50플러스 세대의 사고는 변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는 여전히 더디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이 나이는 이렇고 저 나이는 저렇고 모든 사고를 하나의 틀 안에 넣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을 텐데요. 50플러스 캠퍼스를 드나드는 우리가 선배시민으로서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이 주관하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후원한 정혜신, 이명수 부부의 특강이 워크숍 형태로 있었습니다. 서부캠퍼스 4층 강당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요. 다행히 여유 있게 도착해서 부부의 시선이 닿는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정혜신,이명수 부부의 친필서명
'거리의 치유자'로 유명한 정혜신씨는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봐야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 속에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상대가 왜 그럴까 궁금하면 하나의 모습으로 짐작하지 말고 지금 마음이 어떤지 진심으로 물어보라는 거예요. 강연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고사하고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마저 제대로 아는 게 맞는지 궁금해집니다.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이 사람을 슬프게도 기쁘게도 만들고 인생을 바꾸기도 하니 잘 다독이며 살아야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요.
정혜신씨가 남편에게 영감을 얻어 쓴 책 [당신이 옳다] 서두에 다툼으로 혼나고 온 초등학생이 엄마가 역성 들어줄 것을 기대하며 내용을 말했는데 엄마가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하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 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 ‘당신이 옳다’ 중에서
엄마로서 반성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나도 아이에게 그런 적이 있습니다. 엄마라면 대부분 그럴 겁니다. 뒤늦게 아이의 입장을 돌아봅니다. 엄마는 내 편이라고 믿었을 저 마음이 마치 내 아이의 마음 같아서 아이의 슬픔이 오롯이 느껴졌습니다. 언제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보게 될까요.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는 생각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소소한 다툼의 원인도 대개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한 감정이 커지는 경우가 많죠.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는데 어떤 이유로 말하지 않은 마음을 서로 알아주기를 바랐을까요?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일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요. 새삼 신기합니다.
확실히 배울수록 어려운 것은 차뿐만이 아니었네요. 내일이면 다시 어디에 끌릴지 내 마음 하나 알기가 어렵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등대 삼아 잘 익어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 것을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너무 가까워서 상처를 받는 고슴도치가 되지 않도록 가끔 내 마음 머무는 곳을 묻고 더 자주 네 마음은 어떠냐고 물어봐야겠습니다. 아..잊을 뻔 했네요. 당신은 어때요?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