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고 함께 소통하는 전문가’란 어떤 사람일까?
지난 봄학기 때,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노인교구지도자양성과정'이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강좌 홍보문구에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소통 전문가'라고 되어 있었다. 치매 5등급 판정을 받고 '노치원'으로 불리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던 시어머니와 90세를 바라보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하루에 다섯 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6월에 2급 자격증을 땄고, '햇살노인교구지도사'라는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노인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 지도사들이 가는 곳은 주로 치매안심센터와 주간보호센터, 노인정, 양로원 같은 곳이다. 적지 않은 교구들을 들고 마치 보따리장수처럼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는데 본 수업 전에 들어가기 과정으로 가벼운 체조나 노래, 박수치기 등을 한다. 주로 첫날에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수를 치면서 부르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노래이다. 쉽기도 하고 서로 응대하며 부르며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가는 곳 마다 다른 특성이 있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잘 소개하는 분들도 있고, 아예 눈도 안 마주치려 하는 분, 멀찍이 앉아서 방관하는 태도로 앉아 계신 분도 있다.
나의 책동아리 '끄덕끄덕' 친구들과 지난해부터 계속해온 '문예진흥원'의 생애전환예술교육 중 마지막은 연극이었다. 무대에 올리기 위한 연극은 아니었으나 연극에 대한 새로운 감성에 푹 빠지게 만드는 좋은 시간이었다. 초대되어 오신 연극 강사가 가르쳐 준 것 중에도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둘씩 짝을 지어 그 중 한 사람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만 묻는다. 그러면 다른 한 사람이 계속 자신을 얘기한다. 말문이나 소개거리가 막히면, 또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다. 그런데 이것은 짧은 시간으로 하는 것 보다 되도록 긴 시간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리는 겨우 10분 정도만 했는데도 처음엔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10분이 거의 끝나갈 즈음부터는 '더 할 수 있겠구나!' '더 하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중에 1박 2일로 해보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왜 그랬을까? 자기 얘기를 스스로 하면서 처음엔 이름과 나이, 취향 같은 표피적인 것이 나오다가 점점 아주 오래 전 잊고 있었던 사소한 것들이 신기하게도 저절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 놀던 골목과 이웃집에 살았던 친구의 옷차림, 그때 주고받던 말들까지.......
만약에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들이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 번, 스무 번 계속 되풀이해서 묻고 또 물어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몇 주 전 '은평치매안심센터'에서 '균형의자이야기'란 교구로 수업을 했다. 균형 잡힌 인생을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어르신들과 그런 얘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신돌이 선돌이 부돌이'이란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정리 단계에서 세 인물 중 누구처럼 살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한 할아버지께서 '부돌이'처럼 살아보고 싶고 '신돌이'에게 듣고 싶은 말은 '죽지 말고 오래오래 살라'는 거라고 하셨다.
'부돌이'는 부자로 살기 위해 애썼고 욕심이 많아서 늘 자기를 먼저 챙기는 아이였다. 그리고 이타적으로 살았던 ‘신돌이’는 신선이 된 인물이다.
나는 내색 하지는 않았지만 몹시 놀랐다. 그런데 함께 수업했던 지도사 선생님이 그게 어르신들의 본심이고, 우리 인간들의 본심일 거라고 얘기하셨다. 어쩌면 내게도 그런 마음이 숨어있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잘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훈련 받은 마음도 본심이 아니라고 할 순 없으니. 다만, 그 할아버지가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 돈만을 추구하며 살지 않았으므로 어려움도 겪었고 그런 면에서 회한도 남으셨겠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세월은 무심하게 빨리 흘러서 늙고 병약한 몸이 되었고 아쉬움도 많지 않겠는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전문가가 아직은 못 되는 나는 어르신에게
“그러시군요. 정말 그렇게 되면 참 좋겠네요.” 하고 말했다.
'지금부터 그렇게 살아보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더 좋은 말은 무엇일지, 어르신을 기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화법은 어떤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세 히데코 글, 그림/김정화 옮김/쪽빛그림책-'에 나오는 글이 하나 생각난다.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60가지가 넘는 공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혀 수작업으로 책을 제본하고 때로는 망가진 책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일, '를리외르'란 직업을 가진 나이 많은 아저씨가 하는 말이다. 를리외르 아저씨는 옹이가 박힌 나무 같은 손을 갖고 있다. 그 손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은평치매안심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도 를리외르 아저씨처럼 자신이 걸어오고 해온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손이나 발, 혹은 등, 어깨. 아니면 심장이나 눈 같은 것들.
“몰러, 난 아무것도 몰러~” 하고 말하시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어떻게 80년 이상을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겠는가? 나는 마음을 열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그 무언가를 함께 찾아내고 싶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