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의료과실 12가지 및 대처법
명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지난 5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에서 2008년까지의 의료사망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2013년 의료과실 사망자가 25만1454명에 달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앞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CDC)가 발표한 15만 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이며 연간 입원환자 3541만6020명 중 0.71%, 연간 총사망자의 9.5%에 해당하는 숫자다. 의료과실은 사망 원인 1, 2위인 심장병(61만1105 명)과 암(58만4881명)에 이어 3위에 올랐고 4위인 만성호흡기질환(14만9205명)과는 10만 명 이상 차이가 났다. 미국인들은 ‘매일 점보 여객기 한 대가 추락하는 정도의 인명피해’로 비유한다.
지난 7월에는 재활시설 환자 3명 중 1명이 잘 못된 약물치료, 감염, 욕창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연방정부가 발표했다. 환자의 안전이 미국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회보(bulletin) 9월호에 ‘가장 흔한 12가지 의료과실 및 대처법(12 Ways the Health Care System May Be Harming You)’이라는 제목으로 리처드 랄리베르테(Richard Laliberte) 의료전문 저널리스트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를 간추려 소개한다.
01. 진단 오류
희귀한 질병보다 오히려 폐렴이나 울혈성 심부전증, 암과 같은 흔한 질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국립과학원 산하 의학연구서(Institute of Medicine)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진단 오류가 환자 사망 원인의 10%, 의료과 실의 17%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단 오류는 임상 의사와 환자·가족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특별한 증상이나 고정관념에 집착하는 경우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독감이 유행할 때 독감 환자를 연속 진료할 경우 다음 환자도 증상이 비슷하면 독감으로 진단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의사들이 끝내 오진을 알아차리지 못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대처법 | 진단 결과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다시 문의를 해야 한다. 진단 내용이 증상 간 차이가 날 때도 재확인하는 것이 좋다. 재확인 후 에도 수긍이 가지 않을 때는 다른 전문의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검진을 했다면 결과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무소식을 희소식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병원에서는 때로 검진 결과를 누락하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02. 꼼꼼하지 않은 치료
요즘은 엉뚱한 다리를 수술하는 어처구 니없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수술 직전에 수술 팀이 진행 계획을 함께 협의하는 절차가 표준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스레이 필름이 명확하지 않아 척추의 다른 부위를 수술하는 유형의 사고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처치 방법이 잘못된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12개 도시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권고된 치료법을 따르지 않은 비율이 약 45%로 나타났다. 또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한 질병에 대한 치료를 받다가 다른 질병이 악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대처법 | 담당의사에게 치료나 수술 계획에 대해 상세히 문의하라. 문의에 제대로 답하지 않을 경우 다른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03. 느슨한 위생
감염 예방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과제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16년 보고서에서 지난 3~6년 사이에 혈류 감염이 50% 줄었고 수술 부위 감염은 17%,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 병원 감염은 8%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한 해 72만1800건의 감염 피해가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7만5000명이 사망했다.
대처법 |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피터 프로노보 스트 박사는 “진료를 받을 때 의료진이 손을 씻지 않고 신체 접촉을 한다면 손을 씻을 것을 요구하라”고 권고하면서 의료진이 기분 상할까봐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04. 미흡한 소통
환자를 의료진이 교대로 돌보는 과정에서 소통이 잘못되면 의료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근무교대 때 일어나기 쉽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얼마나 투약했고, 무슨 검사를 받았으며, 어떤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상태에 따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등의 중요한 진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다. 환자가 다른 의료진에 전달할 내용을 잊어버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처법 | 의사가 귀찮아할 수도 있겠지만 의문이 나는 것들은 자꾸 질문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환자안전재단(The National Patient Safety Foundation)은 환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권고하고 있다. 어떻게 아픈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왜 이 치료가 중요한지에 관해서다. 보호자는 환자를 대신해서 이 사항들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05. 엉성한 퇴원 후 관리
퇴원해 집으로 돌아갈 때 기분은 매우 좋겠지만 가장 위험한 시간일 수도 있다. 하버드의 과대학의 테잘 간디 박사는 “퇴원하더라도 완전한 회복을 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사항들이 많은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처법 | 퇴원 때 의사의 지시사항을 복창하는 것이 좋다. 복용해야 할 약과 복용해서는 안 되는 약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입원 전에 복용했던 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마구 복용해서는 안 된다.
06. 약품 관련 과실
약품 관련 과실은 가장 흔한 의료 피해다. 처방, 조제, 복용 등 여러 단계에서 과실이 발생한다. 약물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람이 연간 70만 명이나 되고 12만 명은 입원까지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의료보고서에 따르면, 수술 중이나 전후에 약품 관련 과실이 특히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를 기울이면 80% 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대처법 | 건강보조제라 해도 복용하려면 반드시 담당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약과 건강보조제를 직접 가져가 보여주는 것이 좋다. 평소에 복용하 던 약과 다른 약이 처방되었을 때는 그 이유를 물 어봐야 한다. 입원할 때는 간호사가 약을 주고 주 사를 놓으면서 손목 밴드(또는 병상기록표)를 체크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료보험서비스센터(CMS)의 폴 맥건 박사는 “성인의 3분의 1은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약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많아지므로 그 약을 꼭 복용해야 하는지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07. 의학 지식의 차이
의사라고 해서 한 달에 수천 건씩 발간되는 임상연구서나 의료지침서를 다 파악할 수는 없다. 때로는 신약의 부작용이 알려지지 않아 약품 관련 과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시판할 경우 안전성 연구를 하도록 법제화했으나 4년 후 점검 결과, 안전성 연구를 시작도 하지 않은 사례가 전체의 40%에 달했다.
대처법 | 담당의사가 최신 의료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최근 의료 동향을 알아본 후 처방에 차이가 있다면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좋다.
08. 소수의 문제 있는 의사들
미국소비자협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컨 슈머리포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에서만 취중 진료, 마약성 의약품 불법 거래, 환자에 대한 성적 부정 행위, 진료 태만 등으로 처분을 받은 의사가 수백 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의사는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의료 과실 클레임의 3분의 1 정도는 1%의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처법 | 진료를 받을 때는 예전에 치료를 받았던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안전하다. 외과의인 경우 수술과 진료 횟수가 의료기술과의 상관성이 높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있다.
09. 숨기는 의료안전 관련 자료
의료계는 의료안전 관련 자료를 감추거나 손쉬운 데이터조차 작성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보가 알려지면 부정하거나 방어하는 데 급급한 경우도 많다. 2008년도 조사에서는 환자가 기억하고 있는 의료과실 중 3분의 1 정도만 의료 기록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장병 전문의 중 3분의 2 정도는 자신이 범한 중대한 실수를 한 건 이상 보고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대처법 | 전자 의료기록 시스템을 갖추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병원을 선택해야 한다. 환자가 의료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병원일수록 의료과실이 적다.
10. 소규모 의료기관의 허점
개인의원, 요양원, 진단센터, 재활의원 등과 같은 소규모 외래전문 의료기관은 대형 병원에 비해 의료과실 비율이 결코 낮지 않지만 관련 자료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외래환 자들은 입원환자에 비해 질환이 심하지 않아 의료과실이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의료 인력이 3명 정도인 소규모 의료기관들은 과실 방지를 위한 시설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대처법 | 소규모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는 가급적 대형 병원이나 메디컬센터와 연계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11. 더딘 개선
의료안전시스템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나 실천은 더딘 상황이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프로노보스트 박사는 카테터(체내 삽입관)로 인한 감염을 줄이기 위해 전문 간호사들에게만 삽입통제 권한을 부여했을 때 의사들이 강력히 반발한 사례를 들면서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톱다운 방식으로 개선을 추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처법 |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을 선택해 야 한다. 병원 구내식당 종업원이 주문을 받을 때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어본다면 훌륭한 병원이다. 감염 정보를 제대로 알리고 있는 병원은 투 명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병원이다. 의사와 간 호사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면 과실이 적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생해도 원활히 해결된다.
12 의료진의 피로
2015년 메이요클리닉 조사에서는 의사의 54%가 한 가지 이상의 피로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의 10% 수준에서 급증한 것이다. 의료진의 팍팍한 생활이 환자 안전의 위협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처법 | 의료진을 존경하고 친근하게 대하라. 과다한 불평과 요구로 의료진의 시간을 빼앗으면 안된다. 의료진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가장 비싼 건강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글 남진우 뉴욕주재기자 namjin@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