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여러 성문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풍남문. 보이는 쪽이 문 안쪽이다. 자세히 보면 호남제일문이라는 판액이 걸려있다.

다른 문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신작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모두 허물었다.

 

조선시대에 전주는 호남이 시작되는 관문이었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호남의 넓은 들과 함께 처음 만나는 도성이 전주였던 것이다. 첫 번째여서도 그랬겠지만 전라도(지금은 광주가 가장 큰 도시지만 조선시대에는 전주와 나주가 큰 도성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므로 두 도성의 이름 첫 글자를 따 전라도라 하였다.)에서 가장 큰 도성이었던 만큼 전라감영이 이곳에 있었다. 그래서 전주의 정문 격인 풍남문의 안쪽에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판액이 걸려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들이 순교한 터 위에 세워진 전동성당. 한옥마을 입구에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는 일찍부터 새로운 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던 도시였었던 것 같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천주교의 유입으로 인한 신해사옥(1791년)과 관련하여 전주에서 가톨릭의 전파는 대단히 의미 깊게 진행되었다.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당한 자리에 유명한 전동성당이 세워졌고(1889년) 두 순교자의 동상 또한 후일 그곳에 세워졌다.

 

미국 남장로회가 전주 서문밖 화산리(오늘날의 중화산동 부근)에서 시작한 의료선교지였던 예수병원의 최근 모습

 

애초에 전주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전주에서 가장 오래 된 개신교회인 서문교회의 종루

 

의료사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한 개신교도 서문 밖에 세워진 전주교회와 예수병원을 통해 포교활동을 하였는데, 이 역시 전주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전파되었으며 오히려 선교사들보다 성민들이 더 주도적이 될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화재로 인해 병원이 붕괴되자, 병원을 아끼고 사랑하던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모금활동에 나섰고, 그 결과 병원은 1년 만에 재건되었다. 예수병원 외에도 도립병원이 있었으나 주로 일본인과 부자들이 이용하였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문턱이 높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예수병원은 지역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보살피는 등의 의료선교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았다.

 

 

전주 남부시장 입구                                                                                                                      전주 남부시장의 동문

 

이처럼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지역에 비해 새로운 문물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지역이라서인지, 오늘날에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기회를 창출해내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사례는 남부시장의 청년몰 같은 기획이다.

 

 

전주 남부시장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던 2층의 청년몰.                                                          청년몰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의 간판

오늘날에는 놀라울 정도로 변모하였다.

 

 

남부시장의 한 가게에서 상인이 과자를 굽고 있다.

 

이 기획은 전주라서 가능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래된 전통 시장인 남부시장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던 옥상에 청년들을 위한 창업 인큐베이터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러한 점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거부감이 큰 도시에서는 쉽게 해낼 수 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전주는 경기전을 비롯한 한옥마을과 전동성당, 남부시장과 청년몰 등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어 관광자원화 하고 거기에 참여한 청년들과 시장 상인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한 시도라 여겨진다.

 

 

경기전의 홍살문과 정전 입구                                                                                                       경기전의 정전.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

 

한편, 역사적으로 볼 때, 전주가 전략적 요충지였다거나 혹은 중요한 산업의 거점이었다거나 하는 점은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이곳이 전주이씨의 관향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대표적 유적지로 경기전(慶基殿)을 꼽을 수 있다. 경기전은 정전과 조경묘로 구분된다.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이며, 북쪽에 있는 조경묘는 태조의 22대조이며 전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771년(영조 47)에 지은 것이다.

 

 

경기전 안의 대나무숲                                                                                                                  전주사고로 불려졌던 경기전 안의 실록각. 여기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다.

 

경기전은 전동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으며, 동시에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지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대나무숲, 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실록각,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이 이곳에 있는데,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구조인데다 아름다운 화면 구성이 가능한 공간이어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기도 한다.

경기전을 중심으로 전주의 한옥마을이 조성되었다. 도시를 한옥화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도시 전체보다는 이 지역만을 구분, 한옥화 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한옥마을을 특화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관광산업으로 연계하는 데 성공했다. 주말이 되면 남녀노유 할 것 없이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복(한복이라고 하지만 한복과 유사하게 생겼을 뿐, 사실은 정체불명의 옷이다)을 입고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한옥마을을 즐긴다. 최근에는 한복보다는 개화기 경성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점도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의미 있는 명소인 최명희문학관                                                                        소설가 최명희의 일생의 작품인 혼불의 표지 이미테이션

 

이처럼 이 지역을 걸으며 다양한 먹거리나 즐길거리들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옥마을이 주는 진짜 분위기를 확인하려면 최명희문학관을 잠시 견학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문학관은 <혼불>이라는 대하소설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고한 소설가 최명희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가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소설 <혼불>이 준 문학적 충격과 감동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자취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표지                                     한옥의 아름답고 우아한 선이 잘 표현되어 있는 한옥마을. 오목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았다.

 

장수였던 이성계가 고려말엽 왜구를 토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도중 승전 연회를 베풀었던 곳인 오목대.

 

한옥마을의 지붕이 주는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확인하고 싶으면 오목대(梧木臺)에 오르면 된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고려 말엽인 1380년,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도중 승전 연회를 베풀었던 곳인데, 지금은 누대 하나와 고종황제가 친필로 쓴 비석이 있는 비각 하나가 있는 곳이다. 그곳으로 오르는 길 중간쯤에 한옥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한옥마을의 우아한 지붕곡선들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많이 한다.

 

전주 영화제 거리에 있는 전주 국제 영화제 조형물

 

전주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금년 20회째를 맞이한 전주영화제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영화제가 상업영화 중심의 경쟁 영화제인 것과는 달리 이 영화제는 대안적 영화와 디지털 영화 등을 소개하는 영화제로서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다. 전주 시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영화인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전주역. 비록 콘크리트로 지어진 역사이지만, 오랫동안 전주의 관문 역할을 했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으로 유명한 성미당

콩나물국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남부시장 안의 현대옥.

 

전주는,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다면 당일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고속터미널(호남선)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전라선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 늦게 돌아온다면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전주를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전주를 즐기고 감상하려면 아무래도 1박 할 것을 적극 추천한다. 숙박은 한옥마을에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옥마을 숙박을 위해서는 전주한옥마을숙박예약센터(www.jjhanok.net) 이용하면 된다. 밤에는 끊임없이 많은 안주가 제공되는 삼천동 막걸리집도 경험해봄 직하다. 그리고 막걸리로 인해 발생한 숙취를 다음날 이른 아침 전주의 대표음식인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 잔으로 풀어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현대옥, 삼백집, 왱이집, 그 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숙소에서 가까운 콩나물국밥집에서 즐겁게 해장하시라. 아! 콩나물국밥집에 갈 때에는 틀림없이 짭짤한 김을 한 봉지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마시라.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백반으로 전주의 관청가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백번집       전주를 대표하는 제과점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 PNB. 원래 명칭은 풍년제과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