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한 바퀴 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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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골목길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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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2번 출구를 나와 자하문로 대로를 따라 효자동 방향으로 직진,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펼쳐지던 정겨운 골목길 풍경, 이색적인 소품 가게와 소소한 볼거리 가득한 서촌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서촌은 경복궁과 서울의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하나인 인왕산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경복궁 서쪽에 자리하였다 하여 ‘서촌(西村)’으로 불립니다.
청운동, 효자동, 통인동, 사직동 일대가 해당되며 이 동네는 한국 근세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권율 장군 집터, 필운대, 조선시대 선비들의 활쏘기 수련장 백호정, 구본웅 화백, 이상범 화백 고택,
이중섭 화가 집터, 박노수 화백 미술관,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윤동주 문학관, 천재 시인 이상의 집,
소설가 박완서가 다녔던 매동초등학교, 수성동 계곡 등 동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촌은 조선 전·중기 사상과 문학, 예술의 중심지였고 조선 후기 중인들의 문화·예술의 거점지역이었고,
근대에는 문학가, 음악가, 화가들의 활동 근거지였습니다.
너는 오락이 땡긴다. '테트리스' '보글보글' '스트리트 파이터' 등 추억의 게임 포스터
어릴 적 동네오락실을 되살린 옥인오락실 옛날 모습의 오락실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오락실로
데이트코스로 한번 다녀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촌 골목골목에서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풍경과 보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60년간 한자리를 지켰던 대오서점이 있던 자리입니다.
대오서점 근방에는 한옥이 많았고,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대오서점이 없어지고 대오서점 자리였다는 표시들만 보입니다.
전에 찍어둔 대오서점 사진이 있어 첨부합니다.
북카페로 변한 대오서점 앞에 대오서점 자리였다는 표시 전에 찍어둔 대오서점 사진
조선시대에 북촌은 사대부 집권 세력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면
서촌은 상대적으로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 중인들이 모여 살던 거주지로 유명했으며,
조선 후기 역관이나 의관 등 중인층을 중심으로 한 위항문학(委巷文學)의 주 무대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지역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엔 화가 이중섭과 시인 윤동주, 작가 이상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서촌은 2010년 한옥밀집지구로 지정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상의 집에서 불과 2~3분 거리에 있는 시인 노천명의 집은 세월이 흐르며 변하기는 했지만,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 하여 최근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을 ‘세종마을’이라고 정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상의 집 수리 중이던 이상의 집
노천명시인이 거주했던 가옥
박노수 화백의 집
윤동주가 후배 정병욱과 함께 머문 하숙집
이 시기에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이 쓰였다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변화된 채 지번만이 윤동주의 투숙을 알려줍니다.
서촌재
세종마을 아주 작은 갤러리, 서촌재의 외부로 보이는 작은 창문은 꾸민 듯 그러하지 않은 듯,
약한 바람에도 흔들릴 것처럼 보이는 린넨 천으로 만든 커튼이 보입니다.
한국적인 멋이 있는 한옥 갤러리. 다음엔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볼 예정입니다.
편안하게 한옥의 멋에 빠져들어 보고 싶다면 세종마을에 있는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를 방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체부동 생활문화지원센터는 체부동 성결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것인데,
체부동 성결교회는 1931년에 지어진 건물로 프랑스와 영국의 근대 건축양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87년 역사를 가진 체부동 성결교회는 2017년 서울시가 지정한 우수 건축자산 1호로 선정된 바 있고 서울 미래유산입니다.
성결교회의 사택으로 사용했던 아담하고 그윽한 한옥이 있는데,
한옥은 금오재로 불리며 ‘마실(마을카페)’과 ‘사랑(세미나실)’ 두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종마을 음식거리
수성동 계곡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왼쪽으로 ‘영화루’ 중화요리집이 보였는데 오래된 집(50년 전통의 중식당)이고,
매운짜장, 청양짬뽕이 맛있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골목길 끝 옥인제일교회가 보였습니다. 옥인제일교회를 찾으면 수성동 계곡으로 이어집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
수성동은 조선 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 명승지로 소개될 정도로
조선시대 도성 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난 아름다운 지역이었고,
세종의 셋째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가 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수성동 계곡은 지금은 철거되고 없어진 옥인아파트 자리에 복원된 계곡입니다.
계곡의 길이는 약 190m이고, 폭은 4.8~26.2m입니다.
종로구 옥인동과 누상동의 경계에 자리한 인왕산 아래의 첫 번째 계곡으로,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수성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성동의 ‘동(洞)은 골짜기 또는 계곡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여름철에 모여 휴양을 즐기던 계곡으로 인기가 있었던 이 계곡은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의 「수성동」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장동팔경첩은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 계곡에 이르는 장동지역, 현 효자동과 청운동 일대의 뛰어난 여덟 곳의 승경을 그린 것으로
현재 전하는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간송 미술관 소장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입니다.
과거에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두 개의 물줄기가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인 기린교에서 합류하여 청계천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이 기린교는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합니다.
기린교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의의를 지녔습니다.
수성동 계곡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느릿느릿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던 서촌,
과거의 기억이 존재하는 곳, 오래된 정취와 신선한 변화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서민적인 정서가 남아있어 정겨웠던 골목길 투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