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얼굴

 

책을 내려고 프로필 사진을 찾으니 막상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다.

사진은 넘치지만 이것이 나라고 얼굴을 책에 싣기에는 어쩐지 민망하다.

 

해가 바뀔수록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같이 표정이 엉거주춤하다.

날을 잡아 마음먹고 찍은 사진도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일부러 사진관에 가서 찍자니 더 어색할 것 같아 망설여진다.

 

블로그에서 프로필 사진을 찾다가 어린 시절의 흑백사진첩이 눈에 들어왔다.

내 사진은 거의 사진 찍기를 즐기던 아버지의 작품들로 그 때의 모습은 하나같이 구김살 없고 즐거워 보인다.

 

 

그만큼 아버지는 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은 카메라의 눈 뒤에서 찍는 사람과의 교감으로 만들어진다.

누군가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신감 있고 당당할 수밖에 없다.

 

어릴 적 사진과 함께 20대의 외할머니 사진과 어머니의 유년기 사진도 발견을 했는데 삼 대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인상과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얼굴뿐 아니라 성격과 삶에 대한 대처방식이 비슷하기에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노인들은 기회만 되면 장수사진(영정사진)을 남기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갈 한 가지가 얼굴이라고 하는 이유는 얼굴이 얼과 넋을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정사진이 대체로 어르신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비장한데 그것은 삶의 무게가 그 만큼 묵직한 까닭이다.

장수사진 찍어드리기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은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많이 배운다고 했다.

 

우리말로 얼굴책이라고 부르는 페이스북은 전세계에 15억 9천만 명, 우리나라에만 1600만 명(2015년 12월)이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얼굴책을 통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매일 소통하면서 실제로 만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모임에 갔다가 유난히 친숙하게 느껴져서 먼저 인사를 하고 나면 온라인 친구인 경우가 있어서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흥미로운 것은 태어날 때부터 따로 살던 일란성 쌍둥이가 똑같은 얼굴, 비슷한 옷차림, 닮은 배우자와 살다가 페이스북의 사진을 보고 찾았다거나,

남인데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만나 나란히 사진을 올리는 경우이다.

 

혹시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을까?

남남인데도 하늘 아래 나와 얼굴과 마음이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희귀하면서 신비로운 일이다.

 

무심코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아닌 듯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우연히 찍힌 사진을 보며 놀라지 않으려면 안과 밖의 내가 화목하게 지내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의 역할을 평생 가면처럼 쓰고 사는 사람은 통합된 자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

내가 본래의 얼굴과 목소리로 자아실현의 길을 가는 것은 가능한 지, 언제부터 겉과 속이 달라도 아닌 척 하며 살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교육받으러 온 젊은 엄마의 아기를 돌봐준 적이 있다.

태어난 지 칠 개월 된 아기를 안아주고 먹이고 재우며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 티 하나 없이 보드라운 볼과 입술이 어찌나 고운지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기는 옹알이 외에는 아직 말 한 마디 못하지만 엄마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운다.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더없이 평화롭다.

엄마가 편안한 만큼 아기의 표정도 잔잔하다.

서로의 얼굴에 반사된 빛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끼어들 수 없다.

 

출퇴근을 하며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어있다.

그들은 언제 행복한 미소를 지을까.

더러 젊은 연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가 않다.

 

 

내 얼굴은 언제 누구를 바라볼 때 가장 환해지는지, 평생 훼손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싶다.

내가 꿈꾸는 노후의 얼굴은 유쾌하고 귀여운 호호할머니, 거울을 바라보니 비껴드는 햇살에 내 얼굴도 서서히 익어간다.

특별히 웃을 이유는 없지만 입술을 끌어당겨 싱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